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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angsungaa Nov 02. 2020

900유로어치 초콜릿? 그건 못 참지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거라며

난 해외 출장이 꽤나 잦았던 편이다. 주로 미국, 유럽, 일본이 대상 국가였다. 군사 외교는 국가 전략 및 정책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대부분 물밑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내가 해외 출장을 간다고 친구들한테 말하면 “군인이 해외도 가고 세상 좋아졌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수많은 해외 출장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끝이 없을테다. 하지만 그 중 폴란드-벨기에 출장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다. 전편에 등장한 부장님과 떠난 첫 해외출장이기도 했고...


무려 900유로어치 초콜릿을 의도치 않게 사버린 출장이라서.

* 한화로 따지면 대충 120만원 정도


‘이런 미친’이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면 정상이다. 날 사랑하는 엄마도 똑같이 반응했으니 내가 미쳤던 것이 맞다.


우선 러시아를 경유하여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여러 일정을 소화하고 남는 여유 시간에 쇼팽 공원을 비롯한 여러 볼거리를 찾아다녔다. 쇼핑몰 옆 한식집에 들르기도 했는데, 이게 한식인지 뭔지 모르겠는 음식이었지만 “역시 한국 사람은 밥심이다”를 외치며 김치찌개 비스무레한 그 무언가와 밥을 말아먹었던 기억이 난다. 음... 폴란드 음식이 내 입맛에 잘 맞지 않아 상당히 힘들었지만, 폴란드의 한식도 현지화 싱크로율이 높아서 별반 차이는 없었다. 폴란드에서 체류할 때만 해도 내가 초콜릿 쇼핑에 내 출장비를 올인하게 될 줄 전혀 몰랐다. 일단 어딜 가도 미녀가 즐비한 이 곳은 천국 같았지만, 살 거라곤 딱히 별 것이 없었다. 사실 이때 폴란드를 추억할 만한 물건을 구매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의 유일한 아쉬움이다.


문제는 폴란드에서 벨기에 브뤼셀로 넘어가면서 발생했다. 브뤼셀에서 중간 예산 정리를 하면서 개인들에게 남은 경비를 나눠줬기 때문이다. 당시 꽤나 빠듯한 출장비에도 불구하고 매번 국내 수행 때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다며 예산 담당인 선배가 내 몫으로 900 유로 정도를 빼줬다. 호텔비, 비행기 표 등을 모두 처리하고 남은 경비(체류비, 활동비 등)에다가 부장님을 비롯한 분들이 본인들의 출장비 중 일부를 십시일반하여 나에게 나눠준 셈이다. 겉만 이십대 후반이고 속은 여전히 어린애인 철없는 난 선배에게 “선배 땡큐!”를 외치며 브뤼셀 시내로 바로 뛰어나갔다.


이따금씩 친구들과 플스방에 가서 위닝이란 축구 게임을 할 때 고르는 국가대표 팀을 보유한 나라이자(축구를 그만큼 잘한다) 유럽 연합의 행정 수도라 불리는 브뤼셀이 있는 곳이기도 한 벨기에. 하지만 나에게 벨기에는 와플과 초콜릿의 나라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 두 가지를 대표하는 나라. EU고 뭐고... 나의 미션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초콜릿과 와플을 찾아 파묻히는 것이었다.


사실 벨기에 와서 초콜릿과 와플 먹을 생각에 신난 나는 마치 외국인이 한국에 떡볶이 먹으러 온다고 좋아하는 거랑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인 것 같다. 어쨌건 출장 전부터 난 브뤼셀에 대해 열심히 검색해보고 자유시간에 무얼 할지 계획을 열심히 수립했다. 자유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 나는 자유여행파야”라는 배부른 소리는 잠시 넣어두었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자유여행”하다간 길거리에서 시간을 다 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물론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지만, 언제 또 내가 유럽 출장이 잡힐진 알 수 없으니까 한 순간도 낭비할 수 없었다. 또, 벨기에의 인종차별이나 테러가 발생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흐르는 것도 치밀한 준비의 필요성을 더했다.


900유로라는 돈까지 쥐어진 나는 정말 내가 알아본 모든 거리를 쏘다녔다. 이틀에 걸쳐 초콜릿 레이드를 하던 내가 가져오는 초콜릿 양에 같이 방을 쓰는 예산담당 선배가 기겁했다.


너 부업으로 초콜릿 장사하니?


해외출장 시 통역장교는 대체로 트렁크를 2개 가져간다. 하나는 본인의 짐을 싣고, 나머지 하나는 해외 인사들에게 줄 선물을 담는 트렁크이다. 그러니 돌아올 때는 트렁크 하나가 텅 빈다는 소리인데... 그 트렁크 하나를 초콜릿으로 가득 채웠다. 내가 다 먹으려고 산 건 아니고... 쏘다니며 먹는 그 맛있는 초콜릿을 나 혼자 먹는게 죄책감이 들었다. 해외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보통 선물을 사서 오는게 국룰이라 생각해서 선물을 사줄 사람들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당시 군생활을 하면서 내가 감사함을 표할 사람들... 엄마, 아빠, 본부장님. 본부장 사모님. 따님 세분. 당시 차장님. 차장 보좌관님. 전략본부 내 나를 잘 알고 이뻐해 주시는 부장님들, 친한 보좌관님들, 친한 친구들, 여자친구 등 리스트를 적다 보니 30명을 금세 채웠다. 또, 나를 힘들게 하지만 어쨌건 속해있는 과 선물(출장 전에 선물 챙겨 오라고 어찌나 과장이 눈치를 주던지)을 비롯한 반강제적인 선물들까지 초콜릿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다른 선물에 비해 가격이 싸다고 생각했던 그 초콜릿은... 사다 보니 양도 어마무시했고 가격도 어마무시했다.


그렇게 난 900유로를 다 초콜릿에 꼬라박은 레전드가 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미친 x이다.


한국에 돌아와 엄마에게 초콜릿을 주다가 등짝을 얼마나 세게 맞았던지... 사실 정확한 액수는 엄마에게 얘기 안 했지만, 그렇게 힘들게 세상에 내놓은 자식이 돈 개념이 1도 없다는 인식을 엄마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셈이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선물을 줄 때마다 느꼈던 그 뿌듯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무언가를 선물 받을 때 특별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특히, 그 선물이 한국에선 구할 수 없는 벨기에 수제 초콜릿이라면... 달달함과 쌉싸름함이 커피 한 잔에 곁들이면 정말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으니까.


다행히도 선물을 받은 이들은 모두 엄청 고마워했다. 선물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해주는 마법과도 같다. 또한, 주는 사람에게도 엄청난 엔돌핀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그 감정이 좋았다. 내가 주는 무언가로 인해 어떤 사람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순간이라도 방긋 웃을 수 있는 상대방이. Give first라는 자세로 살자는 마음을 먹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나의 give first 정신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서히 도전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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