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별, 나는 당신의 달?

로맨틱하지 않아

by 그웬



당신은 나의 별, 나는 당신의 달



한 번쯤은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꽤나 로맨틱한 말이다. 마치 서로를 향해 반짝이는 존재가 되겠다는, 서정적이고 순수한 고백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날은 조금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헤를렌 강가에 누워 한국인 친구 2명과 햇살을 즐기고 있는데 한 몽골인 남자가 강을 건너왔다. 강 건너편에 친구들과 텐트를 치고 놀고 있는데 함께 강을 건너가 놀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는 한국어를 할 줄 몰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몽골어는 아주 많이 제한적이다. 어떻게 대화했냐고? 구글 번역기로. 그는 내 친구 중 한 명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어차피 집으로 가려면 다시 강을 건너야 했기에 (처음에 우리는 허리까지 오는 강의 물살을 헤치며 맨발로 건너와 나무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았었다) 우리는 짐을 챙겨 같이 강을 건넜다. 그런 우리를 그와 그의 (결혼한) 친구들은 캠핑 체어와 실온의 맥주를 내어주며 환대해 주었다. 그러고는 친구에게 온갖 플러팅을 하더라. 우산을 씌워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같이 강가에 수영하러 가자고 하기도 하고. 그런 그들을 놀리는 재미에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 그가 꺼낸 말이 귀에 꽂혔다. 하필 아는 단어들이었다.


"Чи бол миний од. Би чиний сар."

"당신은 나의 별이고, 나는 당신의 달이야."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훅 치고 들어온 로맨스에 모두가 으아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 문장을 곱씹다가 순간 멈칫하게 되었다.


별과 달은 과연 동시에 빛날 수 있는 존재일까?


밤하늘을 떠올려 보자. 달이 휘영청 밝게 뜬 날, 별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오히려 달이 없는 밤, 혹은 아주 가느다란 초승달만 걸린 밤일 때 별들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또렷하게 반짝인다. 즉, 이 둘은 한 하늘 아래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빛나기 어려운 존재다. 하나가 밝아질수록, 다른 하나는 그 빛을 내보이기 어렵다. 그런데도 왜 이 말은 로맨틱하게 느껴질까?


(갑작스레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why... 로맨스를 로맨스로 그저 만끽할 수 없는 나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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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리듬, 혹은 순번



어쩌면 사람들은 빛나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번갈아가며 서로를 밝혀주는 것을 로맨틱하다고 여기는 건지도 모른다.


별은 스스로 빛나는 존재이며 어둡건 밝건 늘 그 자리에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존재를 항상 알아채기 어렵다. 반대로 달은?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아니다. 태양의 빛을 반사해 우리 눈에 보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당신이 별처럼 저 멀리서 스스로 빛나고 있을 때, 나는 당신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달이 될게요”라는 의미로 이 표현을 사용하는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빛나고 있는 너를 향해, 나는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너를 비추고 있을게요,라고.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 말은 경쟁이 아니라, 교차되는 빛의 주기를 담고 있는 각자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잠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해서 질문이 고개를 든다.








빛의 순서에 우열이 있다면



관계를 오랜 시간 바라보고 경험하다 보면, 한 사람의 빛이 지나치게 강해졌을 때, 다른 누군가는 그늘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상황을 겪는다. 혹은 그늘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빛이 상대의 후광에 가려져 제 빛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건 비단 연인 사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늘 속에서도 괜찮을 수 있다. 일시적이고, 상호적인 흐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만약 늘 한쪽만이 빛나고, 다른 쪽은 매번 그 빛을 반사하거나 뒤로 물러서야 한다면?

그건 사랑일까, 헌신일까, 아니면 점점 사라지는 희생일까.


“당신은 나의 별, 나는 당신의 달.”

로맨틱하게 들리는 이 말이 조금은 불편하게 다가왔다.


광공해(light pollution)가 없어 밤하늘이 유독 아름다운 몽골 하늘을 가만히 바라본 시간이 축적되어 이런 생각이 든 걸까? 달이 둥글게 떠 엄청 밝으면 별은 희미하게 보이더라. 반대로 달이 지평선에 가려져 있던 어느 날의 별은 정말 선명하게 빛이 났다. 그렇다. 이 둘은 동시에 밝게 빛나기 어려운 존재인 것이다.


만약 내가 당신의 달이 되어야만 당신이 별이 될 수 있다면, 혹은 그 반대의 경우라면, 우리는 언제나 한 사람만이 밝고, 한 사람은 어둠 속에 있어야만 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빛을 위해, 자신을 조금 지워내는 관계를 ‘사랑’이라 믿어왔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함께 빛나는 일이라기보다, 누군가의 빛을 위해 또 다른 누군가가 영영 사라지게 되는 (혹은 그러길 바라는) 일은 아니었을까.





결국은, 함께할 수 있는가의 문제



나와 당신이 동시에 빛날 수 있는 관계, 내가 빛날 때 당신이 더 아름다워지는, 당신이 빛날 때 나도 함께 살아나는 그런 관계는 가능할까?


‘별과 달’이 아닌,

‘하늘과 구름’일 수도 있고,

‘바다와 바람’일 수도 있고,

혹은 ‘같은 나무에서 피어난 다른 꽃’일 수도 있다.


왜 꼭 한 사람이 빛나기 위해 다른 사람은 어두워져야 하는가.

왜 누군가의 존재가 찬란해질 때, 또 다른 이는 조용히 그림자가 되어야 하는가.


서로 다른 빛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있어도 괜찮은 관계, 같이 있어야 오히려 더 완전한 관계.

그런 사랑의 모습이 당신과 내가, 우리가 바라는 관계 속에 있으면 좋겠다.





2025년 7월 30일

흥청망청 낭만을 즐긴 7월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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