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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픽의 구즈마 Nov 21. 2019

현실과 이상의 괴리

1인 출판사 구픽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005

빨리 하라는 일은 천천히 하고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은 빨리 손대는 경향이 있어서 책 작업 시작도 하기 전에 인쇄소와 물류업체 미팅을 했다. 미팅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건 아니었고 나보다 먼저 1인 출판사를 시작한 선배 대표님, 그리고 디자이너를 따라다니며 얼굴 도장 찍는 수준 정도. 주로 책상 앞에서 편집 일 위주로 하다보니 외부 업체 담당자들을 만난 적이 별로 없고 오래전이지만 인쇄소나 물류 업체는 불친절했다는 기억이 있어 좀 많이 긴장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적 있는 ‘회사 이름이 멋진’ 출판사 대표님께서 귀찮아하지 않고 데리고 다녀 주셔서 자연스럽게 명함을 드리고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따로 아는 곳도 없고 직접 알아보기도 귀찮기도 해서 원래는 이전 회사에서 이용했던 물류 업체를 이용할까 했다. 그런데 너무 대형 회사라 나 같은 1인 출판사는 홀대하지 않을까 혼자 쫄았었다. 다행히도 그날 뵌 물류 업체가 1인 출판사 업무에도 특화된 데다 너무나 친절하셔서 바로 결정. 기본료가 타 업체에 비해 조금 비쌌지만 배송 사고나 오류가 없고 관리가 철저하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듣고 결정한 바도 있었다. 인쇄소 역시 대형보다는 작은 출판사들과 긴 기간 탄탄하게 거래하는 곳으로 정했다. (물론 일단 안면이 있는 인쇄소였다는 점도 있었지만) 한 4년 지난 지금도 이 두 곳과는 큰 문제없이 잘 거래 중이다. 


인쇄비는(종이값 포함) 당연하지만 얇은 책은 비용이 적게 들고 두꺼운 책은 많이 든다. 내가 전 회사에서 만들었던 책, 그리고 앞으로 구픽에서 만들 책은 슬프게도 대부분이 기본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었다. (첫 책으로 준비한 소설은 무려 576페이지짜리였다) 이전 출판사에서는 소설은 역시 서사와 캐릭터가 탄탄해야지, 그럼 당연히 두꺼워지는 거고, 얇은 책이 무슨 매력이 있어 하면서 550페이지, 600페이지를 넘어 700페이지짜리 책까지 만들면서도 디테일한 제작 비용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제작비 청구서는 제작부 담당자에게 갔고 가끔 표지에 들어가는 후가공을 빼면 어떠냐 정도 얘기를 듣긴 했지만 심각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물론 첫 책을 내기 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차후 제작 비용을 청구받고 난 후 헐, 이러면 나머지 책을 어떻게 만들지 싶었다. 그제서야 제작부 담당자의 약간 슬픈 얼굴도 이해가 갔고. 나 같은 경우, 먹색 잉크만 쓰는 소설책이라 사실 인쇄 그 자체의 비용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제작비의 대부분은 종이값이었다. 결국 두꺼운 책이라도 편집을 빡빡하게 해서 페이지를 줄이거나 얇은 책을 내는 것이 그나마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겠구나 싶었다. 물론 편집으로도 페이지를 줄이기 힘든 두꺼운 책은 아무리 좋아도 손대기 힘들겠다, 약간은 현실감을 가지게 된 계기도 되었다. 


물류 업체는 만들어진 책을 보관하고, 서점에서 들어온 주문을 오전에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내가 입력하면 오후에 서점들로 내보내는 곳이다. 아주 가끔 책을 내는 작은 출판사들은 사무실이나 집에 책을 보관하고 직접 배송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1년 5종 이상의 책을 낼 예정이라 보관할 곳도 없는 데다 대량의 책을 한꺼번에 내보내기 때문에 배송 비용이 압도적으로 낮은 물류 업체를 이용하는 게 당연했다. 출간 도서가 5종 이하인 시절까지는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안 드네 싶었다. 하지만 현재 20여 종이 넘어 기본 재고가 좀 있고 이건 분명 잘나가겠지 하면서 많이 찍어둔 책들이 눈물의 악성 재고로 쌓여 보관비가 꽤 나가는 편이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갑작스러운 이슈로 그 책들이 폭발적으로 판매될 가능성이 별로 없으니, 악성 재고를 생각하면 자다가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지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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