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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hew Jul 19. 2020

어둠 속의 대화

빛 한줄기 없는 묵직한 어둠 속에서

관람명 : 어둠 속의 대화

링크 : https://www.dialogueinthedark.co.kr/index.nhn


� 이 포스트는 해당 전시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몇 주 전 여자 친구와 주말에 무얼 할까 대화하다가, 여자 친구의 추천으로 이 체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어둠 속의 대화라니, '무언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진지한 이야기이면 어둠 속에서 대화를 나눠야 할 정도일까? 아무튼 진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는 재미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흔쾌히 동의했다.


나름대로 해당 관람에 대해 정보를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있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체험형 관람이며,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정도의 작은 정보만 얻었을 뿐이다. 무언가 어둠침침한 곳에서 작품이나 소소한 체험을 하는 곳이겠구나라는 예상을 해보았다.


안국역 가회동 성당 조금 위쪽에 이 전시를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기에 체험 당일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건물 안쪽은 크게 특별할 것은 없었는데 카운터와 앉아서 대기하는 공간, 그리고 몇 가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면서도 '어두침침한 곳에서 과연 무엇을 보는 것일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다리던 끝에 나와 여자 친구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모여 다 같이 입장을 했다. 안내자의 인솔에 따라 입구 바로 앞까지 따라갔는데, 특이하게도 입구 앞에서 지팡이를 나누어 주었다. 


얼마나 어두우면 지팡이까지 주나? 좀 많이 어둡나 보다.



입장하자마자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처음 내가 본 광경은 아래 사진과 같다.


어둠


어둠. 빛 하나 없는 완전한 어둠 그 자체. 살면서 이런 어둠 속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 입장하고 1분도 안되어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내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혔을 때 불안감이 치솟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입장까지 도와주셨던 안내자분이 눈을 감으면 좀 더 편안해질 것이라고 해주셨기 때문에 바로 눈을 질끈 감았다.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되는 듯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완전한 어둠임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컸다. 내가 스스로 원하는 어둠인가, 아니면 나에게서 빛을 빼앗아간 강제적인 어둠인가.


여자 친구 앞에서 몰래 불안감을 삭히고 있을 때 (이때 어둠 속에 있음을 감사하게 여겼다), 앞쪽에서 밝은 목소리의 남자 안내자분이 인사를 해주셨다. 100분의 체험 동안 우리를 가이드해주실 로드마스터(Road-Master)라고 스스로 소개하셨다. 어둠 속이었지만 모두가 밝게 인사를 하니 좀 더 진정이 되었다.


이후 소리, 냄새, 촉감 등을 사용하여 어둠 속에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해보았다. 어둠 속에서 느끼는 숲과 계곡의 냄새와 소리, 어둠 속에서 타보는 보트의 울렁거림, 어둠 속에서 느끼는 시끌벅적한 시장의 풍경, 어둠 속에서 느끼는 대청마루의 시원함, 어둠 속에서 느끼는 음료수의 맛과 향.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느끼는 것들이 더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내가 촉각과 냄새로 물건을 잘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기도 해서 로드마스터 선생님과 여자 친구가 놀라기도 했다. 




100분의 시간은 놀랍게도 빠르게 흘러갔다. 어둠 속에서의 시간은 바깥보다 훨씬 더 빠르게 흐른다는 점이 오히려 두려울 지경이었다. 시각(視覺)이라는 감각 하나만 차단했을 뿐인데 시각(時刻)마저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만큼 우리가 다른 감각으로 상황을 인지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체험하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의문은, 어둠 속에서도 로드 마스터 선생님이 마치 어둠이 아닌 것처럼 우리들을 잘 인도해 주셨다는 것이다. 길을 잃고 우왕좌왕할 때 손을 잡아서 끌어주고, 무언가 물건을 나누어주거나 어떤 장치들을 조작할 때 내가 있는 위치를 귀신같이 찾아내시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사실 이 관람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아껴야만 할 것 같다. 직접 체험하면서 느껴야만 가질 수 있는 감정과 생각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관람을 통해서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나의 오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신이 지금 나에게서 시력을 빼앗아 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냥 자리에 주저앉아서 망연자실하며 신에게 울음 섞인 원망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지금 누리고 있는 나의 오감들이, 삶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도록 부여한 신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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