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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Dec 01. 2020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 '리베르탱고



   악역 없이 극을 끌고 갈 수 있을까? 그런 작품으로 유명한 일본의 한 코믹 북 작가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 역시도 악역의 개심, 혹은 동정의 대상이자 또 하나의 피해자로 그려냈기에 그 한계가 있다.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이 영화에서 역시 ‘좀 못됐다’ 정도이지 세상 살아가는 우리라는 무리에서 쫓아내고 싶지는 않은, 그냥 밉상 정도이다. 이러한 인물들로 감독은 유쾌한 메시지와 감동을 전한다. 하지만 왠지 서글프다. 이 영화가 판타지처럼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대통령 김정호(이순재 분), 옆집 할아버지처럼 푸근한 인상으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던 그에게 행운이자 시련의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복권 당첨. 하지만 기쁨도 잠시, 대통령으로서 이러한 행운의 주인공으로 국민의 눈총을 받을 것이 두렵다. 그냥 보통 사람이라면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 정도이겠지만 한 국가의 수장이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행운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고민, 과연 그는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인가?


 대통령 차지욱(장동건), 김정호 대통령의 이웃사촌이자 경쟁당의 당수였던 그는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국정을 시작한다. 나라를 지켜내야 하는 상황에서 단호한 결단력으로 상황을 헤쳐가는 당찬 면모의 그이지만 무서워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주사 바늘. 그러던 어느 날, 재래시장을 돌아보던 그를 향해 한 청년이 덮쳐 온다. 가슴 품에서 뭔가를 위협적으로 꺼내 든 것은 총이나 칼이 아닌 초라한 플래카드. ‘당신의 콩팥이 필요합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이미 자신의 장기를 기꺼이 내어준 아들, 이제 유일한 장기 기증 가능자가 대통령인 상황에서의 간절한 호소였던 것이다. 차지욱 대통령에게 닥쳐온 일생일대의 고민, 주사가 무서운 그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다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한경자(고두심),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녀는 대통령이자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어머니이기도 하다. 남편 최창면, 아내를 나라에 빼앗긴 그는 여전히 ‘당신이 그럼 안사람이지, 바깥양반이야?’라며 투정을 부리지만 여전히 그녀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순박한 인물이다. 이웃집에서나 벌어질 만한 일반적인 해프닝들이 청와대라는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남편은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은퇴 후 아내와 조용히 은거하려 사두었던 땅의 재개발이 결정된 것이다. 정적들의 비난이 거세지는 가운데 남편 최창면은 이제 어려운 결정을 한다. 이혼.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의 이혼 과정이 진행되고 이제 국민의 화살은 정적들에게로 향한다. 못난 남편이지만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편과의 이혼, 이제 과연 그녀의 마음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이런 대통령이라면....

 

 면허도 정지된 상황에서 차를 몰고 청와대를 나선 한경자 대통령, 어디론가 열심히 달려가는 가운데 경호실에는 비상이 걸리고 그녀를 열심히 쫓는다. 이때 막아선 바리케이드,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경호실장은 내리시라 다그치지만 개인적인 일이니 혼자 가게 내버려 달라고 한다. 하지만 단호한 경호실장. ‘지금 무면허십니다. 대리운전 불러드려요?’ 결국 경호차에 대통령을 태운 그는 모두에게 지시를 내린다. ‘목적지는 대통령님의 시댁이다.’ 이렇게 유쾌한 장면에 멋지게 편곡된 탱고 리듬이 따라 움직인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작곡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자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1992)의 ‘리베르탱고(Libertango, 1974).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1992)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음악 탱고, 스페인 탱고에 기반하여 쿠바의 ‘하바네라’의 영향을 받은 이 강렬하면서

도 정열적인 리듬은 1880년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항구 지역에서 형성되어 현재까지도 발전되어온 음악, 아니 춤이다. 이러한 빈민가의 댄스 음악이 세계적인 것이 되는 데는 여러 위대한 탱고 음악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 놓은 것이 바로 ‘피아졸라’다. 


강렬하고도 정열적인 리듬, 탱고


 탱고를 좋아하던 아버지의 영향 아래 어려서부터 탱고를 곁에 두었던 피아졸라, 그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 클래식과 재즈를 접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반도네온 주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클래식 작곡가로서의 꿈을 지녔던 그는 작곡 콩쿠르에서 1등을 한 후 프랑스 유학의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깨우침, 그의 스승이었던 ‘나디아 블랑제’는 흉내내기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어법이자 장점인 탱고로부터 영감을 얻기를 조언했던 것이다. 스스로 부끄러워했던 단순한 댄스음악 탱고, 하지만 그것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피아졸라는 ‘누오베 탱고’를 탄생시킨다. 이는 아르헨티나의 전통음악을 재즈적인 어법과 클래식적 양식으로 새롭게 발전시킨 것으로 단순한 춤을 위한 리듬적 음악을 콘서트 장으로 가져온다. 이후 그는 비발디의 ‘사계’에 착안하여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절을 그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Las Cuatro Estaciones Portenas)’, 사랑의 슬픔과 삶의 애환을 노래한 ‘망각(Oblivion)’, 그리고 영화에 등장한 ‘리베르탱고’ 등의 걸작을 남긴다. 특히 리베르탱고는 그 선율이 너무도 인상적이라 각종 악기로 편곡되어 연주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여 각종 드라마와 광고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첼로 연주로 등장하여 멋진 장면을 연출한 바 있다. 


카를로스 가르델의 'Por una Cabeza'(머리 하나 사이에 두고)가 흐르던 영화 '여인의 향기' 


 인간적인 고민에 직면한 세 명의 대통령, 그들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한 곳은 우연히도 모두 청와대의 주방이며 그곳의 주방장과의 대화를 통해서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는 장소, 그리고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주방장의 무심코 던진 말에서 그들은 해답을 찾은 것이다. ‘200억이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다면 어쩌겠나?’ ‘그럼 죽겠죠, 깔려서’, ‘이웃집의 한 명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대통령이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 불행하기를 바라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렇듯 담담한 진리들이 전해지는 가운데 현재의 정치판을 돌아 본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어쩔 수 없다. 부디 국민을 위한다는 초심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주방장의 입으로 전해진 이러한 국민을 불행하게 할 생각인가?

우리 국민들,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착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고민이 해결되는 공간



추천음반

 이번에 추천드릴 것은 음반이 아니라 유튜브 스트리밍이다. 바로 스윙글 싱어즈의 목소리로 해석된 '리베르탱고'다. 본래 사람의 목소리를 좋아했고 서로의 호흡을 맞추어 나가는 합창이나 아카펠라를 좋아했었다. 킹스 싱어즈, 스윙글 싱어즈, 리얼 그룹, 맨하탄 4 등의 조금은 오래 전 그룹들의 앙상블에는 인간미가 있다. 기계적 조작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실현할 수 없는 녹음들이 아카펠라의 현실이라지만 이들에게는 그것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보인다는 것이다. 반면 최근 등장하는 아카펠라 그룹들은 멤버의 수는 줄었을지언정 쏟아내는 음악은 무시무시하다. 음향 기술의 발전이며 마이크의 발전에 동반한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만을 양보한 채 인간이 지닌 목소리를 최대한 들려주는, 그 속에서 황금같은 앙상블을 뿜어내던 이전의 아카펠라 그룹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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