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추천으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봤다.
아시안 가족관에서 오는 갈등, 이민자의 삶, 능동적 니힐리즘, 화려한 미장센과 수많은 패러디, B급 유머 등등을 잔뜩 묻혀놓은 뭐 그런, 한 개 6800원짜리 고급 도넛 느낌의 영화였다. 최근 본 영화 중에 가장 맛있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쩌면 진짜 입으로 먹은 것들을 포함해도 가장 맛있었던 뭐 그런.
그런데 역시나 이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들은 늘 뒷맛이 짜다. 그래서인지 이런 생각을 참 지울 수가 없다.
극 중 내내 다루어졌던 쇼펜하우어와 니체 대리인들의 대결은 니체의 대승리로 끝났기는 하나, 그렇기에 참 오묘한 것 같다고.
에블린의 대승리는 에블린이 수많은, 심지어 손가락이 핫도그 소세지인 우주조차 긍정하는, 그런 무지막지한 영원회귀를 끌어안을 수 있는 초인이기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아니 그 이전에 애당초 조이와 에블린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은 버스 점프가 누적되면 고장 나거나 하지 않았던가.
그런 정도는 어떻게든 될 만큼 비범한 능력은 그래, 있다고 치자. 예를 들면, 고흐. 그러나 고흐는 삶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며 능동적 니힐리즘의 헌신으로 살아갔다지만, 인생 내도록 맛도 없는 물감으로(먹어봤다. 느끼하고, 짜고, 쇠맛이 난다) 배를 채워야 할 정도로 끔찍하게 살다가, 미술사에 둘도 없을 대스타가 되기까지 불과 몇 걸음을 앞에 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대리인 대결에서 승리했던 니체의 경우는 어떠한가. 아모르파티!라고 외치고 다니며 많은 것들을 에블린처럼 끌어안아보려 했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다. 니체는 배신당한 채로, 인생의 한 줌 주어진 단맛의 여운이 닳아빠져 잿빛 흙맛으로 바뀌어가는 순간을 생생히 느끼며, 초라한 지붕 아래에서 눈을 감았다.
아니 뭐, 그리고. 에브리씽 베이글이라는 것도 그냥 재료 몇 개 더 들어간 게 다인데, 에브리씽은 너무 거창한 이름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쩌구 저쩌구 투덜투덜.
하는 생각들이 와 정말 재밌는 영화였지, 하는 생각을 순식간에 먹어치우고야 마는 사람이니 이리도 내가 재미없게 사나 보다.
얼마 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자라지 못한, 양분이 부족해 크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들이 간혹 있다고. 그런데 그럴 때면 매번, 요령만 가득 찬 어른인 내가 나타나 그 어린아이를 슉 치워버리고는 한다고. 그 친구도 무언가 원하는 바가, 필요한 바가 있어서 나온 것일 텐데.
눈을 반짝이며, '우와! 에브리씽이라구요? 그러면 치킨맛도 나요?' 하곤 묻고, 기대하곤 하고픈데, '양파, 마늘, 참깨, 양귀비 씨 맛이야 그거. 그냥 4종류의 베이글 맛을 하나로 합쳤다고 에브리씽인 거야.' 하고는 베이글은커녕, 커피 한 잔 사가지 않는 내가 검은 크레딧 화면에 비친다.
낫씽이고, 노 웨어고, 또 이치 띵스 앳 이치 타임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