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픽의 구즈마 Apr 25. 2020

현실적 불안에 익숙해진 삶

1인 출판사 시작 5년 후, 그 시작을 다시 생각하며

2014년 12월 31일, 내 인생 가장 길게 다녔던 출판사를 그만두었고 2015년 9월, 1인 출판사 운영을 위한 사업자 등록 신청을 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 사이에 굉장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삶은 버라이어티했던 적이 없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대단한 일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시기 내 마음속에서는 폭풍이 쳤다. 대략 15년 동안의 출판사 편집자 생활을 접고 내 사업을 시작한다는 거창한 의미보다는, 그 15년 동안 벌어놓은 쥐꼬리만 한 돈을 과연 얼마 만에 날리게 될지가 매일매일 악몽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배포가 작아 대출은 생각도 하지 않았고 단지 내가 모은 돈만 온전히 출판사 운영에 사용하겠다고 처음부터 마음 먹었던지라, 물론 초기 투자 비용이긴 했지만 종잣돈이 훅훅 사라지기 시작하자 출판사 시작도 전에 나 자체가 처절하게 사라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소의 제약을 크게 받지 않는 출판사 업무의 성격상 일단 사무실을 구해야 할 필요가 없고(현재 집에서 일하고 있다), 기획과 편집을 제외하고는 문외한이긴 하지만 1인 출판사 운영을 결정한 이상 관리와 영업, 재무를 어떻게든 혼자 담당해서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데다(물론 디자인은 외주를 주고 있다), 과거보다 온라인 판매의 비중이 높아 오프 서점을 매번 관리하기 힘든 1인 출판사로서는 부담이 조금은 줄어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해외 번역도서를 중심으로 만들어 온 내 경우는 작가님과 직접 계약하는 대부분의 국내서와는 달리 계약을 할 때는 에이전시를, 출판을 하기 전에는 번역이라는 단계를 하나씩 더 거쳐야 하기 때문에 비용적인 부담이 훨씬 커졌다. 부끄럽지만 원래 숫자에 민감한 스타일도 아니었거니와 다니던 회사에서 비용 절감을 요구할 때는 “아니, 이 좋은 책 혹은 이 잘 팔릴 책을 위해 그 정도도 투자 못하냐!”며 부르짖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땡그랑 소리를 내며 내 통장 잔고가 훅훅 줄어드는 걸 보자니 물도 체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거기다 욕심만 많았던 나는, 창업 초반에 많은 책을 출간해서 빠르게 출판사를 각인시키겠다는 마음에 안 그래도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해외 도서를 그야말로 왕창, 한꺼번에 계약하고 말았다. 물론 완전히 증발해버린 것이 아니라 투자비용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일하고 있었겠지만, 내 눈에는 첫 책이 나오기도 전에 종잣돈의 80퍼센트 이상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 뒤로 어떻게 됐느냐고? 2016년 3월 첫 책이 출간됐고 2016년 4월에 3권의 책이 한꺼번에, 그해에만 6권의 도서를 출간했다. 물론 콘텐츠로는 모두 훌륭한 책이었다는 생각이지만 한 권의 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2쇄를 찍지 못했는데 역시 영업마케팅과 홍보를 손도 못 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이렇게만 얘기하니 1인 출판사 실패담 같지만(실패담이 아니라고도 못하겠다) 2020년 지금, 우리 출판사는 20여 종의 책을 출간하고 어찌어찌 운영 중이긴 하다. 하지만 일을 벌이기만 하고 수습을 잘 못하는 데다,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숫자 개념도 여전히 밝지 못해서 출판사로 거둔 실제 수익은 5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없다고 봐도 되겠다. 그나마 그동안 출간한 20여 종의 책이 매달 팔려서 들어오는 수입, 그러니까 초기 투자비용으로 인한 수입으로 새 책을 만들 제작비가 약간 생기는 정도라고 할까. 


문제는 이 상황에도 나는 이 일을 놓지 못할 거라는 것이다.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이 일뿐이라는 점도 있긴 하지만, 책이 아주 안 팔리는 와중에 일의 만족도가 높다는 점이 가끔은 화가 난다. 물론 동료 편집자가 1인 출판사 창업을 하면 어떨지 물었을 때 “해! 당장 차려! 지금은 작은 출판사들을 위한 시대야! 시작해! 부수적인 것들은 내가 도와줄게” 하며 부추겼던 3년 전의 나를 생각하니 부끄럽고 우스운데(다행히 동료는 아직 출판사를 차리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현실적인 면을 떠나면 재미는 있단 말이다. 물론 지금 이 순간 동료가 또다시 내게 1인 출판사의 전망과 본인의 가능성을 묻는다면 무조건 부추겼던 예전과는 달리 일단 내 손익계산서를 보여주겠지. 


2015년엔 2020년에는 사업도 안정되고 경제력도 안정되고 내 마음도 안정되어 있을 줄 알았지만 나는 오늘도 불안한 희망에만 매달린 채 지내고 있다. 어쩌면 이 불안에 익숙해진 채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첫 출간작 선택과 엄습하는 불안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