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당한 것을 참지 못했다.
그것에 대응할 대담함까지는 갖추지 못했지만, 꼭 한마디는 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직장생활은, 매일 새로운 고객이 찾아오는 영업장은, 폐쇄적인 문화를 가진 회사는 매일이 부당한 것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주말에 면에서 열리는 행사에 아무 이유 없이 참석하기를 강요받았고, 마을 행사에 일명 술상무를 하러 가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그 당사자가 내가 아니어도 나는 그런 일들을 왜 직원들이 감당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회는 점점 발전하고 미래를 향해 발맞춰 나아가고 있는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아니 어쩌면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던 회사 문화에 잠자코 따를 수만은 없었다.
매년 열리는 추계, 춘계 행사 일정이 다른 지역에서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공지사항이 없기에 행사를 주관하는 총무팀에 일정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당분간 행사 일정이 없다기에 그런 줄 알고 부모님까지 함께하는 가족여행 일정을 잡았는데 행사 2주 전 갑작스럽게 공지사항이 떴고, 나의 가족여행 일정과 겹쳐져버린 것이다.
불참의사를 밝혔지만, 겉으로는 자율 참석이었지만 강제적인 참석을 강요, 번번이 나의 불참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다. 몇 번 이야기를 했음에도 나는 개인 핸드폰으로 총무팀에 연락까지 받았다. 그때 나는 손님과 한창 거래 중이었다. 부재중으로 돌아간 전화에 총무팀에서는 나에게 콜백을 해달라고 요구했고 그 전화에서도 나는 몇 번이나 설명했던 불참 이유를 또 설명하길 강요받았다.
화가 났다. 분명 행사 일정이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2주 전에 잡은 행사에 모두 참석하기를 바라다니! 민주주의 시대에 이 얼마나 시대를 거스르는 일인가!
나의 화남이 고스란히 전화기를 통해 총무팀 책임자에게 전해졌고, 그분은 나에게 회사일이 가정일보다 우선이 돼야 하지 않겠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혹자는 직장생활이 다 그런 거지 그런 것도 못 참고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냐 하겠지만, 나는 그런 것까지 참으며 사회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좋지 않았던 허리가 22년 즈음 왼쪽다리를 절만큼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허리 때문인지 몰랐지만, 결국 나는 MRI 찍기를 권유받고 디스크가 터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최대한 수술을 피하고 싶어서 맞는 주사는 효과가 전혀 없었고 나는 결국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의사는 최소 8주를 쉬어야 했지만, 나는 눈치껏 한 달 만이라도 쉴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 직속상사는 어림없는 소리를 한다며 그때마다 나의 의견을 묵살시켰고, 매일 2시간이 넘는 출퇴근하기가 불편하면 회사 근처 본가에서 다니는 거까지 고려하라고 했다.
최고 책임자를 찾아간 나는 울며 말했다. 한 달 만이라도 쉬게 해달라고.
그 뜻이 겨우 받아들여졌고, 내 직속상사는 그런 나를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다.
3시 수술임에도 나는 그날 오전에 회사에 가서 책임자들에게 인사까지 했다. 내가 할 도리는 나는 다 했다고,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 처음, 10년을 몸담은 회사는 아픈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다른 회사는 의사 진단서만 있으면 병가 휴직이 가능한 마당에 나는 의사가 8주의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진단서를 써줬음에도 겨우 한 달만 쉬고 출근을 해야 했다. 허리 지지대를 차고 말이다.
그 마저도 다른 직원들은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하지만 난 이런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부당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부당한 일에 맞서는 일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아침에 눈뜨면 버릇처럼 회사 가기 싫다는 말을 했고 그 말은 점점 강화되어 나에게 퇴사의 결말까지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