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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여름 Jul 26. 2024

05. 퇴사의 이유

황혼육아

육아가 나의 퇴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지만, 조금 말을 돌려 나 대신 우리 아이들을 봐주고 있는 엄마를 생각하면 많은 영향이 끼쳤다.


나는 5살 터울의 남자아이 두 명을 키우고 있고, 결혼 전부터 결혼하고 나서도, 첫 아이를 낳고도 그리고 둘째 아이를 낳고도 회사로 착실히 복귀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직장을 다니고 있던 엄마는 절대 손자를 키워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뉴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보육기관 선생님들의 악행에 엄마는 결국 나의 첫째 아들을 키워주었다. 그때는 본가가 직장과 가까웠기에 내가 큰 아이와 함께 엄마집에 얹혀살았다. 자연스럽게 우리 부부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생활비와 양육비를 명목으로 내 월급의 일부를 드렸고, 그 생활은 둘째를 임신하고 완전히 원래 집으로 옮길 때까지 계속되었다. 엄마는 둘째를 임신했을 때도, 둘째는 절대 본인이 키워주지 않는다는 말을 누누이 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 아이 어린이집 대기를 일찍부터 걸어놓았고, 복직하기 6개월 전부터 시터를 구하고 있었다.


막상 둘째를 출산하고 나니 두 아이를 두고 매일 2시간이 넘는 출퇴근 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농담 반, 진담 반 엄마에게 회사를 그만두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고, 엄마는 내가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이길 바랐기 때문에 결국 둘째 아이도 엄마가 키워주었다.

아마 엄마가 티는 내지 않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였을 테다.


이번에는 엄마가 우리 집 끝방에서 지내는 것으로 합의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나와 육아를 바통터치하면 엄마는 평일 내내 우리 두 아들을 케어하고 빨래, 요리, 청소까지 다 해주었다.


평일에는 와이프가 없이 홀아비 생활을 하는 아빠는 혼자서 끼니도 챙겨야 했고, 틈틈이 집안일도 해야 했다. 모두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을 해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커 카면서 엄마의 병도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그때마다 나와 남편은 마치 죄인이 된 듯했다.

허리는 물론이고, 둘째 아들이 화가 나 엎은 작은 책상에 엄마의 새끼발가락이 찧어 한동안 깁스를 하기도 했다. 큰 아이는 할머니와 워낙 어릴 때부터 지내서 애착이 잘 형성되었음에도 머리가 크면 클수록 모든 것을 다 해주는 할머니를 함부로 대했다. 그게 나는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주말을 보내고 우리 집에 와서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키면 엄마는 병원 가는 일이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그리고 막판에 엄마는 후종인대골화증(인대가 뼈처럼 단단해지는 것)을 의심받았다.

그 분야에 유명한 의사를 알아보면서, 나는 약간 멘털이 나갔다.

엄마가 진단을 받고 이것 때문에 수술을 받으면 나는 정말 평생 죄인이었다.

자식의 자식 농사까지 짓느라 고생하는 엄마였다.

하지만 다행히 의사는 수술까지는 필요 없고 운동을 하라는 조언을 했을 뿐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기보다는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퇴사의 저울에 추를 하나 더 두었다.

엄마를 이제 그만 보내드려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털어놓은 적이 없지만, 어느 날 기분 좋게 술을 드신 아빠가 남편을 불러놓고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캠핑과 여행을 좋아하는 아빠는 30년 넘는 직장생활을 정년퇴직하고 엄마와의 여행을 꿈꿨다고 했다. 그래서 그맘때쯤 아빠는 언제 어디서든 차박을 할 수 있는 SUV를 사서 준비 태세를 갖추셨지만, 엄마의 황혼육아로 꿈꾸었던 퇴직 후의 삶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며 한탄이 담긴 이야기를 술김에 딸인 내가 아닌 사위에게 하신 것이다.


아빠에게 와이프를 돌려드리고, 엄마에게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나는 기존의 이름표만 가지고 있던 엄마라는 타이틀에 무게를 두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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