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쉽게 시작하고 쉽게 그만둔다. 야심 차게 시작했다가 접은 유튜브 채널만 다섯 개고, 부동산을 공부해 보겠다며 네이버 부동산 카페에 줄줄이 가입해 가입인사글을 쓰는 것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들어가지 않았으며, 1월만 빼곡한 다이어리가 매년 책장에 쌓인다. 명확한 동기 혹은 강력한 의지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미가 가치판단의 우선순위를 점유하고 있는 내게 무언가를 반복하는 것은 그다지 흥미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름의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일들이 몇 번의 반복 후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반복에는 흥미가 없지만 운동 자체는 좋아하는 내게 하나의 운동 클래스에 ‘등록’하는 것은 따닥따닥 붙어있는 맨해튼 건물의 창문 너머 보이는 이웃집의 거실만큼이나 결과가 훤한 일이었다. 중도 하차. 그렇다고 가뜩이나 모든 것이 비싼 뉴욕에서 클래스 수강권을 매 번 구매하자니 패키지로 사는 것 대비 너무 가성비가 떨어졌고, 하나의 클래스를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등록하는 것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회원님~ 회당 가격은 패키지 가격으로 맞춰드릴게요~ 클래스는 저희 가맹되어 있는 곳이 한 100개 정도 있는데, 아무 데나 가서 자유롭게 수강하세요~’라고
누군가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런 걸 나만 원한게 아니었나 보다.
클래스패스(Classpass)가 바로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클래스패스는 말 그대로 클래스를 수강할 수 있는 패스(크레딧)를 구매해, 클래스패스에 등록되어 있는 모든 운동 클래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월별 $19부터 $199까지 선택 가능한 다섯 가지의 플랜 중 한 플랜을 선택하면 각 금액대 별로 정해진 개수의 크레딧이 충전된다. 참고로 당연히 더 높은 금액의 플랜을 선택할수록 크레딧 당 가격은 낮아지고, 가장 고가의 $199 플랜을 선택하면 크레딧 당 가격이 $1.99로 가장 저가 플랜 대비 15% 이상 저렴해진다.
매 달 결제일에 크레딧이 충전되면 그때부턴 즐거운 탐색의 시간이다. 원하는 날짜, 위치, 운동 종류별로 필터를 걸어서 클래스를 탐색할 수 있고 요가부터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까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의 운동을 클래스패스 하나로 예약할 수 있다. 클래스마다 사용되는 크레딧의 개수도 천차만별인데 내가 가본 것 중 가장 비싼 클래스는 필라테스 기구 중 하나인 리포머를 이용하는 Solidcore라는 14크레딧짜리 클래스였고, 가장 저렴한 것은 노스캐롤라이나의 한적한 호수마을에서 들었던 1크레딧짜리 요가였다. 짐작할 수 있듯이, 또 당연하게도, 도시 별 부동산의 가격이 클래스 가격에도 반영되어서 같은 클래스라도 어떤 도시에 있느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내가 자주 가는 F45라는 인터벌 트레이닝 클래스는 뉴욕에서는 11~12크레딧이지만 앞서 말한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5~6크레딧으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뉴욕에 사는 내가 죄인이지…
대부분의 클래스가 1회권을 구매하면 회당 30-40달러 (당연히 부가세 별도! 참고로 F45는 1회권 구매 시 $39.95, Solidcore는 $42다.)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20-30달러 선에서 다양한 종류의 클래스를 자유롭게 예약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데에는 도통 재능이 없는 내게 아주 큰 장점이었다. 더불어 웬만한 미국 대도시, 그리고 일부 해외 도시에도 제휴처가 꽤 많이 있어서 여행을 가서도 그 도시에 있는 클래스를 찾아 들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렇게 유목민처럼 여러 가지 클래스를 바꿔가며 들어보기도 하고, 맘에 드는 클래스를 정기적으로 몇 달씩 꾸준히 가기도 하며 얼마 전 클래스패스 총 예약 횟수 100회를 채웠다. 온갖 용두사미 프로젝트의 부산물과 그로 인한 마음의 짐을 이고 지고 사는 내가 '새로운 것들을 꾸준히 시도해 보는 꾸준함'을 발견한 꽤나 큰 성취였다.
이 외에도 운동뿐만 아니라 Wellness에 해당하는 네일, 마사지, 눈썹 관리 등의 서비스도 예약이 가능하고, 한 클래스에 한 번 방문 후 오랫동안 방문을 하지 않으면 ‘We miss you!’라는 핑계(?)로 가끔 반값 할인도 해주며, 친구 추천 시 20크레딧 지금이라는 나름 쏠쏠한 친구 추천 시스템이 있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욕 혹은 미국 여행 오시는 김에 미국 운동 클래스를 경험해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나의 추천인 링크를 적극 활용해 보시기 바란다 ^.^ 링크를 타고 가입 시 20크레딧을 공짜로 주니, 그 한도 안에서 공짜로 듣고 싶은 운동 클래스를 맘껏 들어본 후 취소를 해도 무방하다. 물론 무료 이용 후 취소시 나는 친구 추천 크레딧을 받지는 못하지만…따흑. 이 방법으로 나는 뉴욕에 놀러 오는 친구들 마다 클래스패스에 가입시켜서 공짜로 운동을 데려가곤 했다. >> 추천 링크: https://classpass.com/refer/B1KTH42V2 <<)
만약 미국, 혹은 클래스패스가 서비스되는 곳에 살고 있는데, 어떤 운동이 맞는지 모르겠거나 나처럼 하나의 운동을 꾸준히 할 자신이 없다면, 클래스패스를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무언가에 정착하지 못하는 유목민이라는 자책에서 벗어나, 유목민이 유목을 하는 것도 꾸준함이 필요하며, 당신에게 그 꾸준함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별점: ★★★★☆
추천: 하나의 운동을 꾸준히 할 자신이 없는 사람, 클래스패스가 가능한 도시로 여행을 가는 사람
비추천: 스케줄이 자주 바뀌는 사람. 클래스패스는 예약의 유연성이 높은 대신 취소의 유연성은 적어서, 비교적 엄격한 취소 및 변경 정책을 가지고 있다. 취소 및 변경이 가능한 시간은 클래스 시작 시간 기준 12시간 전까지이며, 그 후에 취소하면 late cancel fee가, 만약 취소를 하지 않고 노쇼를 하면 no show fee가 20불에서 30불가량 부과된다. 나도 야심 차게 주말 아침 클래스를 등록했다가 전 날 술을 와장창 먹고 클래스를 못 가는 바람에 날린 late cancel fee가 100불이 넘는다.(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