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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픽의 구즈마 Nov 20. 2019

"1인 출판사? 그거 뭐하는 건데?"

1인 출판사 구픽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004

앞서 주변 이야기들을 많이 쓰긴 했다만, 사업을 시작함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다. 출판사 여기저기에서 대략 15년간 일하긴 했다만 출판사 월급이라는 게 사실 박봉이라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손에 쥔 돈은 사업을 시작하고 유지하고 생활도 가능할 만큼 넉넉하진 않았다. 대출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완전히 코너에 몰리기 전까진 빚을 지면서까지 사업을 시작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약간의 경력이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과 다른 사업에 비해 초기 자금이 덜 든다는 장점도 있었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한다고 하면 무슨 일을 하는지 대부분 잘 모른다. 지금은 시작한 지 몇 년 되어 관심사에서 사라진 바람에 가족들끼리 이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지만 초기에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출판사? 1인? 그거 뭐하는 건데?"

"외국에서 이미 나온 책 중에 좋은 걸 골라서 번역을 시키고 편집을 해서 인쇄하고 서점에다 파는 걸 그냥 혼자서 다 하는 거예요."

"인쇄소 하는 거냐?"

"아니요."

"그럼 네가 책 쓰는 거냐?"

"아니요."

"그럼 네가 번역을 하냐?"

"아니요."

"그럼 서점하는 거냐?"

"아니요."

"그럼 내 자서전 내줄 수 있냐?"

대충 이렇게 마무리. 


책도 쓰고 번역도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정도의 능력치는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그랬다면 출판사 시작은 하지 않았을지도) 당연히 이 부분은 포기했다. 사실 출판사 시작 전 조언을 얻으러 만났던 선배 출판사 대표님(겸 작가)도 네댓 권 다른 저자의 책을 출간하고 나서 네가 능력이 된다면 본인의 책을 직접 출간하면서 비용을 절감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쉽지 않아요… 선배님. 그리고 비용 절감을 떠나 내 책을 내는 순간 구픽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질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여하튼 이런 생각은 일찌감치 날려버렸다.


출판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책 만드는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비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해외 소설들을 주로 만들어왔고, 이에 저작권 에이전시 담당자들과 안면을 틀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외서를 계약하는 데 있어서는 (비싼 작품들을 살 수 없다 뿐이지) 일적으로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내 작품과는 달리, 해외 작품이니만큼 계약 후에는 번역이 들어가야 해서 번역비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전 회사에서 출간한 책 90퍼센트가 해외 소설이었기에 작가님들보다는 역자님들과 일할 기회가 훨씬 많았고 친분이 깊은 선생님들이 몇 분 계셨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분들이 초반에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셨던 게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감사하다. 한 권의 책을 몇 달 동안 잡고 있어야 하고 번역비도 내 형편상 많이 드릴 수 없었기에 거절당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부탁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이 눈물 날 정도로 흔쾌히 응해주셨다. 대박이 나면 우리 번역가님들부터 최고 대우로 번역비 챙겨드려야지 생각도 자주 하는데, 그 대박의 희열은 언제쯤….


작품 계약과 번역이 끝나면 편집과 디자인 작업을 해야 한다. 꼼꼼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랜 기간 편집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 과정은 당연히 내 손으로 해서 비용을 절약해야 했다. 그리고 표지와 편집 디자인에 관해서는 이후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전 회사에서 비교적 장기 근속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가장 소중한 인연 중 하나가 디자이너였다. 근무한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표지를 의뢰할 때마다 한마디로 ‘찰떡같이’ 내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갖다 준 디자이너들. 오래 일하며 손발이 맞는 이들이었기에 이분들과 번갈아 가면서 일하면 이 부분도 어렵지 않게 진행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디자인 작업까지 완료되면, 그다음은 인쇄. 인쇄가 마무리되면 책을 보관하고 서점으로 배송할 물류업체도 필요하다. 사실 이 비용도 그 비중이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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