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723 뉴욕조각보_보스턴 편
보스턴에 도착한 지 이틀 째.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고 일기예보 앱을 확인하니 야속하게도 하루 종일 비 예보가 가득했다.
하는 수 없이 호텔 헬스장에서 느적느적 운동을 하고, 비가 오는 김에 유명하다는 라멘집을 찾아서 점심을 먹으니 오후 한 시였다. 비 올 땐 보스턴에서 뭘 해야 하지 이리저리 구글맵을 뒤적이다가 결국 원래 가려고 했던 보스턴 미술관에서 오후를 다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미술관에 도착하니 나처럼 비가 와 발이 묶인 사람들과 비를 구실 삼아 미술관을 방문했을 사람들이 함께 죽 늘어서 있었다. 티켓을 끊고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니 작품을 45만 점 이상 소장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20번째로 큰 미술관이라는 위용에 걸맞게 넓은 로비가 펼쳐졌다. 로비에 비치되어 있는 미술관 지도를 펼쳐 드니 결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미술관의 층별 설명에 머리가 지끈 아팠다.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을 뽑자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MoMA겠지만, 두 군데 다 몇 번씩 방문했음에도 나는 그닥 정이 가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커서’였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들기에 앞서 대상에 대한 이해와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는 내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MoMA는 내가 그들을 ‘알겠다’라고 하기엔 너무 벅찬 대상이었다. 특히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그렇듯이 하나의 방이 다른 세 개의 방으로 연결되고, 각각의 방이 또다시 다른 방으로 연결되는 미로 같은 구조에선 도무지 내가 이 큰 건물의 어드메에 와 있는 건지 감조차 잡기 힘들었다. 그 공간에 아무리 좋은 작품이 있다한들 공간의 크기가 주는 압도감과 약간의 무력감에 내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반면 구겐하임 미술관은 절대적인 크기도 작거니와 중앙이 뻥 뚫린 나선형 구조로 되어있어 내가 탐방해야 할 공간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지금 나는 그 여정의 몇 퍼센트쯤을 완료했는지 한눈에 파악이 가능했다. 로비로 들어가 5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뒤 완만한 경사를 따라 나선형의 벽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하며 내려오면, 아코디언처럼 접혀있는 지도를 이리저리 돌리며 방향을 찾거나 어느 방을 먼저 봐야 잘 봤다고 소문이 날지 따위를 고민할 필요 없이 어느새 다시 로비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 내게 보스턴 미술관은 처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와 비슷한 막막함을 안겨주었다. 중세, 르네상스, 근대, 현대 미술뿐만 아니라 아랍, 아시아, 이집트 등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들이 ‘어디 하루 만에 네가 얼마나 볼 수 있는지 보자’를 시험이라도 해보려는 양 각 층의 각 방에 알알이 걸려있었다. 그나마 뉴욕에서 예술에 대한 노출 빈도가 높아진 덕에 약간의 취향이나마 생긴 나는 지도를 한참 보다가 곧장 모네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과 추상 중간 즈음에 위치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주제가 직관적이면서도 작가 별로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에 특유의 개성이 살아있어 보는 맛이 났다. 추상화처럼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지,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을지 머리를 쥐어짜며 상상하지 않아도 되고, 중세나 고대 그리스로마의 미술처럼 마냥 사실적이기만 하거나 (물론 묘사의 수준은 대단히 뛰어나지만) 종교색이 강하지 않아 좋았다. 프랑스 바깥에서 모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모네관에서 그 유명한 건초더미 연작과, 수련 등을 보며 계절과 시간의 질감을 어쩜 이런 터치와 이런 색의 조합으로 표현했을까 감탄하며 이리저리 뜯어보고, 이어져있는 방에서 르누아르, 고갱, 세잔, 드가 등의 그림을 잔뜩 편식하다 보니 대여섯 개 정도의 방에서만 두 시간 이상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내가 하루에 즐길 수 있는 예술의 총량을 넘기도 했고, 폐관시간도 가까워져서 다른 관을 훑어나 보자는 생각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여러 관들을 슥슥 지나쳐갔다. 추상화나 중세미술등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미술작품보다 더 감흥을 느끼기 어려운 건 미술관보다는 박물관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유물들이었다. 매우 얕은 사고방식인 것을 알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몇 백 년 전에 썼다는 곡괭이, 의복 따위의 유물들을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어쩌라고’였다. 예전에 에스파냐에선 이런 배로 무역을 했다네 - 어쩌라고? 중국 진나라에선 이런 도자기를 썼대 - 그래서? 따위의 반응이 내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이었다. 모네의 그림처럼 예쁘지도 않고, 대단히 크다거나 정교하다거나 하는 일차원적 특징도 찾아보기 힘든 고대 이집트 관의 각종 장신구, 악기, 조각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내게 어떠한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렇게 이집트 관에서 다음 관을 훑어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하나의 작은 조각에 눈길이 닿았다.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한 조각이었는데 왠지 ‘뀨?’라는 말풍선이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 귀엽다고 느껴져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뜻밖의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집트 사람들은 왜 이런 포즈를 한 아이의 모습을 조각으로 만들었을까? 내가 이걸 귀엽다고 느끼듯이 그들도 이 조각이, 혹은 그런 모습을 한 아이를 귀엽다고 느꼈을까? 내가 느끼는 귀여움과 그들이 느꼈던 귀여움은 어느 정도 닮아있을까?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아기가 귀엽게 생긴 이유는 부모나 성체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는데 이집트인들이 느낀 귀여움이 곧 아이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졌을까? 그래서 이 아이와 또 다른 아이들이 보호받으며 자라날 수 있었고, 결국 그들이 계속해서 대를 이어 이 조각이 만들어졌던 기원전 2400년경부터 기원후 2023년인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지속될 수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4000년 전에 이집트인들이 아이의 조각을 만들며 느꼈던 감정이 곧 내가 보스턴 미술관에서 유리벽 너머 색 바랜 조각의 사진을 찍으며 느끼는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닐까? 까지 생각이 닿자, 그저 또 다른 황토색 조각이었던 유물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하나의 몸짓처럼 선명해졌다.
결국에 이 모든 것들이 ‘나’였다.
에스파냐의 무역선도, 진나라의 도자기도, 이집트의 조각상도 그것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스러지며 역사가 지속되었고, 그중 일부가 미술관과 박물관에 남아서 그 무수한 시간과 공간을 거쳐 지금 나라는 인간이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 조각상을 통해 4천 년 전 조각을 빚었을 아무개 이집트인과 공감하며, 나는 에드워드 카가 저서인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남긴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문구를 비로소 체득하게 되었다. 보스턴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전 세계의 모든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이 시간의 강물과 함께 잘게 부서지고 다시 조합되어 나와 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신석기시대의 간석기는 농경시대의 문을 열어 우리가 먹는 곡류의 씨앗을 8천 년 전에 틔워 보내주었다. 중세시대의 종교화가가 꼬박 몇 년에 걸쳐 천 년 전에 그려낸 성당의 벽화는 현재의 우리가 가진 종교적 가치관의, 어쩌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종교 갈등의 불씨를 댕겼다. 역사를 대변하는 유물들이 지금의 내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의 물꼬를 틔워주었다.
비가 와서 어쩔 수 없이 계획보다 오래 시간을 보내게 된 보스턴 미술관에서 무심코 스쳐 지나가던 어린아이 조각상에서 얻은 이 깨달음 덕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MoMA에 다시 방문해 나무, 종이, 흙, 쇳조각들에 지나지 않았던 작품들과 다시 제대로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눌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