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열네 번째 날
; 휴가 아닌 출근

by 광장장

다음 주 월요일이면 광장을 열어야 한다. 물건을 배송받고 정리하고 소스는 미리 만들어 놓아야 된다. 월요일에 모든 걸 준비하기에는 아무리 아침 일찍 출근한다고 해도 맞추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정신없이 준비하다 보면 꼭 뭔가를 빠트려서 낼 수 없는 메뉴가 생기기도 했다. 오랜만에 광장, 열흘 남짓한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도 겪은 것 같은 일상이 시작된다.


휴가 전에 미리 꺼 뒀던 냉장고는 성에가 다 녹아 청소하기 좋은 상태가 되어야 되는데 추운 날씨 때문에 다시 얼어있었다. 작년 겨울을 무사히 버텨냈던 식물은 이 한파에 쓰러져 있고, 가게엔 난방을 돌려도 턱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 추운 날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휴가를 가기 전에 미리 주방의 물을 틀어 놓고 가서 수도가 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온수기는 꺼 두고 가서 뜨거운 물이 나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졸졸졸 나오게 틀어놓은 수도를 세차게 틀자 물이 지나간 자리가 그대로 얼었다. 올 겨울이 이상기온으로 유난히 춥다고 하지만, 늘 여름의 시간을 보낸 1월이라 더욱 추위가 깊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르바이트생이 오기까진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았는데 그때까지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라 일단 작은 온풍기를 켜서 몸을 녹였다. 머릿속으로 이것하고 저것 하고, 이건 월요일에 해야겠다 하고 미루며 몸을 녹였다.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30도로 설정된 온풍기는 2월에 예민하게 코를 벌름거려야 느낄 수 있는 봄기운 같은 바람만 내뿜었다. 소스를 만들려고 올리브 오일을 따르려고 했더니 젤리처럼 꾸덕하게 떨어졌다. 올리브 오일도 얼었다. 식용유도 마찬가지였다. 영하 20도의 밤을 지새운 그 어떤 것도 얼지 않은 것은 없었다. 수도세의 걱정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을 틀고 간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아니었다면 당장 월요일의 오픈도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13.jpg 방학이 끝나면 모든 그릇을 베이킹 소다가 풀어진 뜨거운 물에 담군다.


벌써 5년째 광장의 시간을 함께한 베테랑 알바님이 오고, 본격적 업무가 시작되었다. 광장의 모든 그릇을 한 번씩 닦아냈다. 그릇이 비워진 선반의 미니어처 술병들과 각종 기계들을 빼고 선반도 싹싹 닦고 빈병들도 정리했다. 그새 왔던 많은 우편물들 소포들은 뜯어볼 새도 없이 주방을 정리하고 냉장고를 채웠다. 굴튀김을 위한 생굴은 함박눈으로 길이 얼어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무사히 날짜에 맞게 도착했다. 소스를 끓이고, 오븐에 구워내고, 썰고, 다지고, 볶고, 갈고, 굴튀김까지 무사히 준비를 마쳤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수도 사정 때문에 다시 한번 더 출근해야 되겠지만 오랜만에 일을 하니 집안에서 책을 읽으며 보낸 시간과는 또 다른 활기가 느껴졌다. 어차피 어디도 갈 수 없는 한파와 코로나에 비록 많지는 않지만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며 몸을 움직여 일할 수 있는 순간들이 기대된다.


올해의 첫 손님은 어떤 분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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