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움 속 희소성

날것의 신념

by 그웬


신청해두고 한동안 읽지 못했던 윤소정 님의 <생각 구독> 3, 4, 5월 호를 며칠에 걸쳐서 읽었다. 너무 많은 내용이 담겨 있어서 이렇게 휘리릭 읽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다. 읽고 또 읽고 다시 펼쳐서 읽어야겠지만은...! 우선 매달 공유해 주시는 생각이 정말 보석 같다. 날것의 글도 모자라 날것의 대화를 오디오로 거침없이 공유하는 그녀를 보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닮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씩 차오른다. 아픔마저도 매력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녀의 찐한 사람 냄새. 이런 내 마음을 너무도 잘 알듯 그녀는 다정한 말 한마디를 덧붙인다.



"때가 되면, 기억하게 될 테니 그냥, 쓱 읽어줄래?"








엄마를 잃은 상실의 아픔과 슬픔에 무뎌져 있던 감각들과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꿰어진다. 물론 이 슬픔은 영영 가시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고 또다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삶의 곳곳에서 나를 잠식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 삶의 일부인 것을, 이 슬픔과 그리움이 떠오르는 순간엔 잠시 멈추어 그 감정을 그대로 껴안고 그대로 흠뻑 느끼고 살아야지.



이것이 현재의 내가 지닌 마음, 날것 그대로이다.






날것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감정이나 표현을 좋아한다. 이 단어가 본격적으로 내 삶에 들어와 사용되기 시작한 건, 2022년 멕시코를 여행하며 발행한 이메일 레터에서였다.



gwen's raw thoughts

그웬의 로우또츠



때로는 엉성할 수도 있고 거칠 수도 있지만 날것 그대로 나와 나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은 꽤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동시에 그만큼 나의 글을 발견하여 읽는 누군가에게는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있다. because I put my guard down first.



그리고 이렇게 날것이라는 키워드로 소정님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 느낌이라 더욱 기분이 좋다.




매일 상기시키기 위해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지정해두었다




떼를 지어 움직이는 작은 물고기가 되기보다는 흐름과 상관없이 방향을 선택해서 수영하는 큰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그 대가가 때로는 고독이라 할지라도.



날것의 신념들이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할 것이라는 그녀의 이야기에 나의 생각을 기록하고 이야기함에 더욱 거침없어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이 원하는 것을 내가 갖고 싶어 모방하는 것인지는 스스로 묻고 또 되묻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무리를 지어 헤엄치는 물고기 떼 속에 있을 때는 더더욱. 그래서 나는 때로 고독을 원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성운 님의 <사고실험> 영상 중 레트로(Retro) 앱 공동 창업자이신 네이선 샤프님과 진행한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인스타그램에서 '스토리' 기능을 개발한 프로덕트 매니저에서 레트로 앱을 창업하기까지. 건축에 관심이 있었고 정치와 철학을 전공한 그가 소셜 미디어 앱을 개발하기까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듯해 보이지만 그 속에 a through line이 있다고 한 그. "사람들 안에 최고를 끌어낼 수 있는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는 것"의 관점으로 보면 건축도 정치도 그리고 지금의 레트로도 동일 선상에 있다는 그의 why를 통해 나의 why를 한 번 더 점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youtu.be/cWacG635yZE?si=vby__PfR_HjOYkqE





소셜 미디어의 흐름이 크게 바뀌었다.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흥미나 정보 위주의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타고 우리의 삶에 흘러들었다. 하루의 많고 적은 시간을 스크롤링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보지만 정작 기억에 남거나 의미 있는 콘텐츠는 몇 없다.





여기서 몇 가지 키워드가 등장한다.





흥미나 정보 위주의 콘텐츠 vs 내 친구의 이야기가 담긴 콘텐츠





내 품에 가만히 안겨있는 이 검은 고양이 Dave는 아직 8개월도 안된 꼬맹이다. 작년 10월, 어찌 된 일인지 이 꼬맹이는 당시 태어난 지 4주도 안되어 보일 때였는데 8층에 사는 친구 집 앞까지 올라와서 야옹야옹 울고 있었다. 몽골에서 고양이는 불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데 특히나 검은 고양이는 더 그렇다. 그래서 친구는 이 꼬마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단다. 그런데, 웬일인지 Dave는 공격성이 너무 강했다. 어찌나 할퀴고 깨물기를 좋아하던지 말도 마라. 친구의 팔은 몇 개월 동안 할퀴고 긁힘 당해 상처투성이였다. 집사로 간택 받은 친구는 Dave 때문에 집에 와서도 편히 쉴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아이를 내칠 수도 없는 상황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러다 5월 말쯤, 건물 밖에서 비쩍 마른 고양이가 쓰레기통 옆에 힘없이 누워있는 걸 발견했다. 또 간택당한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추위에 귀가 얼었는지 상처 난 흔적이 있는 고양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집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단다. 그렇게 Eve는 새로운 가족이 되었고, 동물 병원에 데려갔더니 심지어 임신까지 한걸 알게 되었다! 유기묘 캣맘이 되어버린 그녀. 그런데 여기서 마법이 일어난다. Eve가 집에 오고 나서 Dave가 완전히 다른 고양이가 된 것이다. 마치 어떻게 고양이처럼 행동해야 할지를 A-Z 가르쳐 준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젠 이렇게 얼굴 가까이 Dave를 안고 사진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Eve가 Dave를 180도 바꾼 것이다.






meaning and memories



이는 그저 고양이와 찍은 사진,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가 밥을 먹고 있는 사진일 뿐이다. 아무런 재미도 자극도 정보도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 나의 글을 읽었다면, 여러분은 이 이야기와 사진에서 의미를 발견하셨을지도! AI나 알고리즘이 선택해서 보여준 것이 아니라, 나의 친구와 가족의 이야기이기에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더라도, 순간을 박제한 사진이나 영상보다는 글을 통해 더 많이 알 수 있으니 글을 통해 소통한 우린 이미 친구)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아서 나의 이야기와 생각이 더 많은 사람들,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가서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연결되고 싶다. 하지만 이를 위해 나의 쪼와 소신을 버리고 싶지 않다. 의미를 잃고 싶지 않다. (흥미, 재미, 의미. 이 3미가 내겐 정말 중요하다)



고민의 지점이다. 아, 머리 아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상대방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풍요로움 속 희소성




네이선이 말한 것처럼 AI는 우리가 더 빨리 더 쉽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소정님이 공유해 준 인사이트처럼 우리는 그 빠른 변화와 풍요로움 속에서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느낄 수 있다. 가짜는 의미를 쌓거나 기억하기에 충분한 시간의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것이 아닌 가치로 나를 휘감아 그런 체할 수는 있지만 들통나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기에 풍요로움 속에서 나다움으로 가득 찬 삶, 이리 치리고 저리 치이며 시간의 때가 꼬질꼬질 묻은 날것의 가치들을 차곡차곡 쌓는 일은 희소성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빛을 발하기에 충분하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보석이 빛을 발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쩌면 그 희소성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일을 더 과감히 해야 할지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동굴로 들어가는 고독의 시간을 은근 기다린다.







2025/06/14

바람이 창틈을 비집고 들어와 위잉 위잉 부는

토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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