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린 데다 추위가 극심해 광장으로 출근해서 미리 체크하려고 했던 발걸음을 멈췄다. 어차피 내일은 출근해서 일해야 되는데, 하고 조금 일찍 출근하기로 했다. 차가운 눈 세상을 보고 나니 머릿속에는 라면뿐이었다. 친구들이 왔을 때 사다 놓고 남은 라면 하나. 그 라면이 계속 눈길을 보낸다. 그래 2주면 열심히 참았어. 하곤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 짭짤하고 뜨끈한 국물로 속을 덥혔다. 마침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벌써 15년째 외국생활 중이다. 한 10여 년 전쯤 친구가 호주에서 캐나다로 주거지를 바꾸고 우리는 거의 매일 영상통화를 했다. 친구의 시간이 나와 정 반대가 되었던 캐나다 시절, 친구와 전화기를 켜 놓고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며 아침과 저녁을 공유했다. 오늘은 뭐 먹을 거야? 하고 물으며 각자의 아침과 저녁을 컴퓨터 앞에 차려놓고, 각자의 식사를 하며 일상을 공유했다. 친구는 유난히 우리 엄마의 파김치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내가 만드는 음식을 그리워하며 라면을 먹거나 간단한 반찬으로 끼니를 때웠다. 나는 간혹 간단히 요리하는 방법들을 알려주고 친구는 또 실패했어. 하며 함께 웃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 친구와 함께 캐나다와 한국의 일상을 나누던 게 벌써 10년이다. 그 사이 한국에 한 번 다녀갔을 때 함께 만난 나의 미국 친구와 결혼해 지금은 아이 엄마가 되어 미국에서 살고 있다. 다양한 현실로 친구의 캐나다 유학시절과 미국 친구와 연애를 하게 된 순간,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고, 그 아이가 커가는 모습까지 영상통화로 함께 했다. 친구의 딸이 첫 걸음마 하는 모습도 아침의 영상통화로 보며 와! 이 아이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하는구나 하며 기뻐했다. 우린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친구의 딸은 (친구의 열렬한 교육으로) 이모. 이모하고 부르며 스마트폰에 키스를 날릴 정도로 내게 대한 애정이 넘친다. 친구는 우리 딸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할 정도로 아이는 나를 익숙하게 찾았고, 친구는 일을 하다가다 잠깐만 봐봐 하고 랜선 내니가 되어 아이와 장난을 치며 한참을 스마트폰 앞에서 봐주기도 했다.
친구가 한국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마다 다양한 일들이 생겼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 이민자들을 차별하며 비자가 나오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떤 해에는 미국 친구의 이직이, 또 어떤 해는 임신과 출산이 이어졌다. 친구는 늘 내 음식을 그리워했지만, 아직 광장도 한 번도 오지 못했다. 올해는 기필코 가겠어. 하고 아이와 남편과 함께 한국행을 준비하며 함께 계획을 세우는 동안, 코로나가 터졌다. 친구를 만날 기대에 매해 마음이 부푸는데 어쩜 이렇게 잔인한 일들이 생긴다.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요즘은 재택근무를 하며 육아를 하는 친구와 더 오래 영상통화를 하게 된다. 늘 미국의 심각한 상황들을 실시간으로 듣다 보면 한국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친구와 통화는 늘 언제 와, 언제가.로 끝난다. 이젠 정말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하며 헛웃음을 짓기도 한다.
자유롭게 티켓을 구입하고, 이동할 수 있던 시절이 금지된 지 1년인데, 벌써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여겨진다. 한국 안에서도 타 도시로의 이동이 걱정되고, 일상적인 지하철과 버스에도 경계를 가지고 살게 된다. 그나마 무리를 한다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출퇴근을 할 수 있지만 내일은 조금 괴로울 것 같다. 늦은 저녁 연락이 닿은 친구도 내일은 꼭 버스 타고 출근하라고 할 정도니 이 추위가 상상도 잘 되지 않는다. 마스크를 벗고 모두가 시내를 활보할 수 있는 날은 지금 생각만 해도 먼 미래의 이야기 같다.
오늘 저녁엔 조금 일찍 잠들고 내일을 준비해야 될 텐데, 방학이 끝나가는 아이의 아쉬움처럼 새벽녘까지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체크하고, 작업할 일들의 주문을 넣고, 그리고 빼먹은 건 없는지 한참 다시 생각해 본다. 오늘 든 책은 모두 읽고 자야지 하고 읽어 내렸더니 벌써 2시다.
며칠 전 봤던 다큐멘터리 트루맛쇼에 박찬일 셰프가 나왔다. 맛집 프로를 고발하는 영화에 유명한 맛집을 운영하는 셰프가 나올 수 있다는 건 적어도 자신에게 당당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나온 패널로 인해 신뢰가 영 미덥잖은 것이기도 했지만...
노포를 찾아 기록한 이야기는 비단 서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는 흔하고 이름 난 가게들뿐만 아니라 미처 몰랐던 메뉴와 지역까지 헤집어 기록한다. 에필로그에는 취재하지 못한 아쉬움과 기록을 남겨 다행인 안도가 교차한다. 책 내용 중에도 각주에 고인이 된 창업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이별한 분들이 몇 분인가 나올 정도였기 때문에...
광장을 5년 차, 이제 2021년이면 만 5년 차가 되고 6번째 해를 맞는다. 조금은 건방진 기분이 되었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5년이면, 이런 바쁜 세상에서 여자 혼자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에 가득한 단골손님들의 수에 SNS 팔로워 수에 나도 모르는 새 만족했었나 보다. 글을 읽어 내려가며 몇십 년을 인생을 바쳐 이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내 인생에 여기에만 매몰될까 봐 버둥대고 무리하며 한 달을 쉬어 돌아올 힘을 얻었는데, 주인이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이 여러 번 실려 있어 내 생을 위한 수단을 스스로 조금 우습게 봤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물론 그 시절과 지금의 가치관은 매우 다르겠지만 지금까지 이어온 그 힘은 일을 중요시하고 존중하는 힘에서 유지될 수 있는 것 같았다.
올해는 너무 어려우니 음식의 가격을 조금 조정해야 되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쉬는 동안 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 되겠다. 광장을 오래오래 언제까지 오래오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반질반질하고 딱 떨어지는 주인장의 성미를 드러내는 것 그 이상의 욕심이 오히려 광장을 퇴색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백 년 식당이 좋아 노포의 장사법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시 한번 백 년 식당을 읽어봐야 되겠다.
P.006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 한 시대가 들어오는 듯한 식당들이 있다. 맛이 있어 오래 남아있는 식당, 그것을 우리는 노포라 부른다.
P.097
소도 변해요. 세상만 변하는 게 아니라. 60년 넘은 경력 주방장의 날카로운 정리다. 인간도, 세상도, 소도 변한다.
P.192
기실, 요리사만 바뀌어도 맛은 변한다. 요리사의 컨디션과 계절도 영향을 준다. 요리사의 움직이는 동작 사이에 간파하기 힘든 질량가 에너지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걸 우리는 보통 규명하기 어려워서 '손맛'이라고 부른다. 그 손맛이 변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옛 맛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이전에 알아두어야 할 세상의 물리적 원칙이 아닌가 싶다.
P.369
포장마차라고 우습게 보면 큰일 나제. 암. 우리 집이 어떤 집이여. 네가 청춘 묻은 집잉게.
P.386
문화재란 꼭 금붙이나 그림, 불상만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살아 있는 우리 삶의 비늘들이 다 문화재다. 그걸 가리고 편집하는 일을 누군가 해야 한다. 석기시대 패총은 훌륭한 유적으로 연구자들과 당국에서 애지중지한다. 그것은 실은 선인들이 조개 까먹고 버려서 쌓인 쓰레기산이 아니던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저잣거리의 밥집 부엌에도 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보고 공부하고 감상할 여지가 무수하게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걸 모르쇠 하거나, 아니면 그게 중요하다는 인식 조차 없는 당국을 보면 기가 찬다. 세금도 많이 거두어 돈도 많던데, 왜 이토록 중요한 일에는 외면으로 시종 하는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