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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장 Aug 13. 2021

001.39세의 생일, 40세의 생일.


며칠 전, 40번째 생일이 지났다.

 어떤 친구는 이제 만으로 세야 한다며 오늘부로 30대의 마지막 나이가 되었다고 하고, 또 다른 친구는 진짜 불혹이야. 하고 헛웃음을 실어 축하를 건넸다. 생일이라는 게 참 이상한 날이라 묘하게 기분이 일렁이고, 괜한 기대를 하기도 하고, 어떤 감동을 받기도 하고, 잠들기 전엔 꼭 허한 기분을 느끼고 만다.


생일 즈음에 늘 챙겨 듣는 노래가 있다.

언니네 이발관의 <생일 기분>이다.


참 이상한 건 멀쩡하던 기분이
왜 이런 날만 되면 갑자기 우울해지는 걸까
난 정말 이런 날 이런 기분 정말 싫어


 96년에 발매된 이 노래는 생일날 나만 기분이 멜랑꼴리 해 지는 게 아니라는 것, 어떤 날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만큼 기분 제어가 되지 않는다는 걸 노래한다. 이 노래를 듣는 이유는 특별한 기대에 부풀 지 말고, 일상의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


 한여름에 태어난 탓에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가족과 식사를 하며 생일을 보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친구들과 생일파티란 걸 해봤다. 억지로 졸라서 열었던 생일파티. 생일의 음력 날짜로 양력 날에 파티를 열었다. 엄마는 별나다며 그날은 네 생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늘 방학이 생일이라서 싫다고 짜증 부리던 사춘기의 나를 위해 파티를 열어 주었다. 친구들을 부르고 엄마가 해 준 가득한 음식들 앞에서, 케이크에 초도 꽂고, 노래도 부르고, 선물도 받고, 맛있게 먹고, 신나게 놀았다. 친구들을 다 보내고 들어온 집에서 엄마는 여전히 주방에 있었다. 머쓱한 기분이 들어 방에 들어와 누웠는데 생각만큼 즐겁지도 않았다. 처음 하는 생일파티라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몰라 내내 친구들의 기분을 신경 쓰느라 안절부절못하던 순간들과 여전히 주방을 정리하던 엄마의 모습이 섞여 나도 모르게 '에이씨'하고 뱉어냈다. 그 날을 제외한 10대의 생일은 늘 가족과 식사를 하며 보냈다.


 20대엔 술과 함께 축제처럼 보냈다. 늘 정신을 놓을 만큼 신나게 술을 마셨다. 20대의 생일을 지내면서 생일이 뭐길래 이렇게 신나게 보내려고 애를 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에 답이라도 하듯 20대가 끝나갈 무렵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생일도 그냥 흘러가는 365일 중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날 중 하나라는 문구를 만났다. 그래, 매일이 특별한 날이다. 생일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고, 매일이 생일인 것처럼 특별히 보내려 애써보자 그리고 생일을 보통의 날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30대의 생일엔 친구들과 만나지 않았다. 처음   간은  혼자만의 약속을 잡아 나를 위해 보냈다. 공연을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혼자 카페를 돌거나 여행을 가기도 했다. 친구들은 잊지 않고 연락해 주었지만 고맙다 답을 하면서도, '나는 이제 생일에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어.'라는 말을 붙였다. 그렇게  년을 지내다 보니 이제 친구들도 ' 살았고,  지내자' 하는 문구로 안부를 묻는  정도가 되었다. 기대를 하지 않으니 오랜만의 연락이 반가울 때가 많았다. 파티를 하지 않는다는  알고 일부러 동네로 찾아와  먹자 하고 부르는 친구가 있어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거의 대부분은 일을 하거나 하며 일상과 다름없이 보냈다.


 10년쯤, 조용히 생일을 보냈으니 40이라는 인생의 절반쯤 지내 온 올해는 뭔가 재미난 파티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했지만 누구와도 모일 수 없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았다. 6시 이후엔 나를 포함해 단 한 명만이 함께 할 수 있었다. 뭐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일하는 날이라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올해 어떤 계기로 새롭게 알게 된 친구들이 많아졌다. 이전까지의 생일을 어떻게 보낸지 모르는 새로운 친구들은 일상적인 방식으로 생일을 축하했다. 생일 전부터 생일이 지나서까지 각자의 방식들로 축하했고 오랜만에 축제 같은 생일 축하에 들떴다. 시간을 내 찾아온 친구들에게 '별 특별한 날도 아닌데 일부러...'라는 얘기를 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케이크 하나 없이 지나갔던 해도 있었는데, 올 해는 초를 몇 번이나 껐는지 모를 정도였다. 귀여운 친구들 덕분에 새삼 일상이 축제 같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하고 노래를 부르곤 초를 끄기 전 꼭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원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소원이 없다. 하고 싶은 건 그냥 하는 편이기도 하고, 현실이 될 수 없는 막연한 소원은 내 것이 아니라 그런지 몰라도 소원을 생각하면 늘 머릿속이 하얘진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소원이 없다고 말했더니 친구 하나가 '코로나 끝나라고라도 빌어!'라고 얘기해서 아, 다음부터는 그걸 소원으로 비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



 의미를 두지 말아야겠다고 아무리 다짐해도 생일엔 좋던 나쁘던 특별한 기분이 된다. 그래서 생일엔 뭔가 새로운 결심을 하고 마는데, 작년 생일부터 다시 일상을 기록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애주기에 따른 다양한 이벤트들과 조금 멀어진 채로 40대에 접어든 사람의 일상,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의 중심에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평범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특별하지도 않은 매일의 조각들을 기록해보고 싶다. 분량과 주제는 물론 요일과 시간도 정하지 않고 가능한 자주,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로 찾아오려고 한다.


 결혼하지 않은 것 말곤 유별난 점 하나 없는 39세와 40세 사이의 일상 이야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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