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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hew Jun 08. 2020

제법 안온한 날들

6월의 첫 독후감.

제목 : 제법 안온한 날들 : 당신에게 건네는 60편의 사랑이야기

저자 : 남궁인

링크 : http://www.yes24.com/Product/Goods/89380534?Acode=101


어머니는 한참 뒤에 대답했다.
"인아, 사랑은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 거의 인생만큼 긴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영속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사람을 떼어놓고 자신을 생각할 수가 없게 된단다. 그처럼 치명적인 게 없다."
29p.


불행한 글을 써내는 사람의 인생까지 불행할 필요는 없어. 네가 불행해야 한다는 강박이야말로 심각한 자기 위선이야. 네가 좋아하는 글, 그거 마음껏 써내란 말이야. 네 인생을 망가뜨리지 말고, 그딴 어두운 자리로 찾아들어가지 말고, 그냥 쓰란 말이야. 그게 네가 쓴 글이야. 너를 수렁에 기어이 욱여넣고 쓴 글은 진짜 네가 쓴 글이 아니라고.
139p.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의 태도나 자격이다. 우리는 종종 감사를 표하는 사람에게 폭언을 가하거나 얼굴에 햄버거를 던지는 일을 목격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실상 도움은 내가 받고 있으며, 그 말을 갚으려면 그들의 일이 조금이라도 순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생각 없이, 다만 자신이 순간적으로 관계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상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일수록 책임이 더 크다. 
178p.


죽기 위해 인간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죽음의 순간 하늘은 세금 따위를 부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죽기 직전까지 인간은 돈이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이 사회에서 인간은 인간 같지도 못한 죽음을 겪어야 한다. 죽음에 가격이 있다면, 그 죽음은 마치 무료에 가까운 금액으로 제공되는 가장 저렴한 죽음이 아닐까.
212p. 


분명 나는 죽음을 많이 확인했다. 무수한 삶이 내 입으로 종결되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내게 삶의 이유나 의미를 묻고 나의 입에서 그럴듯한 통찰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나의 인생, 내 삶도 아직 그리 멀리까지 살아내지 못했다. 1000명의 죽음을 확인해도, 솔직히 나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
...
삶의 의미는 나도 아직 모른다. 하지만 죽음은 있다.
278p.




"안온(安穩)하다"

1. 조용하고 편안하다.

2. 날씨가 바람이 없고 따뜻하다.


...


이 책은 '안온'하지 않다.


내가 가로수길의 한 카페에서 책을 덮었을 때 들었던 감정이다. 책을 읽는 내내 얼굴이 찌푸려지고 요동치는 감정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을 한참 참았다. 슬픔에 대해서 예민하지는 않지만, 한번 몰려오는 큰 파도는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조금 진정이 되었을 때 급하게 정리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삶과 죽음이 오고 가는 응급실의 풍경을, 나 같은 비의료인이 감내하기에는 그 내공이 부족하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이었지만 읽을수록 그 풍경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돌에 스미는 빗방울처럼 마음속 깊숙이 그 이미지가 스며들어간다. 바위처럼 메마르다시피했던 마음이었기에 갑작스레 몰려오는 감정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더 감정이 요동쳤던 것은 나도 응급실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 2년 전 엄마를 먼저 보내드렸을 때. 응급실 한편에서 이름 모를 복잡한 의료 기계를 달고 심폐 소생을 하고 있던 장면을 처음 목격한 그 순간. 담담하게 상황을 설명하던 의사 선생님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저 밖에 서서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슬픔과 분노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응급실 비용을 결제해야 한다는 것부터, 영안실 직원이 불친절한 것까지 하나하나 슬프고 짜증 나고 화가 났다. 지인들에게 부고 소식을 전하는 것도 하기 싫었다. 전화를 걸면 울음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겉으로는 담담히 사람들을 맞고 장례식과 장례 절차를 진행했지만, 머릿속과 가슴속은 오만가지 생각으로 정신이 없었다.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던 내가 늦잠을 자서 엄마가 쓰러진 것을 못 봤던 죄책감, 잔소리하는 게 싫어서 속으로 귀찮아했던 것, 차려준 밥이 너무 당연해서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것, 같이 여기저기 가보고 싶어 했던 것을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것 등.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이런 것들이 큰 후회로 남는다는 현실에 내가 나를 봐도 한심해 보였다.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을 무디게 만든다. 28년간 같이 있었기에 갑자기 가족들과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그 누구도 못했을 것이다. 아빠도 그렇고 동생도 똑같이.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출근했던 둘이 황망히 병원 응급실로 들어오던 그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 책은 '안온'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삶의 경계가 모호한 응급실에서 진정한 사랑이 드러난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결국 이것은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서야 진심을 드러낸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 가족이 장례식 때 너무 슬퍼했다는 것은, 돌아가신 엄마를 너무 사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항상 같이 살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너무 안온했기에 너무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돌아가신 할머니를 바라보며 바치는 할아버지의 나지막한 사랑 고백, 자신의 실수로 동료를 죽음으로 몰고 간 환경미화원의 자책, 불타는 집에서 아이를 꼭 안고 있었던 아버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온전히 감내하는 저자가 가끔 힘들 때마다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위로를 받는 모든 것. 저자 남궁인 씨가 응급실에서 바라보며 느꼈던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안온하지 않았기에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던 사랑. 그러나 안온할 때 이 진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고차원적이고 숭고하다. 있을 때 잘하란 말이 그저 불평 섞인 투정이 아닌 사람의 진심을 느끼고 아낌없이 표현해야 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답을 알지만 그 실천은 너무 힘들다. 우리 모두 있을 때 잘해보자.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이든.



안온한 제목과 달리 안온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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