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마운 사람

같이 울어준 그대들

by 구여름

1. 동기 언니

면접을 보러 간 날, 누군가가 나한테 성큼 다가왔다.

누구누구 딸이지 않냐는 말로 대문자 I 인 나에게 처음 말을 건넨 사람.

언니와 나는 그렇게 같이 합격해 동기가 되었고, 같은 지역에서 일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언니 아빠와 우리 아빠도 친했기에,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어른들도 모두 기뻐하셨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계약직으로 일한 경험이 있던 언니는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나 부담 없이 물어볼 수 있는 나의 선배이자 동기였다.

같은 해에 결혼하고, 같은 해에 아기를 낳았다. 같은 도시에서 출퇴근까지 했기에, 도로에서 만나면 나는 언제나 언니가 먼저 갈 수 있게 소심한 배려를 하기도 하고 길이 막히면 전화통화를 하며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다.


우리의 각별한 사이를 아는 언니들이 내가 지역을 옮길 때,


"여름이 너, OOO 따라가는 거지?"


이런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나는 언니를 잘 따랐다. 물론, 이동하는 데 언니가 있어서 간 건 아니었지만, 언니가 있기에 한결 마음이 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만나면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주면서도 일적으로 많은 도움 준 언니한테 동기중 제일 많이 의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퇴사를 한다는 말을 처음 회사에 말했을 때, 그날 제일 먼저 밥을 사주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도 언니였다.

12월 29일, 연말이라 출근 마지막날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바빴던 날, 꽃바구니 배달이 왔고 바쁜 나 대신 다른 직원이 대신 받아주었다.

확인할 겨를도 없이 마감 직전까지 바빴고, 전화 한 통을 받고서야 그 꽃바구니가 언니가 보낸 거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이 가득한 너무 예쁜 꽃바구니였다.

전화를 붙잡고 울며 이야기했다. 연락하면 언제든 또 볼 수 있는데 다시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는 말로 우리는 같이 보낸 긴 시간을 그렇게 마무리 지었다.


2. 책임자

소문이 화살처럼 빠른 직장이었다.

나의 퇴사가 공공연하게 퍼진 뒤, 그동안 나와 함께 해주신 책임자(여성 책임자)분들께 전화 한통씩을 받았다.

나의 결정을 응원한다는 분, 힘들 때도 다 견뎠는데 이제와 왜 그만두냐며 안타까워하는 분.

모두 내가 책임자가 되었을 때, 떠올리고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존경하는 분들이었다.


여자가 많지만 정작 책임자는 남자가 많은 직장에서, 소위 말하는 유리천장을 깨고 책임자로 당당히 제 역할을 다 하시는 분들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게 올라간 자리이기에 그만큼 여자 직원들의 육아와 출산을 누구보다 이해해 주셨던 분들이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하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말로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셨다. 더 많은 여자 직원들이 승진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아이가 아파 퇴사를 고민할 때,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다닐 수 있게 도와주신 책임자분과 통화에서는 서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분도 나도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그 힘든 일을 겪고도 잘해왔는데, 왜 이제야 이런 선택을 한 건지 안타까워하셨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지는 못하겠지만, 더 승승장구하시길 간절히 바란다. 진심으로!


3. 나의 멘티

입사하고 처음 발령받은 곳에서 나는 10년을 있었다. 그사이 두 아이를 낳느라 육아휴직을 하고 복직을 했지만 10년 동안 나는 그곳에 정이 많이 들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물었다. 지역 이동을 하지 않았다면, 네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까라고.

100퍼센트 틀린 말은 아니다. 나의 첫 근무지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이동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언제나 막내였다. 나의 입사 이후로 정규직을 따로 뽑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기만 했지, 내가 가르친 적은 없었다. 대리가 되었음에도 그랬다.

그러다가 지역이동을 하고 나한테 첫 멘티가 생겼다. 하지만 그분은 입사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퇴직했다. 그리고 들어온 나의 두 번째 멘티. 이번에는 여자였고 나보다 어렸지만, 내 또래였다.


말도 잘 통하고 나랑 성격이 반대여서 그런지 싹싹했다. 물론 꼼꼼한 나와 달리 덜렁거리긴 했지만, 신입이면 그 흔한 시재가 틀릴 법도 한데 그러지도 않았다. 손님과 대화하는 게 어려운 나와 달리 그게 적성에 맞아 재미있다고 말하는 멘티가 부럽기도 했다.


멘티를 가르치며 나의 부족한 공부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더 그랬다. 누구를 가르쳐봐야 공부가 된다는 말을 그때 절실히 또 느꼈다. 멘티가 성장하면서 나도 성장했다.

회사에서 나의 퇴사를 제일 먼저 안 사람도 나의 멘티였고, 내가 다른 일을 소소하게 시작하는 걸 안 사람도, 그걸 옆에서 응원해 준 사람도 멘티였다.

마지막 같이 근무를 하고 셔터를 닫고 직원들이 소소하게 모여 나의 퇴사를 응원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 자리에서 멘티는 서럽게 울었다.


"대리님이 없으면 저는 어떻게 해요, 퇴사하지 마세요."


그동안 이 말을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많이 했는데 그게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마지막까지 빌었다고 했다, 내가 퇴사하지 않기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멘티에게 마음을 많이 주었고, 멘티도 한없이 부족한 멘토인 나에게 마음을 많이 나누어줬다보다.


나의 퇴사에 이렇게 같이 울어준 사람이 많아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기에, 앞으로의 시간도 헛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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