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방울

by 옆집 사람

https://youtu.be/muTUmQnqGDY?si=bPSl5jh7x4swC10o


나는 정말 잘 모르겠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제대로는 가고는 있는 건지, 애당초 잘 지내긴 하는 건지.

다들 삶의 목적이니, 이유니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들을 하는데, 나는 거기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사실 생각해 보려 그래, 시도는 해봤지.
그런데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고. 그냥 뭐랄까, 뿌옇게 저 멀리 있는 것만 같이 느껴져. 꿈속에서 주먹 휘두르는 것 마냥, 전혀 맞지도, 잡히지도 않는 뭐 그런 느낌으로.

그렇다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것은 잘 되느냐. 아니. 그다지.

'그리운 시간들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면서
새하얀 모습으로 내가 좋아하던 그때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더라'

라고 지금 듣고 있는 이 노래는 말하는데, 내가 한 때 쥐고 있던 그 시간들이 그리운 것은 맞는지, 그 시간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기는 한 건지. 이것조차 잘 모르겠네.

크리스마스 당일, 남포동 트리 근처를 걷고 있는 기분이야. 뒤에서 끊임없이 밀어 대 억지로 떠밀려가고 있는 그런 느낌. 숨 막히고 답답하지만, 또 크리스마스라고 하니, 그래. 나쁘지 않을지도. 하며 밀려다니는.

나는 하루 중 잠들기 직전의 시간이 제일 좋아. 자러 갈게 하고 연락들을 정리하고 혼자 조용히 누워있는 그 시간. 해야 할 것이 잠드는 것 말곤 아무것도 없는 그 시간이 나는 참 좋더라.

앞도 모르겠고, 뒤도 모르겠고, 지금은 더 모르겠고 한 사람이라 그런 건가 싶어. 명확하잖아?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조금 몽롱하다가 졸리면 잠든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어릴 때는, 세상은 참 넓어서 해야 할 것도, 봐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또 먹어야 할 것도 많은 줄 알았어. 그래서 매일이 모험 같고 신날 거라 믿었어. 그때만 지나면, 어른이 되면은.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글쎄. 꼭 겪어봐야만 하는 그런 기대되고 신나는 일들은 세상만사 아무것도 없더라. 그냥 무미하고 무취하고 건조한데 색만 조금씩 달라.

그 왜, 네모바지 스펀지밥에 나오는 이쁜이버거 같은 거야. 암만 멋진 이름 붙여놨다 해도 그냥 염색한 게살버거니, 뭐... 게살버거 맛이겠지. 어떤 색이건. 알록달록 하다고 특별히 다를까.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 같아.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가. 어릴 때는 이거랑 제목이랑 대체 무슨 상관인데? 싶었거든. 아무리 하나하나 뜯어 곱씹어봐도 그저 평범한 원주민 군상밖에 안 보이는데.

그런데, 그게 맞는 거였어. 정확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던 거야. 우리는 특별히 어디서 오지도, 딱히 무언가도 아니며, 대단히 어디로 가지도 않는다는 거.

고갱은 이 그림을 그린 후 자살을 시도했데. 시도인 이유는 실패라서. 본 죽음은 저 나중에 심장마비로 자연사였고.

그러니까, 정말 그런 거였던 거지. 딱히 무엇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뭐 그런.

보통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어딘가 구멍이 뚫리신 것 같아요. 하고 표현하잖아? 그런데 나는 그런 것 같진 않아. 그냥 타고나길 도넛으로 태어난 거지. 그냥 그런 모양으로 생긴 거야 원래. 막 뒤늦게 구멍이 나 으악!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원래 그런.

그래서 뭐, 밥도 잘 챙겨 먹고, 꾸준히 운동도 하고, 일도 열심히 해. 잘 웃고 다니고, 기분도 쭉 좋은 편이고. 도넛이니까.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싶네. 갑자기. 이 노래랑 하나도 맞지 않는 이야기들을 이리도 지리하게 왜 늘어놓고 있는 건지.

사실 이 노래는 진행 중인 사랑에 대한 얘기였거든. 어디 뭐 불안정하다거나, 지난 사랑이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멜로디가 어디 장마철 반지하, 손님 한 둘 겨우 있는 칵테일바마냥 축축 처지긴 하지만.

내일은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해야지! 하는 각오, 3초 만에 깨버리고 스누즈 걸고 다시 잠들기를 대여섯 번 반복하고 출근이나 해야지. 출근 직후에는 모니터 켜고, 신발 갈아 신고 난 후, 냉장고에서 탄산수나 한 병 빼먹을 거고. 늘 그랬듯이.

그래.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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