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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견과상념 Jan 10. 2021

TV예능의 문법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유튜브 콘텐츠

<가짜 사나이> 신드롬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본업과 관련된 글을 작성해본다.


작년 한 해 가장 화제가 되었던 콘텐츠 하나를 뽑자면 단연 건강/피트니스 채널인 '피지컬 갤러리'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 <가짜 사나이>였다. <가짜 사나이>는 MBC에서 방영되었던 병영/군대 체험 예능인 <진짜 사나이>를 오마쥬한 콘텐츠로, 해군 특수 부대인 UDT/SEAL에서 복무했던 ‘김계란'이 운영하는 피지컬 갤러리에서 만든 리얼리티 시리즈이다. 시즌 1에서는 6명의 크리에이터가, 시즌 2에서는 14명의 유명인/크리에이터가 특수부대 훈련을 받기 위한 교육생으로 선정되어 혹독한 훈련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년 7월 한 달 간 시즌 1의 7개 에피소드가 채널에 공개되었으며 시리즈의 누적 조회수는 무려 4000만회 이상으로 명실상부 유튜브의 ‘메가 콘텐츠'로 거듭났다.


비록 시즌 2는 가학성 논란과 출연자를 둘러싼 여러 논란으로 인해 발행이 중단되었고 지금은 피지컬 갤러리 채널에서 관련된 모든 영상들이 내려갔지만 <가짜 사나이>가 미디어 업계에 미친 파급력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시즌 1을 통해 얼굴이 알려진 교관들은 일약 스타덤에 올라 각종 방송 출연 뿐만 아니라 광고 모델로 기용되기도 했고, 그 중 일부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2020년 가장 빠르게 구독자를 모은 채널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참고: 유튜브 코리아 블로그)


<가짜 사나이>열풍은 피지컬 갤러리 채널 및 유튜브를 넘어 전통적인 미디어를 통해서도 재생산되었다. KBS에서는 가짜 사나이에 출연한 이근 대위가 출연한 2011년에 방영 된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클립을 ‘이근 대위 현역 시절 대공개'라는 제목으로 올리기도 했고, 또 다른 TV 방송국 EBS도 2015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시리즈 중 이근 대위의 도전을 담은 영상을 업로드했다. 더 나아가 JTBC는 이근 대위를 직접 프로그램에 섭외해 가짜사나이와 비슷한 포맷으로 개그맨들이 훈련을 받는 컨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가짜 사나이>가 이미 유튜브 내에서 고유명사로 자리잡은 후 시즌 2 제작에 돌입하자 왓챠, 카카오TV, CGV등 국내 콘텐츠 제작사 및 유통사들이 발빠르게 협업을 제시했고, 전체 시리즈의 중간 에피소드 이후로는 왓챠, 카카오TV 플랫폼에서 선공개하고 전체 에피소드를 갈무리한 긴 장편 영상은 CGV에서 영화로 상영되는 등 유튜브에서 시작된 오리지널 콘텐츠의 확장 및 개발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김태호 피디가 이미 예견(?)한 <가짜 사나이>열풍...무도만물설 입증


<가짜 사나이> 성공의 이유는 채널의 주 시청자층 대부분(2030 남성)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 선정, 인플루언서 섭외를 통한 콜라보레이션 효과의 극대화 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TV 예능 포맷인 <진짜 사나이>의 형식을 차용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이 군대를 경험했고, 또 지금은 종영했지만 <진짜 사나이>가 한창 방영할 때 활발하게 TV콘텐츠를 소비했던 세대임을 고려할 때 <가짜 사나이>라는 제목과, <진짜 사나이> 처럼 군대/병영 체험을 한다는 포맷은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단번에 이해되는 콘텐츠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한 TV예능의 문법을 조금씩 비틀며 유튜브 콘텐츠에 적용한 유튜브 오리지널 시리즈(*여기서 말하는 유튜브 오리지널이란 YouTube에서 직접 제작하는 YouTube Original 콘텐츠가 아니라, 다른 매체가 아닌 유튜브에서 시작된 콘텐츠를 뜻한다)가 점점 더 눈에 띄고 있다. 이런 콘텐츠는 아래와 같은 이점을 비교적 쉽게 누릴 수 있다. 


1. 공감을 얻기 쉽다: 콘텐츠가 성공하기 위한 핵심 중 하나는 공감이다. 물론 너무 특이해서 혹은 신기해서 인기를 얻는 콘텐츠도 있지만, 반짝 관심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롱런하기 위해서는 시청자가 잘 이해할 수 있고 또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는게 필수적인데, TV예능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포맷이라는 점에서 시청자의 직관적인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기 쉽다. 예를 들어 역시 피지컬 갤러리에서 한동안 업로드되었던 <우리 아이가 말라졌어요>라는 콘텐츠를 떠올려보자. 이런 제목을 가진 영상이 과체중인 사람이 전면에 드러난 썸네일과 함께 노출되었다고 가정해보면 굳이 영상을 눌러 시청하지 않더라도 이미 그 영상의 내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단순한 다이어트 도전기로 포장되었다면 운동 혹은 다이어트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만 선택받았을 수도 있는 콘텐츠가 오마쥬가 된 대상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좋아했던 혹은 시청했던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된 것이다. 


2. 재생산이 용이하다: 대부분의 TV예능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일회성이 아니라 비슷한 형식으로 여러 번 제작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다. 실제 대부분의 예능은 <유퀴즈온더블락>이 '시민들을 인터뷰한다'라는 포맷을 유지하며 매 번 인터뷰 대상을 바꾸는 것처럼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되 알맹이를 바꾸는 식으로 제작되고 있는데, 이런 예능의 문법을 차용한다면 유튜브 콘텐츠 역시 마찬가지로 같은 형식을 가지고 얼마든지 재생산될 수 있다. 특히 크리에이터들은 혼자 기획, 제작, 편집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런 형식은 그들의 제작 부담을 덜어주는데 큰 도움이 된다. 


3. 이미 검증이 끝났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TV예능은 내로라하는 방송사의 피디, 작가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무수한 파일럿을 거치며 마침내 시청자의 선택을 받아 어느정도 시청률까지 나온 프로그램들이다. 또한 TV라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이미 불특정다수의 공감과 선택을 받은 것들이기에 그 뒤에 숨겨진 치열한 고민,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 제작 방식 등의 검증된 요소들을 쉽게 활용할 수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콘텐츠의 리스크를 줄여준다. 


위와 같은 이점들로 인해 <가짜 사나이>와 더불어 TV예능의 문법을 차용한 콘텐츠가 점점 더 많이 눈에 띄고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꽈뚜룹의 <한끼내놔>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JTBC의 유명 예능 <한끼줍쇼>를 패러디한 콘텐츠이다. 한끼줍쇼의 핵심 포맷이 특정 동네를 탐방하다가 무작정 어딘가에 방문해 한끼 식사를 함께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인데, <한끼내놔>도 <한끼줍쇼>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공간에 방문해 함께 식사를 하고 또 이야기를 나누는 핵심 플롯을 그대로 차용했다. 다만 무작정 어딘가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특정해 진행한다는 것이 <한끼줍쇼>와는 다른 점이다.


이 시리즈 역시 위에서 설명한 이점을 착실히 레버리지하고 있다. 현재 11화까지 진행된 이 시리즈는 평균 조회수 50만을 가뿐히 넘기며 순항중. 


>>보러가기<<


제이제이 살롱드핏의 <구해줘 살즈>


이번엔 피트니스 크리에이터이다. 대한민국 여성 피트니스 크리에이터 중 탑인 제이제이 살롱드핏이 뷰티 크리에이터 홀리와 함께 다이어트를 진행하는 다이어트 챌린지 콘텐츠인 <구해줘 살즈>. 사실 <구해줘 홈즈>의 경우 패널들이 양 팀으로 나뉘어져 의뢰인의 니즈에 맞는 매물을 가져와 대결하는 형식이지만 <구해줘 살즈>는 패널출연이나 대결 형식을 쓰진 않는다. 사실 지금껏 다른 많은 피트니스 채널에서 진행했던 다른 다이어트 챌린지 콘텐츠와 크게 다르지 않게 누군가를 대상으로 여러가지 운동을 함께 하고, 식단이나 멘탈 관리를 도와주는 등 비교적 평범하게 진행된다. 아마 이번에 소개하는 세 가지의 콘텐츠 중 TV예능을 가장 가볍게 차용한 콘텐츠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구해줘 살즈>라는 일종의 프레임이 씌워지자 보는 시청자에게도 "제이제이 살롱드핏과 함께하는 다이어트 챌린지"와 같은 평범한 프레이밍 혹은 네이밍보다는 좀 더 직관적으로 전달되어 채널의 코어 콘텐츠인 운동 관련 콘텐츠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비록 시리즈의 주인공격인 홀리가 목표한만큼의 감량을 이루지 못한 채 자축하는 분위기로 시리즈가 마무리되어 시청자의 질타를 받고 프로그램을 주관한 제이제이 살롱드핏이 사과영상까지 올리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지만 적어도 시리즈가 진행되는 세달여 동안 시리즈와 채널이 적지않은 인기를 누린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단순히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크리에이터(ex. 피트니스, 영어 회화 등)이고 코어 콘텐츠가 무언가에 대해 가르쳐주는 크리에이터는 본인 자신이 팬덤을 모을 수 있는 캐릭터가 전면에 드러나기 보다는 전달하는 정보 위주로 소비되기에 시청자와의 유대관계 형성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시리즈 콘텐츠는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사람을 넘어 크리에이터가 고유의 캐릭터와 색깔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게 하고, 또 그것을 바탕을 시청자들과 새로운 유대관계와 역학관계를 쌓아나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보러가기<<

승우아빠의 <쇼미더오븐>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콘텐츠. 역시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요리를 주제로 한 서바이벌 시리즈 콘텐츠이다. 아직 티저를 포함해 영상이 네 개 밖에 올라오지 않았지만 2회까지 시청하고 나니 훌륭한 예능 짬뽕의 '정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텐츠 곳곳을 살펴보면 <쇼미더머니>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다른 여러가지 예능 포맷들이 많이 보인다. 사실 쇼미더머니의 서바이벌이라는 프로그램의 큰 뼈대만 차용했지만 어쨌든 콘텐츠 형식이 16강, 8강 등 각 라운드 별로 대결하는 구도로 진행되니 <쇼미더머니>의 이름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16강부터 시작된 여러 크리에이터들의 요리대결은 라면을 끓이는 간단한 과제로 시작하는데,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익숙할만한 물건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타이머. 각자의 라면을 10분안에 끓여 심사위원에게 제출하는 포맷인데, 익숙하지 않은가? 맞다. <냉장고를 부탁해>이다. 그리고 막상 승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참참참, 칼 뽑기 등 다양한 미니게임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역시 어디서 많이 본 게임 목록이 아닌가? <신서유기>이다. 아예 칼 뽑기 게임을 하는 부분에서는 신서유기에서 동일한 게임을 하는 장면이 자료화면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렇게 <쇼미더머니>의 서바이벌 형식을 따라가면서 그 안에서 다른 각종 예능을 통해 이미 검증받았던 여러가지 진행요소들을 양념처럼 사용하며고 또 이 모든 것을 승우아빠 특유의 캐릭터로 녹여내고 있는 이 콘텐츠 역시 1회 117만회, 2회 50만회(아직 공개 후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조회수 뿐만 아니라 댓글 또한 콘텐츠의 화제성을 보여주는 좋은 콘텐츠인데 1회의 댓글은 이미 5천개를 돌파했다.


1회 영상에 달린 승우아빠의 고정댓글이 이 콘텐츠를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것 같다.

덧붙여보자면 "방송에서는 안하는 것들을 (이미 방송에서 했던 것들과 합쳐서) 모두 모아서 다 해봤습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보러가기<<


누군가는 크리에이터들이 창의성이 너무 부족한 것 아니냐, 혹은 예능을 그대로 베낀 것 아니냐고 혀를 찰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TV예능 판에서도 자가복제에 약간의 비틀기를 더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생산 프로세스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클립으로 본 <유퀴즈온더블락>에서 나영석 PD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1박 2일>이 끝나고 또 여행 프로그램을 하면 왠지 욕을 먹을 것 같았지만 본인이 가장 잘하고 익숙한 분야가 여행이라 국내 여행을 해외 여행으로 바꾸고, 거기에 인물에 대한 신선함을 살짝 더해 만든 것이 <꽃보다 할배> 시리즈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후배인 유호진 PD에게도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선 생각해보고, 거기에 약간의 새로움을 더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고도 한다. 여기에 소개한 크리에이터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크리에이에이터들이 이미 본인의 확실한 강점이 있다. TV예능의 문법은 결국 콘텐츠의 핵심인 꽈뚜룹의 진행 능력, 제이제이 살롱드핏의 운동 능력, 승우아빠의 요리에 대한 전문성과 재치를 더 감칠맛나게 만들어주는 좋은 재료들이고, 그 재료가 크리에이터의 요리법과 어떻게 섞이느냐에 따라 <진짜 사나이>와 <가짜 사나이>의 차이만큼이나 새로운 콘텐츠가 탄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나영석 PD가 한 말처럼 착실하게 본인의 강점을 기반으로 익숙한 것에 새로운 것을 더해 재밌는 콘텐츠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이 크리에이터들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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