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같은 대학교를 나온 우리 부부는 서로의 취업 준비도 옆에서 다 지켜보았다. 언제나 과탑이었고, 전액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던 남편은 인턴으로 있던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그 회사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대기업 중 한 곳이었다. 처음 입사하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본사에서 새벽출근하고 새벽퇴근에, 주 6일 근무를 했었다.
그에 반해 남편이 입사하고 1년 뒤에 입사한 나는 회사 특성상 그날 시재만 맞으면 별다른 이유가 없는 한 퇴근이었다. 남편이 너무 힘들게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오히려 내가 다니는 회사에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때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나보다 더 힘들게 버티고 있는 남편에 비하면 훨씬 낫다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남편한테 들었지만, 그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는 월급 때문이었다고 한다.
거기에 돈을 받아도 돈 쓸 시간이 없을 정도였으니 차곡차곡 돈이 쌓였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서는 정년 보장이 되지 않는 신랑과 달리 큰 사고만 없으면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내가 회사에서 승진하고 승승장구하길 바랐다. 물론 남편도 그런 나를 위해 외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언제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결심하기 2달 전까지 인사고과를 위해 자격증 시험을 봤다.
그런 내 마음이 한순간에 홱하고 돌아선 건 단순히 어떤 분명한 이유는 아니었다.
남편은 장난스럽게 말하던 나의 퇴사가 진심이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해도 좋다며 나를 응원해 주었다.
스트레스받으며 다닐 바에는 집에서 아이들을 케어하며 쉬는 것도 좋다는 말도 했다. 물론 거기에는 장모님을 이제 그만 보내드려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고 했다.
내가 퇴사를 했을 때를 미리 대비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을 이리저리 다 따져보았고, 남편은 외벌이도 괜찮다고 흔쾌히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한번 더 나에게 말해주었다.
시대가 이렇게 변하는데 10년 전이나 다를 바 없는 회사에서 더 이상 스트레스받으며 다닐 필요가 없다고.
그 사이 남편 회사는 복지, 사내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달라졌다. 더 나아졌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회사 내부에서 많은 변화와 시도가 있다고 한다. 그에 반에 우리 회사는...
남편이 보기에도 회사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10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것이 한순간에, 10년 후에는 변하겠냐는 것이었다.
36살. 정년까지 20년도 더 남았는데도 편한 길을 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박차고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나의 남편의 덕이 제일 크다.
참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