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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지 Oct 28. 2019

내 유서는 고래밥에게 보낼 거야

발견된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다


집에서 넷플릭스에 혼술을 하다가 짭짤한 안주가 당겼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팝콘이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살던 시절 한창 축구에 미쳐있어서 새벽마다 시청했는데, 치킨 시키자니 엄마 아빠 주무시는 시간에 혼자 먹기 야비하고 견과류 따위로는 위안이 안 될 때 종종 맥주와 먹던 것이었다. 그 버릇이 남아선지, 혼자 까바 몇 잔 하고 나니 팝콘 안주 생각이 난 것이었다.

편의점에서 바구니에 팝콘 두 개를 담았다. 팝콘 하나 먹자고 엘베도 없는 빌라 계단을 내려가고 나니 짜증이 삐져나왔던 거다. 물이나 휴지처럼 상비해두어야지 하고 다음에 먹을 것까지 두 개를 넣은 후에, 만만한 과자도 하나 더 살까 생각했다. 짭짤하고 양은 적으면서 식감도 있는 게 뭘까. 그 모든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고래밥.

잠깐. 고래밥이 아직도 나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대답 잘하는 애한테 새 모이 주듯이 한 입씩 플라스틱 숟가락에 퍼줬었다. 생각해보면 대답 잘하는 애한테 먹을 것을 보상으로 준 것도 굉장한 문제고, 그 플라스틱 숟가락을 우리 반 애들 전체에게 돌려쓴 것도 문제다. 오조 오억 년 전이니까 플라스틱 일회용품 쓴 건 패스해 주더라도. 하긴 그 선생님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그 반 반장이었는데, 선생님은 반장 엄마가 촌지도 안 가져오는 게 못마땅했는지 자기 슬리퍼를 사달라고 해놓고선 몇 번을 퇴짜 놓았다. 까리한 우리 엄마는 마지막으로 삼선 쓰레빠를 던져주고 교무실을 나왔댔다.

어쨌거나 그 고래밥이 아직도 있다니. 내가 지금 서른 다섯이니(2019년 기준) 그 기억도 이십 오 년 전이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고래밥을 내 돈 주고 사 먹은 기억이 없으니까, 아직도 생산 중인 걸 의아해할 만하다. 매일 가는 편의점에서 왜 한 번도 못 봤지. 어쨌거나 서른 다섯이 되어 스파클링 와인 몇 잔을 하고 다음 안주가 고팠던 내게 고래밥은 그렇게 간택되어 우리 집으로 왔다.

얼마 전에 친구들 몇과 이야기를 하다가 삶과 죽음이 화두에 오른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친구들에게
"있잖아, 매년 혹은 반기별로 유서를 써 둬야 한대.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르니까. 그리고 그걸 가까운 사람한테 이메일로 전달해둬야 한대. 변고가 생기면 가족에게 전해주게. 그걸 쓰면 현재의 인생을 알차게 사는 데도 도움이 된다더라. 정말로 그럴 것 같아. 나도 맨날 까먹는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라고,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고 나서 나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유서를 쓴다면 이런 내용을 써야지. 그러고 나서 누구를 전해주지? 생각나는 얼굴들은 많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내 가족에게마저 이입한 나머지 내 마지막 말을 전달하는 게 맞을지, 한다고 해도 내 사망 직후에 해도 될지 고민할 것 같은 사람들이거나, 내가 쓴 내용 자체에 심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건 그냥 막상 써먹을 일도 없는, 버스에 비치된 유사시 손망치 같은 글인데. 내용을 읽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와의 관계에 변화가 일거나 상대가 내게 어떤 감상을 갖는 게 싫어졌다. 그럼 누구에게 줘야 하지? 


딱 그러던 참이었다, 고래밥을 사서 집에 온 것은.


고래밥을 뜯어서 남은 술과 먹었다. 최근에 펭수가 SBS 로비에 비치된 미우새 토이크레인을 보고 그 오리를 갇혀 있는 동물로 이입하던 모습을 봐서 그런가, 동물의 형체를 한 스낵이 어딘가 석연치 않으면서도 맛은 있었다. 고래밥을 와그작 와그작 씹으며 생각했다. 유서를 누군가에게 보관 시켜야 한다면, 그건 고래밥 같은 사람이어야 하겠다. 나의 히스토리를 적당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와 맺는 관계에는 현재성이 별로 없고, 유서 내용을 가지고 내 안위를 쉽게 확인하려 들 일상적 거리도 없는 사람. 그 정도면 좋지 않을까.

내일 늦은 아침을 먹고 거실 리클라이너에 퍼질러 앉아서, 내게 고래밥 같은 사람이 누굴지 추려봐야겠다. 그렇게 중요하고 적합한 사람이 있을까? 서로를 겁주지 않으면서도 내 인생에 지분이 있고 냉철한. 인간 고래밥이 내 삶에 있다는 게 확인된다면 남은 10월은 되게 기분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경 안 쓰고 살다가 문득 생각나면 연락해도 될 사람이라는 점 역시 너무 고래밥스럽잖아. 

여한이 없겠다, 인간 고래밥이 실제로 발견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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