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책을 읽어 내려간다. 휴가 기간 동안 1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그중 소설은 단 한 권밖에 없어서 소설을 좀 더 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광장에 있는 책은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많았다. 그게 취향이기도 해서 소설을 고르려 책장을 봤지만 결국 고른 건 에세이다.
며칠간 빠르게 읽어 내려간 책들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지는 걸 느낀다. 바닥의 시각 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록 틈 사이로 낀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마음에 걸린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신발로 틈새를 콱콱 차 봐도 며칠 얼어 있었던 보도블록 틈 사이의 눈들은 깨지지 않았다. 이런 보도블록 상태인데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지팡이에 의지해 걸을 수 있을까? 아침에 새 눈을 밟고 싶어 추운 날 일부러 일찍 나와 뽀득뽀득 밟아 나간 눈길에서 즐거움을 느꼈는데, 며칠 지나도 치워지지 않는 보도블록 틈 사이의 눈을 보며 즐거움은 걱정이 되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생각하다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생각이 미친다. 이 거리로 나온다면 얼마나 큰 어려움이 생길까. 비장애인인 나도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걸어야 하는 이런 날 장애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 이동하는지 궁금해졌다. 무조건 집에 있어야 하나. 약자를 위한 더 큰 배려와 세심한 관심으로 보도블록을 먼저 정돈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물론 사회적 약자들도 이동하기 힘들 텐데, 이런 날에는 꼼짝도 없이 지정된 장소를 벗어날 수 없는 건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약자도 바닥이 얼고 걷기 어려운 날, 외출을 해야 할 이유가 왜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이런 날도 걱정 없이 잘 다닐 수 있도록 어떤 장치가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걷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노약자용 버스가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운행을 정지한다는 문구가 보였다. 코로나라 마스크를 쓸 수 없는 발달장애아를 위해 엄마는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아 함께 산책하다가 아이를 잃었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사람들은 아이를 찾기 위해 공개된 어머니의 전화로 그러게 애 간수를 잘했어야지 하고 꾸중하는 연락들을 그렇게 했다는데 참 정성스러운 오지랖이다. 그 시간에 차라리 아이를 찾는 곳에 발길이라도 보내던가, 어디라도 아이의 사진과 내용을 공유하지는 못할망정. 알수록 불편해지는 게 세상이고 예민하게 조심해야 된다는 걸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낀다.
당장 내일모레부터 광장을 열면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깊이 책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 벌써 아쉬운 기분이 된다. 그만큼 오랜만에 독서의 맛에 빠졌다. 독서로 확장되는 세상에 머릿속이 시원해진 기분이다. 목표를 정하면 그래도 좀 읽지 않을까 해서 올해는 100권쯤 책을 읽어야겠다고 계획을 세워본다. 오늘까지 11권. 휴가 기간 계획했던 매일 한 권의 책 읽기는 못했지만 그래도 읽어내고 기록하는 순간을 맞이했던 게 이번 휴가의 성과였던 것 같다. 늘 새로운 세계에서 사람과 음식과 거리를 다니면서 받았던 자극적인 경험들이 책을 읽음으로써 예민하고 세심하게 새겨지는 것 같다.
이번 휴가기간 동안 홍승은 작가님의 책을 두 권 읽게 되었다. 한 권은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였고 그 책을 읽으며 광장에 사놓았던 이 책이 같은 작가님인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 졌다.
특히 작가가 인문학에 관한 카페를 운영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 챕터에서는 문단 통째를 필사해서 다이어리에 적어 놓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매일 부딪치며 고민하는 문제이자 열려 있는 공간(혹은 조직)의 딜레마. '환대'는 어느 범위까지 가능한 걸까.]라는 문구처럼. 일상적인 친절의 정도는 모두가 다르게 기준을 세우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을 상식이라 들이밀며 공격해 올 때 아연한 기분이 들고 만다. 늘 생각하지만,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 음식점을 여는 것보다 낯을 가리는 사람이 음식점을 여는 게 더 욕먹는 것 같은 아이러니를 자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서비스직을 행하는 사람도 낯을 가릴 수 있다. 물론 먹는 사람의 기분이 먹기 전부터 망치는 정도라면 그것도 그것대로 옳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한국의 서비스업은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다.
이 책은 부재가 페미니즘 에세이인만큼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고 페미니스트로 사는 삶에 비슷한 고민을 나누어 안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페미니즘이 뭘까. 진정한 페미니즘이 뭐냐 하면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진정한, 이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단어이고 어떤 범위를 재단하게 되는지 단단히 그리고 담담히 들려준다. 누군가는 작가님의 글쓰기를 치기라 치부하고 거부감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래서 더욱 명랑함이 느껴졌다.
P.008
나는 왜 책을 내려고 할까. 한참을 머물렀던 질문이다. 내 몸이 반응한 지난 새벽, 몸이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에게 닿고 싶다. 이 ‘불편한 책’이 매번 자신을 의심하고 해명하려고 노력해왔던, 그러나 생각하고 말하고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으려는 당신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자신을 이해해줄 곳 없어 혼자 뒤척이며 긴 밤을 보낼 때, “네가 예민한 게 아니라 그들이 무심하고 게으른 거야”라고 말해주는 새벽녘 한 통의 통화이길 바란다. 너의 절망이 문을 닫으려는 시간에, 너의 것보다 더욱 캄캄한 절망 혹은 희망으로 문을 두드리고 싶다.
P.042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누군가를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p.111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닌 걸까. 페미니즘은 단 하나 혹은 메갈리아와 메갈리아가 아닌 것으로 나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정체성도 페미니스트 혹은 메갈리안으로만 정의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쉽게 “너는 진정한 페미니즘을 하고 있구나”라고 말할 수 없다. 각자의 삶을 자유롭게 하는 개개인의 페미니즘이 있으며, 페미니스트‘들’은 사안에 따라 협력하거나 투쟁하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정 하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페미니스트가 세상의 구원자이거나 천사이거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존재는 아니니까.
p.223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하면 으레 사고를 치거나 지나치게 외향적이어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지만, 학교가 개개인을 담지 못해 그만뒀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모두에겐 각기 다른 성향과 사정이 있다.
p.243
"뭘 또 그렇게까지"가 아니라, "내가 몰랐구나. 잘못했네"라고 말해야 한다.
p.249
매일 부딪치며 고민하는 문제이자 열려 있는 공간(혹은 조직)의 딜레마. '환대'는 어느 범위까지 가능한 걸까.
p.253
상대에게 무례하고 무심하게 행동하면서 환대를 바랄 수 있을까. 우리는 무례한 걸 참아가면서 감정노동하기 위해서 카페를 만든 게 아니라, 무례한 세상에서 사소한 것부터 변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카페를 만들었다. 이곳은 모두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p.278
진보는 정치적 입장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태도이다.
p.296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인간은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