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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장 Jul 30. 2018

11. 카페 그 곶, 맛오이 샐러드.




 빨간 벽돌 외관에 흰 페인트로 그 곶 이라고 쓰여진 단아한 외관. 드르륵 소리나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피머신과 씻어 정렬된 컵들을 채운 장을 앞에 세우고 그림처럼 서 있는 부부가 있다. 어느 하나 튀지 않지만 어디에도 없을 공간이 되어 맞이해준다. 제각기 다른 의자와 테이블은 간격 좋게 띄어져 있다. 카페라는 이름에 걸맞는 맛있는 블랜딩 커피가 준비되어 있고, 커피맛을 더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담백하고 진한 디저트들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직접 구운 치아바타와 그 치아바타로 만든 샌드위치도 일품이고, 맥주와 함께하는 맛 오이 샐러드와 고구마 스틱도 어느 것 하나 뺄 수 없이 완벽하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마음편한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고 책을 읽으며 호젓한 시간을 보내기 좋다.

여럿도 좋지만 혼자가면 더 좋은 카페 제주도의 그 곶. 

 

그 곶의 전경.


 제주도에 살았던 일년 반 정도의 시간을 곱씹어보면 그 곶 뿐 아니라 생각만으로도 두근거리는 곳들이 없을리 없겠지만, 제주를 떠나고 내게 제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카페 그 곶, 그리고 그 곶의 시간이다. 광장을 오픈하고 제주도에 여유롭게 갈 시간이 없어 시간을 쪼개고 쪼개 가야 한다. 그 와중에 그 곶에서 보내야 할 시간은 3시간 5시간, 하루종일은 안될까 하며 일정들을 짜 본다. 그리고는 읽다만 책들과 빈칸밖에 없는 다이어리와 이리저리 정신없이 정리되지 않은 노트북을 가지고 제주로 향한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그 곶을 누릴 시간을 보낸다. 오픈 시간부터 마칠 때까지 종일 앉아 가방 가득 들고간 것들을 읽고 쓰고 정리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멍하니 그 곶의 향기와 공기에 취해 멍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 동안 그 곶의 블랜딩 커피는 연거푸 3잔이나 마시기도 하고, 디저트도 안주도 위가 허락하는 한 주문해서는 으음하는 소리를 내며 먹는다. 커피 그렇게 많이 마셔도 되요? 하며 걱정스럽게 묻는 언니오빠에게 저 카페인은 아무리 마셔도 상관없어요. 라며 신나게 마시곤 카페인 쇼크로 졸음이 쏟아지는 순간도 만난다. 그렇게 꾸벅꾸벅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제주에 살며 만났던 친구들을 만난다. ‘제주도 언제 온 거야?’ 하며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혼자 앉은 테이블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디저트를 나누며 한 잔의 커피를 계산 해주고 가기도 한다. 아니야 아니야 하며 따라 나가서는 포장해서 판매하는 치아바타를 건네고 다음에 놀러 올 때도 만나자! 하며 웃음을 나누고 헤어진다. 그 곶에서 그 곶을 누리며 마시는 시간은 내가 나를 위해서 보내는 시간의 중요함을 깨닫게 한다. 제주도에 가서 그 곶을 가는 게 아니라 그 곶에 가고 싶어 제주도를 선택한 날도 있었다. 가서는 하루 종일 그 곶을 누리며 이런 저런 감정을 정리하고 단단해진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온다. 


 광장을 열고, 여름 메뉴를 준비했다. 여름엔 지글지글 익혀야 하는 고기 메뉴를 먹기엔 몸이 힘들다. 한여름의 더위와 습기에 몸은 축축 처지고 머릿속엔 시원하고 차가운 음식들 생각뿐이다. 뜨거운 기온에 헐렁해진 몸속으로 차가운 음식이 식도를 넘어오면 씹는 박자와 함께 허리에 힘이 들어가 몸이 세워진다. 이마의 땀을 훔쳤던 손으로 즐거운 젓가락질을 하다보면 또 내일의 기운을 얻기도 한다. 그런 메뉴들을 준비하고 싶었다. 허리가 세워지고 기운이 나는 차가운 채소요리. 



 한국보다 더 습기차고 더운 일본의 여름메뉴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다. 여름에 별미로 해 먹던 멘츠유에 차갑게 절인 토마토, 가지를 넣어야지 하고, 이왕이면 세 가지를 맞춰 삼총사라 하는 게 좋을텐데 하고 골똘히 생각을 하다 오이가 떠올랐다. 한국보다 더 더운 일본의 여름 밤은 다양한 축제와 볼거리들로 채워졌다. 불꽃놀이를 보러 가면 거리엔 다양한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 거리가 생겨났다. 거기서 여름만 볼 수 있던 게 오이 포장마차였다. 커다란 고무통에 얼음과 함께 차갑게 식혀진 오이가 가득 들어 있었다. 오이를 달라고 하면 나무 젓가락에 꽂아 된장을 척 발라 준다.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쨍하고 차가운 오이로 흐르던 땀은 쏙 들어가고 온 몸에 닭살이 돋을 만큼 시원해진다. 맞다, 여름에 오이를 빼 놓을 수는 없다. 그렇게 쨍하게 차가운 오이꼬치를 생각하다  그 곶의 맛 오이 샐러드가 생각났다. 뜨거운 더위를 식혀주는 그 맛이. 


맛오이 샐러드

 그 곶의 여름 메뉴, 맛 오이 샐러드. 참기름에 할 수 있는 한 차갑게 식힌 오이를 짭쪼롬하게 무쳐주는 메뉴다. 맥주에 오이? 짭짤하고 고소한 오이? 오이 한 조각에 맥주 한 잔은 너끈히 마실 수 있는 마법같은 메뉴다. 거기다 그 곶 마스터들이 엄선해서 고른 에일 맥주와 함께 한다면 그래, 여름만은 커피를 잠시 뒤로 하고 맥주로도 좋아. 맛 오이 샐러드와 함께 라면 커피보단 맥주 한 잔 더요. 하고 주문하게 된다.

 


 그 곶 언니에게 연락을 해 메뉴를 이야기 하고, 광장에서 재현해 보아도 될까요? 하고 허락을 구했다. 별건 없어요 그냥... 하며 알려주는데, 참기름부터 달랐다. 읍내 시장에서 짜온 고소한 참기름으로 무친다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얼마나 정성스레 오이를 식히는지 대충대충의 아이콘인 나는 그만큼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하며 마주하지도 않는 눈동자를 천장을 보며 피해야 할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괜히 물어봤나 할 정도로 섬세하게 식힌 오이로 만드는 맛 오이 샐러드를 알게 되었다. 


 한 여름의 7,8월에 여름메뉴 삼총사는 차갑게 했다는 뜻의 히야시를 붙여 히야시 토마토, 히야시가지 그리고 그 곶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맛 오이 샐러드로 구성되었다. 늘 여름 초반에는 양배추 스테이크가 그랬듯 잘 안 나가는 채소메뉴지만, 매년 봄 즈음 되면 올해는 언제부터 여름 메뉴를 시작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는 메뉴들이다.      


카페 그 곶 내부.


 카페 그 곶은 아쉽게도 재계약을 할 수 없어 새로운 곳에서 공간을 꾸리고 있다. 장소가 바뀌어도 음식만큼 올곧은 언니오빠이기에 그 곶은 그 곶으로서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제주도엔 그 곶이 없지만, 올해도 광장에서는 그 곶의 맛 오이 샐러드를 만날 수 있다. 그 곶을 기억하며 계속 내도 괜찮을까요? 라는 물음에 ‘응 맛오이 나도 먹고 싶네요’ 라는 대답에 그 곶이 더 단단히 만들어져 감을 느낀다.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그 곶이 그렇게 그립다. 그렇게 시간을 내고 비용을 지불하며 떠난 여행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이 곳에서 만족할만한 시간을 보낼 때마다 광장이 그리워진다. 그 공간을 즐기며 위로받고 마음이 가득차는 순간, 광장에서 비슷한 기분으로 마음을 충전할 단골손님들이 생각난다. 내가 광장을 열어 놓았다면 손님들이 와서 내가 그 곶에서 받는 것과 같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텐데... 하는 마음이 들어서 당장에라도 광장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렇게 간 제주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들을 사 오면서 이거 드세요 하고 내밀면, 잘 다녀왔어요? 라는 인사와 함께 광장이 그리웠노라고 이야기를 하는 손님들을 만난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처럼 손님들에게도 그런 광장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광장 오픈했습니다. 하고 sns 에 업데이트를 한다. 오늘 날씨엔 무슨 요리가 어울릴까 오늘 따라 우울해 보이는 손님에겐 무슨 음식을 권해야 되나 고민하며 즐거운 만남들을 기약한다. 








광장, 그리고 광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글, 김광연 / 그림, 박승희




일러스트레이터, 박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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