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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견과상념 Jan 08. 2021

(아직은) 번잡스럽지 않은 제주카페 3선

제주 한달살기 후 골라본, '아직은' 줄서지 않아도 되는 카페

작년(2020년이 작년이라니!)에 해외 여행이 전면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일년에 한 번 정도 가던 제주도를 일주일 이상씩 길게 세 번 정도 다녀오게 되었다. 특히 그 중 한 번은 약 25일간, 거진 한 달 간 제주도에 머물며 디지털 노마드 흉내를 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를 포함해 작년 한 해 제주도에서 다닌 여러 카페 중 '아직은' 번잡스럽지 않은 카페 몇 개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선호도를 바탕으로 선정했고, 그렇다고 내 취향이 아주 특별하거나 고오급진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공통점은 아래와 같다.


너무 대형카페가 아닐 것: 넓찍넓찍한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카페가 주는 특유의 아늑함, 안락함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 트여있거나 실내 공간이 지나치게 넓은 카페에 가면 오히려 out of nowhere에 있는 느낌이기도 하고 큰 공간에서 왕왕 울리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끔 카페를 찾은 이유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해, 대형카페보다는 적당한 사이즈의 카페를 선호한다.


명확한 theme이 있을 것: 가끔 우후죽순 생겼다 사라지는 카페들을 방문해보면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나 이미지가 쉽게 와닿지 않는 곳들도 있다. 나는 인테리어나 공간 아이덴티티 전문가와는 매우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어떤 공간에 방문하면 '아 이 공간은 이런 느낌을 주려고 했구나' 혹은 '이런 주제를 가지고 있구나'가 쉽게 이해되는 공간도 있는 반면 여러 색감 혹은 소품이 섞여있거나 지나치게 유행만을 좇아(ex. 온라인에서 자주 풍자되는 지나친 인더스트리얼 느낌의 카페) 난해하거나 가볍게 느껴지는 카페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미적 감각을 가진 내게도 편안하면서도 독창적인 주제가 쉽게 느껴지는 카페를 골라보았다. 


주위 다른 카페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것: 위의 두 가지 포인트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한데, 카페가 여러 개 모여있는 카페거리나 유명 관광지 근처의 카페를 찾아가면 지나치게 인구밀도가 높거나 카페거리의 세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급하게 생겨난 카페들인 경우가 있어 되도록이면 다른 관광지나 음식점과 거리가 있더라도 단독으로 있는 카페를 선호한다.


그래서 고른 세 카페는,

바위에서 쉬다, 우호적 무관심, 그리고 감저카페 이렇게 세 군데이다. 


바위에서 쉬다

위치: 제주시 한립읍 진질길 37

한줄평: 마당냥이들과 함께 귀덕해변의 노을을 호젓하게 즐길 수 있는 곳



귀덕해안로에 위치한 카페 '바위에서 쉬다'는 근처 숙소에 머물던 와중 해안도로를 따라 러닝을 하다가 발견하게 된 자그마한 카페이다. 카페 이름처럼 해안도로 위의 소담한 돌담계단을 따라 살짝만 올라가면 푸른 잔디밭 정원과 한 눈에 들어오는 아기자기한 공간의 카페가 나오는데, 잔디밭 정원들은 온통 동네 고양이들 차지.



사람 손을 타진 않은 것 같은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마당에서 놀거나 쉬며 방문객을 맞아준다(사실 맞아주진 않고 제 할 일을 한다).



고양이들과 한창 놀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바다로 넓게 트인 창이 있다. 다소 번잡스러운 애월 해안도로의 카페들과도 거리가 있고 가까운 명소나 관광지도 딱히 없어 여유롭게 제주서쪽바다의 노을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일몰시간을 맞춰 천천히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가 카페에 들려 따듯한 혹은 시원한 차 한 잔 하며 아름다운 일몰을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감저

위치: 서귀포시 대정읍 대한로 22 감저카페

한줄평: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공간감있는 카페



제주도 사투리 중에 재밌는 단어들이 종종 있는데, '감저'도 그 중 하나이다. 언뜻 들으면 감자같지만 감저는 사실 제주도 사투리로 고구마를 뜻한다. 카페 이름이 감저가 된 이유는 고구마 전분 공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곳이기 때문인데, 워낙 공장을 개조해 만든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카페가 이미 한차례 유행을 휩쓸고 지나갔기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자칫하면 너저분해보이거나 지나치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공장 건물을 원래 뼈대는 잘 활용하면서도 아늑함을 잘 입혀 이번에 소개하는 다른 카페들과 비교해 상당히 사이즈가 큰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대책없이 크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위 사진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채광도 좋고, 회색의 시멘트가 아닌 나무로 된 천장과 어울리는 여러 나무 가구들을 잘 배치해둔 덕분에 지금껏 가본 공장개조형 카페 중에는 가장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좌석간 사이도 굉장히 넓어 크게 방해받지 않고 업무 하기에도 적절한 공간이었다. 



공장 부지 전체를 다 카페로 개조한 건 아니어서, 카페 건물 밖에는 아직 이렇게 공장의 옛 터들이 남아있다. 

감저도 제주도 남서쪽 모슬포 근처에 위치해있어 창 너머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데, 오래된 공장터 뒤로 사라지는 해를 보고 있자면 왠지 조금 감상적이 되기도 한다. 감성 한 스푼이 필요한 분들에게도 추천하는 카페.

 


소규모 전시를 하는 공장 옆 건물의 작은 갤러리와 마당에 살고 있는 귀여운 마당냥이들은 빠뜨릴 수 없는 덤.



우호적 무관심

위치: 제주시 한경면 저지12길 103

한줄평: 미적감각 가득한 건축물과 정원을 품은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의 카페



사실 처음에는 이름에 이끌려 방문했다. '우호적 무관심'이라니.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말도 있지만 무관심이 사실은 타인에 대한 배려 더 나아가 우호적 감정, 즉 호감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담은 이름이 꽤나 맘에 들었다.


그렇게 방문한 우호적 무관심은 제주도 저지리에 있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의 한복판에 있는데, 가보진 않았지만 카페 주변에 작은 미술관 등이 꽤나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해서 유명 관광지처럼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아니고 전반적으로 소담한 느낌.


카페 자체는 전반적으로 화이트톤으로 꾸며져 있는데, 건물의 구조 자체가 꽤 특이하다. 잘 가꿔진 식물이 자라고 있는 정원을 지나 들어가면 카운터와 서너팀정도 앉을 수 있는 홀이 나오는데 건물 자체의 모서리가 삼각형으로 되어있어 양 창이 예각으로 만난다.


그리고 그 홀 건너편에는 마치 중정과 같은 내부 정원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느낌의 이어진 삼각형의 공간이 있는데 (아쉽게도 사진에 담진 못했지만) 특이하게 좌식형으로 되어있어 소규모 일행끼리 독립된 공간을 즐길 수 있다. 자리가 이미 차있어서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깔끔한 정원이 보이는 통창으로 둘러싸인 좌식 공간에 앉아 커피를 즐기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같은 공간에 있는 타인에게도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우호적인 무관심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제주에서 한 달을 보내며 가봤던 꽤 많은 카페들 중 내 취향에도 맞고 또 너무 붐비지 않아 사람들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거 나 혼자만의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카페 세 군데를 소개해보았다. 이 카페에서 보낸 시간이 충만했던 것처럼 혹시나 이 포스팅을 보고 방문하는 분들이 있다면 나처럼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라며 앞으로도 너무 붐비게 되진 않길 약간은 이기적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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