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후 해야 할 일
퇴사하기 전 미리 퇴사후 해야 할 일을 이리저리 찾아보며 준비했지만, 역시나 부족한 것 투성이었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였던 나는 신랑의 피보험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따로 신청을 해야 하나 하고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넘어가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일이 하나 줄었으니까.
국민연금은 상담사분과 한번 통화를 해야 했다. 회사와 반반 내던 국민연금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임의가입자로 계속 납입을 이어갈지, 아니면 10년은 넘게 냈으니 이걸 그대로 내버려 둘지.
어른들은 이게 나중에 다 노후 준비가 된다며 부담되지 않으면 꾸준히 내는 게 좋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여전히 결정하지 못했다. 혹시 몰라 가입해 둔 개인연금이 있기에 더욱더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퇴직연금이 제일 골치가 아팠다. 요즘 비대면 거래가 아주 잘되어있어서 통장을 만들고(그 과정이 복잡했다. 나는 금융권에 다녔던 사람이기에 조금은 수월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대면 거래를 하는 것을 추천!) 총무계에 비대면으로 내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입금해줘야 하는 관리점에서 직원이 이중으로 등록을 하는 바람에 내가 출금을 못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다행히 1 금융권으로 이직한 나의 동기가 있는 관리점으로 했기에 무난하게 해결이 되었지만, 아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곤란해질 상황이 놓이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처음 한 달간은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남편도, 아이들도, 나도 변화된 삶을 일상에 녹이는데 조금 애를 썼다, 우리 집 강아지도.
요리고수도 아닌, 젬병도 아닌 그 중간 어느 선상에 애매하게 걸쳐진 10년 차 주부이기에 요리를 잘하고 싶은 마음과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 합쳐져 아이들 식단에 힘을 쓰기도 했다.
평일에는 감사하게도 엄마 밥을 먹으며 출퇴근을 했고 주말에는 거의 집에서 먹을 일이 없었다.
남편도 평일에 힘들게 일한 나에게 요리하기를 강요하지 않았다. 외식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엄마가 주말을 위해 해놓은 반찬과 국으로 1끼를 때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온전히 내 살림이기에 인터넷을 다 뒤져가며 아이들 끼니 걱정을 했다.
요리를 잘하는 엄마 어깨너머로 배운 게 있어서 나는 곧잘 맛을 잘 내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요리에는 취미가 없다는 것을 매번, 절실히 느끼며 요리를 했다. 정말 백 퍼센트 노력으로 일궈낸 일이었다. (그 노력은 아직도 진행 중!)
집 정리도 했다.
그동안 주방은 내 필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신경도 안 쓰다가 냉장고, 냉동고, 김치 냉장고, 팬트리까지 싹 뒤집어엎었다. 정리병이 약간 있는 나는 몇 날며칠을 정리하는데 시간과 힘을 쏟았다.
오죽하면 신랑이 이제는 그만해도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옷정리는 덤이었다. 유니폼에서 비즈니스 캐주얼로 근무복이 바뀐 이후로 옷을 좋아하는 나는 그 핑계로 옷도 참 많이 샀다. 이제는 딱히 입을 일이 없어진 것들을 차곡차곡(그렇다고 버리지는 않고) 정리했다.
그리고 퇴사하고 제일 많이 변화된 것, 직업!
둘째 아이 어린이집을 옮기면서 가족사항란 모(母) 직업에 나는 더 이상 회사원이 아니라 주부였다.
어딜 가나 그랬다. 직업을 적어내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꽤 있었다. 그동안 의식하지 않았던 일이 퇴사 후에는 왜 그렇게 의식이 많이 되는지... 그때마다 나는 주부 또는 무직이었다.
그 '무직', '주부'라는 단어가 주는 낯섦을 적응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발 한 발 그렇게 나는 퇴사 후의 평범한 일상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었다.
엄마집에서 주말부부를 보내고, 엄마 살림에 얹혀서 살고, 한 번도 내 집이었던 적 없던 남편과 나의 생경한 집이 처음으로 내 집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퇴사를 한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