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퇴사 후

퇴사 후의 삶

by 구여름

퇴사 후의 나의 삶은 회사 다닐 때와 다름없이 바쁘다.

원래 성격이 계획적이고, 루틴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남편은 가끔 나보고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스타일이라고 한 마디씩 한다. 집에 있으니까 하루는 그냥 조금 쉬고 퍼질러져 있으라고 하지만 나는 그걸 용납하지 못한다. (역시 나는 우리 엄마 딸이 맞다.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닮아간다.)

주부도 나름대로 너무 바쁘니까!


아침에 아이들 밥을 소량하고 그걸 애원하며 먹이고 씻기면 아이들과 남편이 각자의 위치로 떠난다. 그러고 나서 나는 우리 집 노견 강아지를 산책시킨다.

그때, 가끔 먹고 싶은 커피도 사 먹고 아주 간단한 장도 본다.


집으로 돌아오면 빨래를 하고(빨래가 이렇게 매일 나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제야 늦은 아침을 먹지만, 그마저도 남편이 매일 챙겨주는 샐러드로 해결! 식탁에 앉아 샐러드를 먹으며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뉴스기사도 보고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뜨는 유튜브 쇼츠도 본다.


그리고 나의 일, 소설 쓰기를 시작한다.

퇴사하기 전 소소하게 시작한 일이기에 꾸준히 하고 있다. 아주 작디작지만 수익화도 몇 개 되어서 커피 사 먹을 정도의 돈은 벌고 있다. 물론 매일 글이 술술 잘 써지지는 않는다. 머리를 쥐어짜 내도 스토리가 생각이 나지 않고, 단어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턱 하고 막힐 때도 있지만...

엉덩이의 힘으로 버티고 앉아 그렇게 몇 시간을 식탁에 노트북을 펴고 앉아있는다.


1시가 넘어가면 슬슬 점심을 먹어야 하나 생각하지만 간단하게 먹거나 아침이 늦으면 건너뛸 때가 많다.

학원과 학원 사이에 잠깐 오는 큰 아이 간식을 챙기고 다시 청소를 하고 그날 건조기에서 나온 따뜻한 빨래를 개고 나면 작은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다.


그러면 나는 30분 정도 책을 읽는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억지로 내지 않으면 한 달에 책 한 권도 못 읽을 것 같다는 생각에 퇴사 6개월 후 고민 끝에 알람을 맞춰 시간을 냈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그 공부를 봐주면 저녁시간.

저녁을 해 먹이고 씻기고 아이들이 원하는 책 한 권씩을 읽어주고 나면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 아이들이 자는 동안 나의 다이어리를 쓰고 있으면 남편이 퇴근한다.


남편과 소소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티브이를 같이 보면 나의 하루가 끝이 난다.

처음에는 내 루틴에 힘들어하던 아이들도 몇 시에 무엇을 해야 하고, 몇 시에는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후로부터는 잘 따라주고 있다. 이렇게 해야 내가 두 아이를 양육하기 수월하고 힘이 덜 들기에 이런 체계를 잡은 나에게 남편도 아주 고마워하고 있다.


원체 마른 아이들이 살도 조금 올랐고 그러면서 키도 컸다. 책을 안 읽던 아이들도 책을 많이 접하고 있다. 남편은 이런 게 제일 큰 수확이라며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운동을 따로 하거나(러닝을 하기도 했다.) 무엇을 배우거나, 모임을 갖는 일에 시간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바쁜 일상으로 나는 회사 다닐 때만큼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 내가 아이들한테, 그리고 남편한테 조금은 덜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놀려고 퇴사하지 않았으니까'라는 마음이 지배적이다.


내가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는다고 해도, 빨래를 안 해서 밀린다고 해도,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내가 나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 자기 합리화.


힘들지만 스트레스는 덜 받고, 더 행복한 나의 퇴사 후의 삶이다.

구태여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있을 수 있는 집순이의 삶이 너무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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