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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기부

독서와 기부를 동시에 하는 법

by 류귀복

억! 소리가 절로 나는 기부자를 알고 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시작한 선행이 30년 넘게 이어지니 쌓인 기부금 총액이 꽤 크다. 수도권에서 작은 빌라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 된다. 주인공 남성은 21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복무 기간 중 태어난 아들을 시댁에서 돌본 아내와 함께 전역 후 서울로 상경했다. 40년 전, 부부는 단돈 3만 원을 손에 쥐고 강남에서 거주할 곳을 찾았다. 앞이 캄캄하던 차에 인심 좋은 고물가게 사장님을 만났다. 세 식구는 고물상에 딸린 단칸방에 터를 잡았다.


바닥이 5도 정도 기울어진 사글세 방은 낭만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 좁고 추웠다. 아빠를 쏙 빼닮은 3살 아이가 얼어 죽을까 두려울 정도였다. 밤마다 부부는 체온으로 아이를 보듬어서 지켰다. 다행히 달동네 언덕에도 매일 희망이 떴다. 남편은 새벽 4시에 눈을 떠서 자전거에 올라 1시간 넘게 페달을 밟았다. 가락동 도매시장에서 생선과 얼음을 구입한 후 자전거에 싣고 삼성동으로 돌아왔다. 이후 리어카에 물건을 진열하고 해가 질 때까지 확성기를 들고 동네를 누볐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일주일에 7일을 일했다.


당시는 "담배 끊는 사람하고는 상종도 하지 말아라. 독한 놈이다"라는 말이 공감을 얻던 시대다. 주인공 남성은 아들의 과자를 끊을 수가 없어서 본인이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무거운 칼을 손에 쥐고 생선을 잘랐다. 시간이 흘러 리어카는 화물차가 되었고, 이후에는 아파트 알뜰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사이 예쁜 딸도 한 명 태어났다. 40년 동안 하루 14시간 이상을 성실하게 일한 결과, 대모산 뷰가 피로를 씻어주는 아파트가 한 채 생겼다.


100억 자산가의 투자 성공담보다 땀으로 소박한 자산을 일군 남성의 삶이 내게는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세상 그 누구보다 정직하게 살면서 낮은 곳을 살피는 주인공은 바로 나의 아버지 류명열 장로님이다. 부친을 보면서 땀의 소중함과 나눔의 중요성을 배운다. 나 또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금전적 기부에 호의적이 되었다. 아버지만큼은 아니어도 부끄럽지 않은 금액을 사회에 환원하며 살아간다. 17년간 아내의 소망인 까르*에 팔찌를 양팔과 두 다리에 전부 채우고도 남는 금액을 기부했다.


2012년에는 <아주 작은 기부>라는 글을 써서 사내 수기 공모전에 입상했다. 직장이 기부금 급여 공제가 가능한 대학병원이다. 부서 직원들에게 "급여 공제는 안타까움을 느낄 새도 없이 빠져나가니까 좋은 일 하세요. 복 받으실 거예요"라는 말로 유혹하여 소액 기부를 유도했고, 열에 아홉은 흔쾌히 동참했다. 1년 만에 10명의 직원이 마음을 모았고, 기부금은 만 7세의 형성저하성 우심증후군 환자를 포함한 7명의 치료비에 조금씩 보탬이 되었다. 환우로부터 전달받은 감사 편지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환우가 보내 온 감사 편지>


기부는 결코 어려운 게 아니다. 심지어 독서와 기부를 동시에 하는 방법도 있다. 특정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을 읽으면 된다. 샘터는 모든 책 인세의 1%를 '샘물 통장' 기금으로 조성하여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사용한다. 2024년까지 약 1억 1,650만 원을 기부하였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소액 기부도 함께 하면 큰 힘이 된다고 믿는다


샘터의 신간 《살아낸 김에, 즐겨볼까?》는 유방암 경험자의 다사다난 일상 회복 분투기를 담고 있다. 책을 쓴 용석경 작가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인물이다. 나의 첫 번째 북토크에서 눈이 가장 반짝이던 참가자이기도 하다. 고개를 어찌나 열심히 끄덕이던지 '아~ 저분은 훗날 꼭 출간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을 내밀면서 "저 타샤입니다" 하고 인사하는 게 아닌가. 그녀는 나보다 2년 먼저 출간한 선배 작가인데, 내게 '멘토님'과 '사부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한 달 후, 두 번째 북토크에도 참여해서 2쇄를 찍은 본인의 첫 책 《유방암이지만 괜찮아》를 내게 선물했다. 이때 나의 호칭은 '영적지도자'로 승격했다. 증거자료(?)는 하단에 첨부한다.



출간 예정인 본인의 두 번째 책 퇴고를 뒤로하고 나를 찾아 준 귀인에게 "책 나올 때 꼭 연락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한결같이 "아이고, 감사합니다. 멘토님" 하고 답했고, 이후 연락이 없었다. 아무래도 때가 지난 듯하여 찾아가서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내게 출간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영적지도자(?)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교보문고에서 'MD의 선택'이 붙은 신간을 확인한 뒤 바로 구입해서 읽었다. 책을 펼친 후 작가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나와 같은 만년 과장 느낌의 일개 직원이 아니라 17년 차에 부장으로 승진한 엘리트 사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워할 수는 없었다. 후배 작가에게 사부님! 멘토님!을 외치며 낮은 자세로 배우려고 노력한 그녀를 본 터라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대한민국 기준, '20명 중 한 명이 암 경험자'라고 한다. 가깝게는 필자의 모친이 해당하고, 근무하는 부서에도 2명이나 있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사회적 약자가 되는 사람들이 주변에 흔한 셈이다. 이들이 직장에 복귀하는 비율이 30%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니,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나 강직성 척추염과 동행하며 2주에 한 번씩 버럭이가 되는 나는 유독 공감 포인트가 많다. 배려가 없이는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힘든 경험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암 경험자로서 다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유쾌한 문체 덕분에 즐겁게 읽힌다. 《살아낸 김에, 즐겨볼까?》는 가독성이 참 좋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하루 만에 완독을 끝냈다. "이 책의 인세는 저자의 뜻에 따라 국내 소아암 환우 치료를 위해 전액 기부됩니다"라는 저자소개 하단에 적힌 문장을 본 후, 용 부장님에 대한 나의 배신감은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용석경 작가는 160번의 투고 끝에 어럽게 출간한 두 번째 작품을 온전히 사회에 환원하는 대인배다. 고로, 우리는 이제 신분이 바뀐다. 그녀가 나의 '영적지도자'다.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배려가 모여 세상을 크게 바꾸길 기대한다.




이 책을 덮으며 힘겨운 암 수술을 두 번이나 견뎌 낸 나의 모친이 떠올랐다. 아프지만 씩씩하게 가족의 곁을 지키는 주명혜 여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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