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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윤 Feb 07. 2020

진짜 영어책 읽기는 귀에서 시작된다

<영어책 읽기의 힘> (by 고광윤, 길벗)

영어든 한국어든 어린아이가 읽기를 배울 때는 보통 종이에 쓰인 단어를 눈으로 보고 문자를 해독해 그 단어의 발음을 소리 내 읽게 됩니다. 하지만 읽기는 사실 (문자로 적힌 단어를 보는) 눈도 아니고 (단어의 발음을 읽는) 입도 아닌 귀에서 시작됩니다. 특히 아동의 영어책 읽기는 귀에서 시작됩니다. 귀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또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왜 그러한지 궁금하시다고요?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읽기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을 새로 배우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아동의 한글 떼기 과정을 생각해봅시다. 처음에 아이는 보통 한 글자씩 읽는 법을 배우고 단어를 떠듬떠듬 소리 내 읽으며 의미를 떠올립니다. 따라서 읽기를 배운다는 것은 말을 새로 배우는 게 아닙니다. 종이에 쓰여 있는 글이 무슨 말을 나타내는지 알아내기 위해 주로 글자 읽는 요령을 배우는 것입니다. 영국이나 미국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 읽기를 배울 때 대부분은 먼저 영어의 문자와 소리 사이의 관계인 파닉스를 공부합니다. 이런 파닉스 지식을 바탕으로 영어의 단어를 적는 각 문자들이 어떤 말소리를 나타내는지 알아냅니다. 그리고 그 소리들을 조합해 단어의 발음을 읽어내는 요령을 익히고 실제 읽기에 적용하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구어 형태로 이미 준비되어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아이들이 (모국어) 읽기를 배울 때 이미 해당 언어를 귀로 듣고 입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춘 상태라는 점입니다. 글로 쓰여 있는 단어나 문장이 어떤 말을 나타내는지 알아내는 요령을 익히는 것이지 말이나 언어 자체를 새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든 한국어든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해당 언어가 구어의 형태로 충분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만일 해당 언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단지 문자를 해독해 단어의 발음을 읽어내는 요령만 배운다면, 소리 내어 읽기는 잘할 수 있어도 단어와 문장의 의미 이해는 힘들 것입니다. 


어휘와 문법을 함께 공부하면?


 물론 단어 읽기 요령을 배우면서 동시에 필요한 단어와 문법 공부를 병행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한국의 많은 영어 학습자들은 구어 영어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단어의 스펠링과 발음과 의미를 한꺼번에 익혀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특히 초등학교 졸업 이후의 영어 학습에서 흔히 채택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파닉스 학습과 다른 영어 공부를 함께 진행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영어 읽기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는 단어 읽는 요령을 알려주고 쉽게 읽어낼 수 있는 책을 가급적 많이 읽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읽는 기술과 읽기 능력 자체를 발전시키고 영어책 읽기를 즐기는 데 집중하도록 해야 합니다. 읽기와 함께 부족한 어휘와 문법을 동시에 익히도록 한다면 아이는 과도한 부담으로 인해 영어책 읽기를 즐길 수 없게 됩니다. 또 영어 학습의 효과와 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영어를 싫어하게 될 가능성도 매우 큽니다.

 

파닉스 학습의 진짜 이유는?


 아이에게 파닉스를 가르치는 목적이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아이가 머릿속에 이미 가지고 있는 구어 영어 능력, 특히 단어와 문장 구조 지식을 문자 형태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소리로만 알고 있던 단어와 문장을 (단어의 발음을 읽어내는 요령인 파닉스를 배워) 이제는 눈으로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엇보다 아이가 영어 읽기를 제대로 즐기게 하려면 그전에 구어 형태로 영어의 단어와 문장 구조를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읽기를 배우기 전에 먼저 영어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어 능력이 없으면


 읽기 교육에 대한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미국 국립읽기위원회의 보고서(NRP 2000)에 따르면 미국의 아동들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파닉스라고 합니다. 또 파닉스 전문가들은 대부분 성공적인 파닉스 학습을 위해 먼저 음소 인식 능력(phonemic awareness)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음소 인식 능력이란 단어에 포함된 말소리의 가장 작은 단위인 음소(phoneme)를 구분해 개별 소리로 인식하고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음소 인식 능력은 언어를 귀로 들어 이해하고 입으로 말할 줄 아는 구어 능력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구어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구어 능력이 있어야만 무리 없이 습득할 수 있습니다. 구어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면 음소 인식 능력의 습득도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귀로 듣는 것에서부터


 언어를 듣고 이해하며 입으로 말하는 구어 능력은 귀로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한국어든 영어든 마찬가지입니다. 영어를 꾸준히 들으면 머릿속에 영어 입력이 쌓이면서 조금씩 영어의 말소리를 감지하고 단어와 문장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때가 되어 입력이 차고 넘치면 자연스럽게 입으로도 영어가 튀어나오게 됩니다. 이 정도가 되면 영어 단어와 문법의 기본 틀이 머릿속에 갖추어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글로 쓰여 있는 단어의 발음을 읽어냈을 때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그래야만 비로소 성공적인 읽기가 가능합니다. 

 

가장 빨리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방법 


 그렇습니다. 영어책 읽기를 포함한 모든 것은 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말은 무엇보다 아이가 영어책 읽기를 통해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추길 진심으로 원한다면 아무리 급해도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다른 아이에 비해 늦었다고 생각되면 조급한 마음이 들어 한꺼번에 많은 것을 해결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 수 있습니다. 듣기부터 제대로 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속도도 느린 것 같아 답답하고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듣기부터 순서대로 제대로 하는 것이 결국에는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멀리까지 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제가 경험으로 확인한 영어 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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