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해 파악한 나의 정보가 사실은 '잡음'이었다면?
제목 : 타인의 해석 (Talking to Strangers)
저자 : 말콤 글래드웰
링크 : http://www.yes24.com/Product/Goods/89404482? scode=032&OzSrank=1
오케스트라가 신입 단원을 뽑을 때 지원자의 모습을 가리는 장막 오디션으로 진행하면 훨씬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선발위원회에 정보를 주지 않으면 더 좋은 판단 결과가 나왔다. 그것은 누군가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얻는 정보가 대체로 부적절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런 정보는 편견을 불러와서 당신의 판단을 한층 어렵게 만들 뿐이다.
65p.
우리는 몇 가지 단서를 설렁설렁 훑어보고는 다른 사람의 심증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여긴다. 낯선 이를 판단하는 기회를 덥석 잡아버린다. 물론 우리 자신한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은 미묘하고 복잡하며 불가해하니까. 하지만 낯선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75p.
우리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갖고 있다. 우리의 가정은,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정직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단 믿고 본다. 그리고 의심과 걱정이 점점 커져서 해명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믿는 것을 멈춘다.
'팀 러브 인, 진실 기본값 이론 (Truth-Default Theory)'
101p.
우리는 어린 시절에 고자질쟁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배우는데, 공정하고 도덕적으로 보이는 목표를 추구하다 보면 때로 받아들이기 힘든 사회적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127p.
우리는 이 결정이 아무리 끔찍한 위험을 수반하더라도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가 굴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신뢰가 결국 배신으로 끝나는 드문 경우에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은 것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비난이 아니라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
177p.
피의자의 외모와 같이 두드러지고 과대평가되는 사건의 구체적인 특징이든 간에 이 변수들은 비밀스러운 정보의 원천이라기보다는 잘못된 예측의 원천이 된다.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은 신호가 아니라 '잡음'을 만들어 낸다.
206p.
우리는 완전히 무해한 사람들이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단지 올바르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교도소에 보내고 있는 걸까? 우리 모두는 제도적 심판의 결함과 부정확성을 받아들이면서 그런 실수는 무작위적이라고 믿는다.
227p.
알코올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이 더 이상 이를 탈 억제제로 보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알코올을 근시제(agent of myopia)로 간주한다.
...근시는 알코올의 주 요 효과가 우리의 정서적, 정신적 시야를 좁힌다는 것이다. (중략) 단기적인 고려 사항을 더욱 부각하면서 인식에 집중하게 하고, 장기적인 고려 사항은 멀어지게 한다.
...알코올은 억제된 것을 드러내는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변형하는 물질이다.
252p.
동의는 두 당사자가 협상하는 것이며. 그 밑바탕에는 협상을 하는 양쪽이 자기가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런데 협상의 순간에 두 당사자가 (알코올로 인해) 각자의 진정한 자기 자신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동의를 판정할 수 있을까?
260p.
우리가 낯선 사람에 관해 알고 싶어 하는 진실은 단단하지 않다. 생각 없이 밟으면 뭉개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에서 두 번째 주의 표시가 나온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탐색에 실제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311p.
결합 이론은 금문교에 관해 무엇을 말해주나? 만약 자살 방지 구조물이 있어서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것을 막는다면, 또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떨어지기 전에 걸린다면 큰 차이가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다리에서 자살하는 것이 가로막힌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뛰어내리러 이동하지 않는다. 자살하려는 결심은 그 특정한 다리(장소)와 결합(Coupled) 된다.
327p.
다른 사람에 관해 최선의 가정을 하는 것은 현대사회를 만들어낸 속성이다. 타인을 신뢰하는 우리의 본성이 모독을 당하는 사태는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 대안, 즉 약탈과 기만에 맞서는 방어 수단으로 신뢰를 포기하는 것은 더 나쁘다.
397p.
이전 포스트인 '떨림과 울림'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은 수많은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며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물입니다. 고작 30년이긴 하지만, 저도 직장, 성당, 동아리 등 여러 조직에 몸을 담고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는 하나의 구성원입니다.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너무 안 맞아서 대화하기 힘든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저를 뒤에서 모욕하고 허튼 말로 깎아내리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철렁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다시는 그런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웠던 점은 나를 모욕하고 깎아내리던 그 사람이 제가 보기에는 너무 성실하고 착해서 거의 전적으로 신뢰했었다는 점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먼저 나서서 행동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배려했으며, 친절하고 절제된 말투로 신뢰감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뒤에서 저를 욕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을 때 '그분이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혹시 소식을 전해준 사람이 무언가 오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험담도 하고 다녔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관계를 깨끗하게 끊어내긴 했지만, 여러모로 인간적인 관계에서 소름을 느끼게 된 아찔한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회사나 조직에 오랫동안 몸담고 계셨던 '베테랑'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사람의 눈, 표정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딱 감이 오더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5년간 나름대로 많은 면접의 면접관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평가했습니다. 새로 입사하는 신규 입사자와 같이 각 조직의 뉴페이스 들을 접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을 평가하는 어느 정도의 확고한 기준이 생기긴 했으니까요. 정확도가 높진 않지만 그래도 제가 내린 평가에 제 스스로 신뢰를 가질 정도로 어느 정도의 '사람 보는 눈'은 생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개인적인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겉모습만 보고 믿었다가 크게 뒤통수 맞는 경험은,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한두 번쯤 겪게 되는 사회적으로 흔한 경험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해서 이런 아픈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정말 궁예처럼 '관심법'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없어질 것 같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우리가 이런 경험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진실 기본값 이론(Truth-Default Theory)'라는 것을 내세웁니다. 사람은 사람을 대할 때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이런 기본값을 가지게 된 이유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했을 때 내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최소화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처음 본 상대방을 처음부터 의심하게 된다면, 이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해야 합니다. 전과 기록이 있는지, 사회적 평판이 좋은지 등 많은 리소스를 들여 상대방을 조사해야 합니다. 게다가 이런 정보들을 얻었다고 해서 100%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이 진실하다고 처음부터 생각한다면, 위와 같은 과정이 생략됩니다. 더 빠르게 본론으로 진입할 수 있죠.
책에서는 더 간단한 예시로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커피숍의 카운터에 있는 사람이 당신에게 세금 포함 6.74달러라고 말하면, 그게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해 당신이 직접 셈을 해볼 수 있다. 그러는 사이 줄이 길어지고 당신 시간이 30초 정도 허비된다. 아니면 그냥 판매원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타인의 생각, 131p
우리가 상대방의 '거짓' 판별에 서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거짓된 행동으로 내가 피해 보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기조가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점점 더 사람은 진실 기본값에 가까워지고 거짓 판별에는 무뎌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더 나아가, (책의 표현대로) 거짓 판별 스위치가 off 상태라면 거짓에 해당하는 '정황'이 포착되어도 사람은 그 정황을 애써 무시하게 됩니다. '뭔가 다른 사정이 있을 거야'라던가 '저 사람은 원래 저러니까' 같은 합리화를 통해 상대방의 속성이 진실이라고 애써 되뇌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부정할 수 없는 거짓 정황을 확인하게 되면 그제야 상대방의 거짓에 큰 충격을 느끼게 됩니다. 그토록 자신이 믿어왔던 진실의 벽이 무너지면서 패닉에 빠지게 되는 그 순간은 정말이지 너무 아찔해서 죽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바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두지 말고, 끊임없이 의심해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콤 글래드웰은 이런 진실이 모독당하는 사태는 비극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을 버리는 행동은 더 나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진실을 기본값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은 비난이 아닌 동정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진실 기본값'으로 두는 사람의 패턴이 사회적 비용을 낮추고 인간 사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게 하는 원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이 항상 모든 것에 의심하고 있다면 어떤 것도 맘 놓고 맡길 수 없습니다. 애초에 이런 상태라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사회적 기반 인프라들이 정상적으로 구축될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두지 않는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사람들 덕분에 진실 뒤에 감춰진 거짓이 드러나게 되고, 많은 진실 기본값 사람들이 겪게 될 피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으니까요. 흔히 의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사회성이 부족하다' 라거나 '항상 딴죽 거는 놈'과 같은 표현으로 비하하곤 합니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 덕에 우리가 입게 될 피해를 우리도 모르게 피하게 될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진실 기본값 이론에 기초로 한 책의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주제는 바로 '술(알코올)'에 관련된 이야기 부분이었습니다. '취중진담'이라는 노래도 있듯이 술은 사람의 '진심'을 보여주는 촉매제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최근 연구들을 보면 술은 억압된 진실된 자신을 드러내는 탈 억제제가 아닌 '근시제(agent of myopia)'라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읽어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술을 마셨을 때의 나를 생각하면, 뒷일을 생각하기보다는 당장 지금의 어떤 욕구나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간단한 예로 '술 먹고 고백하기'를 봅시다.
술을 안 먹었을 때 : "내가 고백했는데 차이면 어떡하지? 차여서 더 어색해지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이 퍼져서 놀림감이 되는 것은 더 싫은데..."
- 고백 거절에 대한 개인의 장기적인 사회적 평판을 고려하게 됨
술을 먹었을 때 : "(뒷일은 모르겠고) 오늘은 꼭 고백해야겠어..! (용기 충만)"
- 고백 거절에 대한 장기적 고민 대신, 현재 본인이 하고 싶은 욕구대로 행동하게 됨
말콤 글래드웰은 '사람은 즉각적이고 당면한 고려 사항과 복잡하고 장기적인 고려 사항 사이의 갈등을 관리함으로써 성격을 형성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술을 먹었을 때 사람은, 장기적인 고려 사항은 배제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욕구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렇게 단기적 욕구에 집중하는 상태일 때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즉, 술을 거하게 먹은 나는 '진정한 나'가 아닌 '불완전한 나'에 가깝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미국의 파티에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를 예시로 들고 있습니다. 두 남녀가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합의'한 성관계는 과연 아무 문제가 없을까? 결국 술을 먹은 상태에서 두 사람은 진정한 내가 아닌 단기적 욕구가 앞선 '불완전한 나'의 상태에서 합의하였기 때문에 이 관계는 비정상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고찰입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의 합의된 성관계는 물론 문제없습니다.)
오래간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평소에 바라보고 있던 시각을 비틀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주제들은 언제나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정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잡음'에 가까워서 오히려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하게 되고, 거짓을 판별하게 하는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것은 앞으로 사람을 대할 때 더 조심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특히나 술에 대해서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낄 만큼 좋은 주제였습니다. 술을 많이 먹은 다른 사람을 볼 때 '본성 나오는 구만' 하고 생각했던 것이 어쩌면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안정한 상태이라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을 텐데 말이죠.
말콤 글래드웰과 같이 진실을 기본으로 두는 것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자세라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겉으로는 판별할 수 없는 진실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명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경계는 필요해 보입니다. 어떤 대상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큰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투자를 할 때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분산투자를 하듯이, 우리도 진실과 거짓에 각각 분산 투자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상대방은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반대로 나도 상대방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타인의 완벽한 해석은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거짓'에 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거짓보다는 진실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게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각각 다른 생각을 가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가치관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입니다. 사회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여러 가지 비용은 반드시 치러야 하기 때문에, 비용을 0으로 만들기보다는 효과적으로 비용을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개개인의 합리적인 고찰이 필요해 보이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