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다큐가 가지는 콘텐츠로서의 힘
요새 2030들에게 가장 화제가 되는 유튜브 콘텐츠를 꼽으라면 <피식대학>의 비대면 소개팅, 그 중에서도 느끼한 카페사장 소개팅남 역의 최준과의 비대면 소개팅 영상일 것이다. 피식대학은 여러 방송사 공채 출신 개그맨이 결성한 유튜브 채널로, 다양한 상황극이나 몰카 등의 영상을 올리는 채널이다. 이 콘텐츠는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퍼지며 빠른 시간 안에 화제가 되었고, 최근에는 라디오, 잡지사 등 기성 미디어에서도 관심을 보이다가 마침내는 <유퀴즈온더블락>과 <놀면뭐하니>에 출연하며 대세임을 입증했다.
이 채널에서는 한 때 여러 개그채널에서 유행했던 단편의 몰카나 상황극 뿐만 아니라 장편으로 이어지는 '페이크다큐' 시리즈를 여러 개 진행하고있는데 그 중 비대면 소개팅은 우리 모두 실생활에서 혹은 SNS를 통해 한 번 쯤은 접해본 , 혹은 이야기라도 들어본 것 같은 특색 있는(...) 남자 네 명과 영상통화 형식으로 소개팅을 진행하는 시리즈이다. 그리고 최준은 부담스러운 머리스타일과 말투, 목소리를 장착한 채 시도때도 없이 '키스할거야' 같은 느끼한 말을 뱉어내며 시청자들에게 극한의 길티플레져를 선사하고 있다.
사실 <피식대학>은 비대면 소개팅 뿐만 아니라 산악회에 속한 중년 남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사랑 산악회', 2005년 동대문을 배경으로 15년 전 패션과 감성을 보여주는 '05학번이즈백' 등 다양한 페이크다큐 시리즈를 진행해오고 있고, 또 다른 엔터테인먼트 채널인 <빠더너스>에서도 주요 인물인 문상훈을 중심으로 인강 강사를 흉내낸 '한국지리 문쌤', 군인 브이로그를 컨셉으로 한 '감성구닌 후니쓰's Vlog'등이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또한 <별놈들>이라는 채널에서도 작년 여름 밈화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 혹은 공분을 샀던 '문신돼지충'의 일화를 다루는 시리즈가 15편 넘게 발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페이크다큐 시리즈는 어떤 매커니즘으로 인기를 얻는걸까?
사실 이런 시리즈들은 우리가 익숙한 단편적인 몰카(ex. <엔조이커플>채널의 대표격 영상인 방구몰카나 해외에서까지 인기를 얻은 헬스장몰카)와 비교해보면 웃음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이런 몰카들은 주로 헬스장 몰카에서와 같이 아주 마른 사람이 체격이 있는 남자에게 역으로 운동을 가르치거나, '목사님 스님이 부랄친구라면'이라는 몰카처럼 특정 상황에서 모순되거나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 등을 함으로서 웃음을 주는데 페이크다큐 시리즈는 그렇지 않다. 페이크'다큐'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인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그 콘텐츠가 가정하고 있는 배경 안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뿐이다. 한사랑산악회 시리즈에서 아저씨들이 열정있게 산에 오르자고 외치는 모습이나, 정상을 가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다투는 모습은 일상의 시선에서 보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의 맥락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웃음포인트를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높은 콘텐츠이기도 하다.
하지만 잘 짜여진 페이크다큐는 아래와 같은 포인트에서 단편의 몰카나 상황극보다 더 밀도 높은 재미를 선사해준다.
서사: 옴니버스 세계관 구축을 통한 더 넓고 깊은 공감
페이크다큐는 단편으로 끝나기보다는 위에서 소개한대로 같은 설정을 공유하는 영상 여러 편이 시리즈로 이어진다. 따라서 서사적으로 훨씬 깊이 있는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다. 영상은 보통 인물, 배경, 그리고 인물간의 갈등 혹은 관계로 이루어지는데 잘 구축된 세계관은 더 많은 인물이 출연하거나, 여러 인물 간 다양한 역학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조성해준다. 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 세계관에 동화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와 접접이 있다는 뜻이기에 콘텐츠 성공의 핵심요소인 시청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제가 된다. 즉 한 편의 상황극은 낚싯대처럼 시청자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있다면, 잘 짜여진 여러 편의 페이크 다큐는 콘텐츠 곳곳에서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 위한 장치를 설치해둔 그물이 되는 격이다.
인물: 극단적으로 확장된 캐릭터
페이크다큐에 등장하는 인물은 말 그대로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무한한 확장성을 지닌다. 여기서 말하는 무한한 확장성이란 한 인물에 여러 겹의 설정이 덧붙여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함과 동시에 그 인물이 가진 특성이 매우 극단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피식대학의 비대면 소개팅에 나오는 인물들을 살펴보자. 철은 없지만 허세는 있는 20대 초반의 래퍼 임플란티드 키드는 우리가 각종 미디어(쇼미더머니..?)에서 접한 어린 래퍼들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특징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말 끝마다 붙이는 허세성 비속어, 있어보이는 단어들의 무의미한 나열, 존댓말은 촌스러운 한국 문화로 치부해버리는 문화사대주의, 본명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신비주의 컨셉 등 한 번 쯤은 보거나 느껴보전 적 있지만 왠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되는 래퍼들의 특징을 모아, 그리고 그 특징이 확장되어 임플란티드 키드라는 캐릭터가 탄생했다.
페이크다큐에서도 Vlog처럼 인물을 둘러싼 상황을 다루지만, 보통 Vlog가 실존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것과 달리 확장성을 기반으로 구축된 가상의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사람들을 쉽게 자극하고 그 자극은 웃음의 기반이 된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궁금한 이야기 Y에 나왔을법한 극단적인 인물의 특징이 페이크다큐에서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캐릭터로 확장되어 웃음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물은 유튜브의 영상 속 뿐만 아니라 댓글란, 캐릭터의 개인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실존인물인양 활동하며 인물을 둘러싼 세계관을 더욱더 견고히 한다.
주제: 사건이 아닌 흐름
페이크다큐는 장편시리즈라는 이점을 십분 활용해 단편적인 사건을 다루는 것을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이나 사회적 흐름을 다루고, 그 현상과 흐름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놀이터를 제공해준다. <빠더너스> 채널에서 제작하고 있는 가상의 아이돌 '나인인원'의 '강하'라는 멤버를 다룬 시리즈는 유튜브에서 활발하게 생산 및 소비되고 있는 아이돌 팬덤기반의 콘텐츠와 그들의 문화를 그대로 재현한다. 강하 직캠, 강하 라방 하이라이트, 강하 공항패션 연예뉴스 등 여느 아이돌 팬이라면 한 번쯤은 유튜브에서 쉽게 접해봤을 콘텐츠들이 리얼하게 재현되었고, 이런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팬덤문화에 속해있거나 그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쉽게 몰입하고 콘텐츠를 중심으로 자신의 맥락을 덧붙이기도 한다. 실제 빠더너스 영상의 댓글란에서 아래와 같이 리얼한 댓글을 찾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피식대학>의 비대면소개팅 또한 비대면으로 소개팅을 한다는 콘텐츠의 형식을 십분 활용해 실제 화면 너머의 캐릭터와 소개팅을 하며 리액션을 촬영한 영상들이 다수 제작되었다. 그 중 가장 박막례 할머니의 리액션 영상이 단연 백미이니 꼭 시청하는 것을 추천한다.
페이크다큐는 결국 사람들과 공감대를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지가 잘 짜여진다면 서사 진행 방식, 인물, 주제 면에서 그 공감대를 기반으로 무한하게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좋은 콘텐츠 포맷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것처럼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만큼 단편에 비해 보다 낮은 웃음의 밀도를 가지고 있고, 배경 이해가 선행되어야한다는 진입장벽이 있기에 그만큼 치밀하게 계획되어야하는 콘텐츠이기도 하다.
유튜브라는 무한한 세계에서 어떤 크리에이터를 발견할 수 있을까가 아닌 어떤 독특한 배경과 특징을 가진 가상의 캐릭터가 나타날까가 궁금한 요즘, 사람들에게 또다른 길티플레져를 선사해줄 수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