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보이지 않는 손처럼 뺨을 스친다. 어디서 시작됐을까. 시선은 먼 능선과 하늘에 닿지만, 바람은 그보다 더 먼 곳에서 온다.
어쩌면 데워진 들판이 솟아오른 자리, 혹은 차가운 바다의 숨결일지도 모른다. 산을 넘고 빌딩 숲을 지나며 모양과 속도를 바꾼다. 바람결에는 지나온 길의 냄새가 묻어있다. 젖은 흙, 짭짤한 바다, 달콤한 과일 향기 같은 것들.
바람은 흔들리는 것들로 제 몸을 알린다. 나뭇잎은 은빛 배를 뒤집고, 억새는 파도처럼 눕는다. 물 위엔 윤슬이 부서진다. 소리로도 온다. 처마 끝 풍경을 울리고, 낡은 창틈으로 낮은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집중하면 잠시 제자리를 잃는다. 발밑의 단단한 감각이 무뎌지고, 몸이 기우는 듯하다. 눈을 감으면, 바람이 그려내는 무형의 감각만이 선명해진다.
덜컹. 그 감각의 끝에서, 차체가 크게 흔들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뿌연 조명 아래 흔들리는 손잡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코끝을 스치는 것은 풀 내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체취와 습기가 뒤섞인 도시의 공기였다. 틈 없이 선 사람들 사이에 끼인 채였다. 문이 열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움직이는 인파의 일부가 되어 밖으로 나선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 지금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으니. 언젠가 본 내 영혼에는 초원의 별이 흐릅니다. 그들을 구하려면 싸이버거가 필요합니다. 하는 그 글을 좀 흉내 내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와 하고 열광하는 것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어디서 뭘 해왔나 싶곤 하다. 사실 뭐, 인생이 그래. 뭔가를 남기려 사는 건 아닐 텐데, 그런 것들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냐.. 하고 넘길 만도 한데, 그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이 여간 부럽다.
겨우 둘셋 있는 팀원들이 이야.. 하는 거에 멱살 잡혀 매일 20분이고 30분이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야근을 하는 나는, 기어코 술을 잔뜩 마시고 온 새벽 1시 42분에 또 이런 헛소리를 잔뜩 늘어놓고야 만다. 어깨에 단무지 잔뜩 넣고 왕창 덩치 부풀려 어! 나도 어!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