세 살 아이의 질문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세 살인 첫째 아이는 세상이 궁금하다.
“엄마, 과일은 왜 씨가 있어?”
“엄마, 학교는 왜 가?”
“엄마…”
“엄마…”
“엄마…”
이렇게 질문은 하루 종일 이어진다.
하나를 대답하면, 또 다른 질문을 이어간다.
처음엔 신기하고 귀여웠다.
저 조그마한 머릿속에서
어떻게 이런 질문이 쏟아져 나오는 걸까.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에,
눈을 맞추며 한 문장 한 문장 설명해주곤 했다.
“응, 씨는 나중에 또 과일이 되려고 안에 있는 거야.”
“학교는 배우러 가는 곳이지.”
하지만 어느 순간,
지치기도 하고 바쁘기도 해서,
“그냥 그런 거야.”
“엄마도 몰라.”
라는 말로 대충 넘기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문득,
대답을 기다리던 아이의 얼굴 위로
실망이 지나가는 걸 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배운다.
학교에서, 일상에서,
누군가 정리해 준 답을 듣고 외우면서 익혀간다.
하지만 그게 진짜 배움일까?
정답을 외우는 것보다,
스스로 품는 ‘왜?’에서 진짜 배움이 시작되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어쩌면 이 세 살 배기의 끝없는 질문들이야말로
배움의 가장 순수한 시작이 아닐까 싶다.
아이의 질문은 이 세상을 향한 첫걸음이고,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며,
자기 안에 지도를 그려나가는 과정이다.
“왜 학교에 가?”라는 질문이,
나중에 더 좋은 교육 시스템의 출발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다짐한다.
귀찮아도, 바빠도,
내가 아는 만큼은 진심을 담아 대답해 주자고.
아이의 질문을 귀하게 여기자고.
나는 내 아이들이 질문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궁금한 걸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
답보다 질문이 더 멋질 수 있다는 걸 아는 아이들로.
쓸모없는 질문은 없다.
지금은 아무 의미 없어 보일지라도,
그 질문들이 언젠가 세상을 이해하고 바꾸는
씨앗이 되어줄 수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
이미 어른이 된 나는
부끄럽게도 아이처럼 질문하는 법을 자주 잊는다.
빨리 해내야 하고, 결과를 보여줘야 하고,
다른 사람을 따라가느라 질문할 틈조차 잃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 덕분에 나도 질문해 본다.
어쩌면, 이 질문들 속에서
나의 길도 다시 시작되는 걸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