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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hew Jul 09. 2020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주도적 마인드셋을 갖춘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제목 :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저자 : 아이리

링크 : http://www.yes24.com/Product/Goods/77184509?Acode=101


사람들이 살면서 하는 말 중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무책임한 말은 무엇일까?
"사랑해"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우리가 가장 자주 하는 무책임한 말은 "힘내!"다.
12p.


'노력'이란 누군가에게 넘겨주거나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한 일이다. 계속 노력할 수 있는 용기는 모든 것과 단절하고 직장을 때려치운 뒤 멀리 떠나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다고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짜 용감한 사람은 현실을 직시하고 마주할 줄 안다.
15p.


줄곧 남에게 공감하며 사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남을 돌보느라 바빠 자신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바쁘다 해도 때로는 자신을 편안한 시간 속에서 천천히 살게 해라. 몰아붙이지 않고, 위로하고, 여유를 갖고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요구를 이뤄주기 위해 쫓기지 말고 가금은 자신이 시간의 부자가 되게 해주자.
22p.


철이 들었다는 이유로, 줄곧 인생에서 너무 많은 일을 놓치고 살았다. 친구가 그를 좋아하므로 망설임 없이 그를 놓아준 것도, 동료가 책임을 미루자 두말없이 그 일을 맡은 것도, 부모의 불평과 지나친 요구를 다 받아준 것도, 다른 사람이 기분 나빠하면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사과한 것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내 감정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도 다 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26p.


용감하게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꼭 차갑고 이기적이란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지킬 줄 알고, 언제 원칙을 내세워야 할지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아주 명확히 알고 있다. 자기 능력의 한계를 알고 책임감이 강하기에, 무작정 돕겠다고 나서면 다른 사람의 일을 망칠 수 있음을 알고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원칙과 한계가 분명한 선량함이다.
85p.


미움받기를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남의 생각을 완전히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으로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뜻도 아니다. 자신에게 완벽한 성격을 강요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던 자신의 모습까지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92p.


...그는 당신의 지뢰나 한계선을 파악하고 있는 데다 당신의 원칙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당신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당신의 원칙이 바보 같고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치 농담을 하듯 시험 삼아 당신을 도발하곤 한다. 대개 이런 사람은 당신의 친한 친구이거나 연인, 배우자이다.
103p.


사랑은 시작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135p.




어느덧 나에게도 20대가 마무리되고 30대가 찾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뒤돌아보면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도 첫 20살이 되었을 때의 즐거웠던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고된 수험생활이 끝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핑크빛 대학 라이프, 처음 느낀 술 담배의 달콤함 (정작 술은 잘 못 마셨지만),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억압을 벗어던지고 자유의 삶으로 접어들었다는 기쁨. 굳이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한창 대학에 다닐 때 연애를 '못' 해본 것 정도..?


당시에는 자신감이 충만했던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컸고, 남들의 시선보다는 내가 좋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욕망도 컸다. 물론 부모님은 내 동생과 달리 너무 자유분방한 내 모습에 걱정하기도 하고 많이 혼내시기도 했지만, 혼났을 때만 잠깐 듣는 척했을 뿐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삶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담배 피우는 것을 숨기다가 들킨 것도, 술 왕창 먹고 집에서 쓰러진 것도, 밤새 놀다가 밖에서 외박을 하던 것도, 모두 내가 원해서 했던 일들로 내 20대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3학년이 끝나고 취업 준비를 할 때쯤,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시기가 찾아온다. 그 기간은 4개월로 매우 짧았지만, 너무나도 우울했던 시간이었다. 매일 어깨가 축 처진 채로 집에서 나가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인턴으로 일했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방향성을 정하고, 그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독학으로 자격증과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기 위해서 전 회사를 퇴사하고 약 4개월 정도 취업 준비를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때쯤, 엄마의 인내심이 한계였었던 것 같다. 항상 밖에 나가서 뭐하고 돌아오는지 모르는 큰아들 때문에 항상 화가 나 계셨다. 하루는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아빠가 소주 한 병이랑 간단한 안주를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잠깐 앉아보라고 하시길래 아빠와 소주를 한두 잔 나누며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가 '쟤는 내 말은 안 들으니, 당신이 한번 이야기해봐요.'라고 했다고. 주요 골자는 지금 내가 대체 뭘 준비하고 있는지, 취업 생각은 있는지, 공부를 하러 나가는 건지 그냥 이냥 저냥 허송세월을 보내는 건지가 걱정이 된다고 하시더라. 그때 정말 화도 나면서 슬프기도 했다. 내가 준비하는 것을 백날 천날 말해봤자 어차피 어른들 귀에는 '공무원'이나 '대기업'이 아닌 이상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일 것이고, 내가 준비하는 것들이 하찮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빠는 항상 차분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기에 천천히 내가 준비하는 것들을 보여드리고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그날은 그렇게 '열심히 해라 무엇이든'이라는 대답과 함께 지나갔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을까? 물론 아니었다. 여전히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착실히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동생과 다른 길을 걷는 나에게 끊임없이 의심의 질문들을 던지셨다. 그럴 때마다 나도 계속 침체되는 것 같았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아무튼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부모님이 원하는 길을 걸을 생각이 없어졌다. 


다행히도 지금 회사에 입사하고 내가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하자 부모님도 서서히 나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셨다. 작게나마 내가 이루는 것들이 생기고, 회사에서도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들이 많았기에 이제는 '좋은 회사에서 잘 다니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라봐 주시니, 결과적으로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 되어서 다행일 따름이다.




그 당시에는 부모님의 기대에 내가 맞춰야 할까, 아니면 그래도 고집스럽게 내 길을 걸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참 많았던 시기였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가는 길이 하찮아 보일지 몰라도 내가 하는 일이 즐거워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어른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나도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 내 아이에게 저렇게 대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어른들은 다 그런 걸까?


언제나 수동적인 삶은 싫었다. 부모님의 간섭을 가장 많이 받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부모님의 잔소리는 항상 싫었던 것 같다. 작은 것이라도 내 뜻대로 하고 싶었고 뭔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성미에 맞았던 듯싶다. 그래서 20살이 되고 나서 그렇게 기뻤나 보다. 물론 그 이후에도 잔소리는 계속되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나'는 주도적이면서 너무 타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대만 분이신데 한국 사람이 읽어도 공감이 되는 것을 보면, 그 나라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아무튼 어릴 때부터 주도적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나 자신이 생각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오랜만에 재밌는 책이었다.


요즘 책을 사러 서점에 가면 이런 종류의 책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느낀다. 어디에서나 당당한 주체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와, 이런 욕구를 이제 거리낌 없이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확실히 어릴 적 사회적 분위기와는 많은 것이 다른 느낌의 책들이다. 어디에서나 예의를 갖추고, 나보다는 남을,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내 의견보다는 상급자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우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감추게 하고, 개인을 소극적으로 만들며, 다른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분명히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혁신은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 본다.


물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를 배척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역시 지양해야 할 것이다. 다만, 나도 이제는 당당하게 내 의사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남의 기분이 상할까 봐 내 한계를 넘어선 부탁을 들어준다든지, 공동체가 무너질까 봐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에게 직언하지 못한다든지, 나보다 어른이기에 반대되는 의견을 꼭 감춘다든지 하는 일은 결국 내 자존감을 깎아 먹으면서, 결과적으로 전체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눈치를 보면서 현실을 피하기만 한다면 결국 그 문제가 곪아 터질 수밖에.


30대는 인생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살아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더 배울 것이 많고 부족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내가 '어른이구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20대와 다른 30대의 노련함과 뚝심, 그러나 20대 때 내가 추구했던 자신감 있는 태도를 잘 조화시키면 40대, 50대가 되어서도 멋진 어른으로 남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포기해야 하고, 포기할 줄 알아야 어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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