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사람, 미래
회사를 다닐 때 사람들이 많이 고려하는 세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돈, 사람, 미래.
나는 이 세 가지가 충족되지 않아서 더 빨리 퇴사를 결정할 수 있었다.
1. 돈
금융권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은 월급을 꽤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정말 1 금융권의 이야기이며, 2 금융권이고, 특수은행에 속하는 내가 다녔던 곳은 정말 먹고살만큼만 받았다. 이것도 지역마다 격차가 있었다. 도시는 그만큼 돈을 많이 받고 그에 반해 시골에 있는 회사는 덜 받았다.
입사 전 계약직으로 다녔던 1 금융권에서의 월급보다 입사 후 첫 월급이 더 적었다. 나는 정규직이 되었는데 통장에 꽂힌 금액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충격 그 자체! 정말 박봉이었다. 그때 도망쳤어야 했는데...
거기에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키우는데 한 사람의 월급을 고스란히 바쳐야 한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그나마 친정찬스였기에 엄마에게는 내 월급의 1/3을 드렸다. (금액을 책정할 때 내가 더 많이 불렀지만, 아빠가 네 월급 뻔히 아는데 그냥 그만큼만 엄마 주라고 해서 그나마 책정된 금액)
2시간이 넘는 출퇴근에 드는 교통비는 또 거기에서 1/4을 내어줘야 했다. 이것도 퇴사 1년 전 연비가 좋은 차로 바꾸고 나서의 금액이었다.
정기상여가 없는 달은 저 비용이 나가면 나는 카드값도 못 내는 월급이었다. 10년 넘게 직장인의 반려라고 불리는 마이너스통장 없이 잘 살다가 어쩔 수 없이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내 월급은 물가상승률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바닥에서 쥐꼬리만큼 올랐다. 사람들은 돈 때문에 어떻게 퇴사를 했냐고 하는데, 회사 다닐 때도 돈이 없었고, 백수인 지금도 돈이 없긴 마찬가지다. 이러나저러나 돈이 없으니 스트레스라도 덜 받아야 하지 않겠나?
2. 사람
전편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이게 너무 힘들었다. 고객들 상대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를 아예 안 받지는 않았다.
남동생이 있는 나는 여자보다는 남자를 대하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라는 것을 회사 다니며 알았다.
여초회사까지는 아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이 여자가 많은 그곳은 나에게 정말 쥐약이었다.
중, 고등학생 때나 할 질투와 시기가 거기서도 존재했다.
유니폼이 아닌 비즈니스 캐주얼 사복으로 바뀌고 나서부터는 그날그날 입고 온 옷 가지고도 말이 많았다. 치마를 입고 오면 치마를 입고 왔다고 바지를 입으면 바지를 입었다고, 블라우스 색깔이 어쩌고 저쩌고 어느 브랜드에서 샀니, 그건 명품이니 아니니까지.
뒤에서는 욕하면서 앞에서는 웃는 얼굴로 대하는 태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쨌든 같이 일은 해야 했기에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일을 의도적으로 안 하는 선배가 있었다. 업무분배를 할 때 은근슬쩍 나에게 자신의 업무를 떠넘기려고 하기에(평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으면 나는 기꺼이 해줬을 거다.)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했다가 나는 선배말에 대꾸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직원으로 소문이 났다. 내가 왜 그랬는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는 그걸 100퍼센트 활용했다. '나 싹수없는 애니까 건들지 마!'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내가 책임자가 되면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던 존경할 수 있는 책임자들 밑에서 일을 배웠다. 그와 반면, 일은 안 하면서 생색 엄청 내고, 윗사람들에게 그저 아부만 떨며, 아랫사람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책임자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정말 최악이었다. 소위말하는 현타까지 왔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신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책임자. 금융권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업무가 빠르게 변한다. 오늘은 맞았던 규정이 내일모레는 바뀌는 경우도 있다. 그에 따라 직원들도 계속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했지만, 더 나이 많으신 분들도 다 배워서 하는데 그분은 자꾸 내 손을 빌렸다. 나는 만삭이 되어 출산휴가를 들어가기 전까지 그분 업무를 대신하기도 했다. 안 하면 금감원의 연락을 받을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3. 미래
단도직입적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은행이 망할리는 없겠지만, 더군다나 시골 구석구석까지 분포되어 있기에 은행이 망해도 제일 늦게 망하는 회사가 우리 회사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지만 그건 고객들 입장에서의 이야기고, 직원들 입장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속은 엉망진창인데 겉은 번지르르한.
몇몇 유대감이 있었던 고객분들 또한 나의 퇴사소식을 듣고 인사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다들 한마디 하셨다.
"이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둬."
하긴, 창구에 앉아있으면 본인 자식들을 입사시키고 싶어서 문의를 엄청하신다.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면접에서 어떤 질문을 받는지까지 물어보신다.
경험해보지 않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안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직원들은 "뭐가 좋다는 거야."라고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상, 하반기 매년 신입사원을 뽑아댔다. 그 말인 즉, 그만큼 회사를 그만두는 신입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공백은 고스란히 직원들의 몫이었다. 퇴사 직전 회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주위 다른 회사는 직원들이 기본급만 받고 다녀야 했다. 여기저기 부실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모두들 시한폭탄을 안고 이게 언제 터질지 조마조마 불안해 떨어야 했다. 인건비와 물가는 올라가면서 비용은 많이 드는데 그만큼의 이익을 내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실정이었다. 매달 직원회의에서 비용 아끼고 실적 많이 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이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힘들게 회사를 다닐 이유가 전혀 없어졌고, 나는 그렇게 백수가 되길 자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