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말고 속여라"
"persona" :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는, 특히 그의 실제 성격과는 다른 한 개인의 모습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학창 시절을 보내온 사람이라면 페르소나에 대해서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가면이다. 나 역시 필요에 의해 자주 사용한다. 아니, 사용이랄 것 도 없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어쩌면 꼭 필요하다. 이게 있어야 나를 잘 지킬 수 있다.
어딘가에 소속이 되면, 그곳에서 원하는 모습을 연출해 줘야 한다. 성인이 되어 여러 역할이 생기면서, 우린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동시에 가지기도 한다. 어느 것이 내 모습인지 혼동이 오지만 사실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다. 다들 그러니까.
페르소나 없이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나의 패를 들키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보여주게 되면, 사람들은 급속도로 흥미를 잃는다. 굳이 그들에게 진실될 필요는 없다. 집 밖을 나가 타인을 마주한 순간, 나의 어떤 모습을 소모시킬 것인지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외모던, 이미지던, 성실한 직원의 모습이던 상황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이것이 서로가 상생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가끔, 페르소나의 존재를 잊게 되는 순간들이 온다. 바로 심신이 망가져 나약해져 있을 때이다. 본의 아니게 이런 상황에서는 달콤하거나, 날카로운 말들의 출처와 목적을 애써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일으키기도, 무너뜨리기도 하기에 아주 위험하다. 누군가 이런 말을 아무 서스름 없이 내뱉는다면 의심해 보라.
'목적이 무엇인가'
나는 때때로 가까운 사람들의 페르소나를 알게 되면서 더더욱 실망했다. 대체 난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겪은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제대로 속은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다. 앞서 언급했듯 대부분은 투명하지 않다. 그저 그들은 내게 무언가를 기대했고 바랐기에 머물렀고 잘해줬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유쾌한 일이다. 그만큼 나도 무언가를 바라면 되지 않는가. 자꾸 빼앗긴 다는 기분이 든다면 당신도 빼앗아라.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면을 얻는 것은 그럴 가치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 점차 익숙해지다 보면 가면 뒤 숨겨진 본질이 점차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한눈에 제대로 다 알아볼 순 없다. 그렇게 확신하는 것이 더 오만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악하지 않은 존재가 발견되었다면 굳이 내칠 필요는 없다. 적이 내편이 되면 때로는 도움이 된다. 상대가 내게 보여주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어라. 굳이 진심을 다할 필요는 없다.
자, 그렇다면 당신의 페르소나는 어떠한가. 쓸만한가. 나는 이 가면을 만들어내기 너무 어려워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애써 머리를 써서 연기하고 훈련해야 할 정도로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나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악을 썼던 기억이 여럿 있다. 그러나 이 연습에 익숙해지면 신기하게도 내가 훨씬 더 편해진다. 오히려 진짜 내 자아는 그 속에서 더욱 편안히 쉴 수 있기 때문에 덜 소모적이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상처도 덜 받게 된다.
가면을 쓴다는 것은, 즉 페르소나를 이용한다는 것은 가식을 떨고 거짓을 행하자는 말은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꺼내어 상황에 대처하고 이를 통해 내 안의 맑은 성정을 지켜내자는 것이다. 한 때 나는 사람을 겪으면 겪을수록 내가 갉아 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숨어버린다거나 내 입맛에 맞는 사람만 가려서 만날 수 없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상황을 견뎌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이때, 건강한 페르소나를 꺼내길 추천한다. 그러다 보면 물렀던 나의 내면이 점점 더 강인해진다. 이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나의 내면에도 근육이 생긴다. 결과론적으로, 꽤 쓸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