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형님
나에게는 세명의 형님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남동생만 있는 나는 여자를 상대하는 게 꽤나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회사를 다니며 알았다. 그건 나보다 어린 사람, 나이 많은 사람 구분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갑자기 언니들이 세명이나 생긴 것이다. 어린 마음에 불편하고 어려웠던 마음이 그나마 아이들을 낳고 나서 많이 편해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세 형님을 다 좋아하지만, 큰 형님을 특히 존경한다.
아버님의 자랑인 우리 큰 형님은 '박사'다. 워낙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지금도 항상 배움에 대한 열정이 넘치시는 분으로 배울 점이 정말 많다. (시댁에 있는 형님의 졸업 논문의 땡스투를 읽고 운 사람, 나.) 그런 형님에게 의지를 하게 된 계기는 나의 첫 아이가 태어난 지 70일 만에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전부터였다.
형님은 첫 조카인 우리 아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우리 부부에게 전해주었다. 아무래도 그쪽에 있어서 자료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기에 물심양면으로 멘털이 산산조각이 난 우리 부부를 위해 노력해 주셨고 그러면서 나는 큰 형님에게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그런 나와 나의 아들을 위해 새벽기도를 하고 긍정적인 말을 아낌없이 해주셨던 형님이었다.
그런 형님에게 그나마 회사 다니며 힘든 마음을 전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의논할 수 있었다.
형님은 괜한,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나와 달리 긍정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나의 큰 걱정과 고민을 대수롭지 않게, 하지만 가볍지 않게 생각하며 언제나 고민을 들어주셨다.
그리고 말해주셨다.
"그냥 해, 여름아.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면 돼!"
"요즘은 평생직장이라는 게 없어. 네가 하고 싶으면 시도해 봐!"
그 말이 왜 그렇게 위로가 됐는지 모르겠다. 망설이고 고민하고 우물쭈물하던 나를 한걸음 나아가게 해 줄 수 있었던 그 말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었다.
형님의 그 말 덕분에 나는 퇴사하기 6개월 전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조금씩 시작했다.
중간중간 고민이 들고 이래도 되는 건가 의구심이 들면 나는 또 형님의 조언을 구했고, 그럴 때마다 형님은 언제나 나를 응원해 주셨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 큰 형님이 나를 잡고 이끌어 주어서이다.
아이들이 자면 그 옆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글을 썼고, 처음 수익화를 해서 소액을 벌었을 때,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형님은 정말 축하해 주셨다.
만날 때마다 요즘은 어떠냐며 나의 안부를 항상 물어봐주시는 형님은 항상 책을 놓지않으시는 분답게 책 추천도 잊지 않고 해 주신다.
우리 가족, 우리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분야에서의 연구를 더 확장시켜 나가는 우리 큰 형님을 보고 나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할 수 있었다.
나의 가족, 나의 제일 큰 언니인 우리 큰 형님과 앞으로도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