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boy>

by 옆집 사람

https://youtu.be/pC6tPEaAiYU?si=uLAbOIVUNDjitx1p

<혁오, Tomboy>


난 엄마가 늘 베푼 사랑에 어색해

그래서 그런 건가 늘 어렵다니까


잃기 두려웠던 욕심 속에도

작은 예쁨이 있지


난 지금 행복해 그래서 불안해

폭풍 전 바다는 늘 고요하니까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잖아

나는 사랑을 응원해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슬픈 어른은 늘 뒷걸음만 치고

미운 스물을 넘긴 넌 지루해 보여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니까

우리 사랑을 응원해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그래, 그때 나는 잘 몰랐었어

우린 다른 점만 닮았고


철이 들어 먼저 떨어져 버린

너와 이젠 나도 닮았네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화자는 ‘엄마의 사랑’ 같은 절대적 다정 앞에서 몸을 배배 꼬며 과연 자신이 그 사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지 묻는다. 사랑을 받을 자격에 대한 이 불편한 자의식은, 부모와 사회, 연인 앞에서 늘 스스로를 검열하고 확인하려 드는 청춘의 얼굴을 닮아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탐욕과 초라함이 자리한다는 것을 자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는 버려지지 않는 작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는 자신을 완전한 선이나 악으로 잘라내려 하지 않는 태도이며, 어쩌면 불안정한 윤리의 미세한 균형 감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화자는, 지금 행복하기 때문에 오히려 불안하다고 고백한다. 하이데거가 말한 불안처럼, 이 근거 없이 번지는 흔들림은 성취와 동시에 몰려드는 불안을 낳는다. 현대 사회라는 회로 속에서, 행복은 곧 불안을 호출하는 매개로 작동하며 방황을 가속화한다.


그러나 <Tomboy>는 이러한 방황과 머뭇거림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결정을 유예하는 시간을 곧 감각을 기르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존중해 준다. 결국 노래가 내리는 결론은 서둘러 어른이 되라는 요구가 아니라, 시간을 벌어 스스로를 돌보라는 권유다.


그렇기에 '톰보이'라는 이름은 임시적인 표식으로 남는다. 그것은 완성된 정체성을 선언하는 명사가 아니라, 여전히 흘러가는 과정의 또 다른 이름이다.


라고 주절주절.


생판 남이자 동갑내기인 이 노래 속 화자의 일에 대해서는 이리 잘도 떠들어대지만, 정작 내 일에 대해서는 나는 늘 입을 닫고 만다.


앞서 실컷 떠들어댄 바에 의하면, 내가 이렇기에 나도 또 하나의 '톰보이'여야 할 텐데, 스스로에게는 도통 그런 감각이 들질 않는다.


아무리 널널이 또 꼼꼼히 들춰보아도, 저 색동 어린이집 시절 등 떠밀려 되어버린 다섯 살의 어른만이 힘 없이 눈 마주칠 뿐이다.


'젊은 우리'에 속하는 나의, 잘 보이지 않아야 할 나이테는 정확히 스물여덟 개. 세어볼 수 있을 만큼 너무도 선명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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