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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선물이 주는 큰 기쁨

필사하기 좋은 계절

by 류귀복

출간과 동시에 큰 부자가 될 거라 생각했다. 첫 책이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곧 2년이다. 결과는 어떨까? 나의 예상이 정확히 맞았다. 지갑은 항상 허기를 호소하지만, 마음이 늘 부유하다. 그. 런. 데. 이번 달은 지출이 과하게 많아서 아내에게 혼이 좀 났다.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1년 치 인세에 버금가는 돈을 한 달 만에 다 썼기 때문이다. 소중한 돈을 어디에 사용했을까? 술과 담배... 는 당연히 아니다. 책 사는데 썼다. 출판시장의 부흥을 기대하며 칼 대신 카드를 꺼내 들고 온라인 서점에서 고군분투했다.

"이타심 8할, 사리사욕 2할."

브런치 황금 비율을 실천하려니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다. 이타심 8할은 응원하는 작가와 출판사의 책을 구입하는 마음이고, 사리사욕 2할은 출판사 대표들과 친해지려는 의도다. 적극적인 응원의 이면에는 훗날 귀인 작가들을 추천하고 싶은 검은 속내(?)가 담겨 있다. 소개팅 주선을 위해 브런치 작가들의 원고를 책으로 출간하는 몇몇 출판사에 오탈자 문의 메일을 보내며 부지런히 친분을 쌓아가는 중이다. 어쩌다 보니 열혈 독자와 허당 독자를 겸임하고 있다. 물론 순도 99.9퍼센트의 감사함으로 구입하는 더블:엔은 예외다.





깨알 홍보를 진행하자면, 더블:엔은 더블:엔 주니어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1인 출판사라는 게 믿기지 않는 행보다. 출간 속도가 엄청 빠르다. 대표가 분신술을 사용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지경이다. 아마도 부지런함이 대한민국 상위 1%인 거 같다. 심지어 책도 잘 만든다. 9월에 나온 《그리스 로마 신화 괴물여행》은 류서아 마케터가 근래 가장 즐겨 읽는 책이다. 글밥이 1학년에게는 다소 부담될 수 있는 수준인데, 아이가 독서력이 쌓인 건지 그림만 봐도 좋은 건지 식당에 갈 때도 자주 챙긴다. 벌써 5번째 읽고 있다.


더블:엔 홍보 대사로 열심히 활약한 공을 인정받은 것일까? 오늘은 각별한 선물을 받았다. 더블:엔에서 발송한 택배가 도착해서 열어 보니 책과 연필이 들어있다. 고백하자면, 이 달에 출간한 《하루 10분 100일 영어 필사》는 구입한 뒤 보관만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하위 1% 악필이다 보니, 필사를 시작할 엄두가 안 났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 필사에 도전해 보려 한다. 나의 로망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편집자에게 손 편지를 받는 소망이 있었는데, 오랜 바람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더블:엔이 각인된 한정판 연필까지 도착했으니,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시작해보려 한다. 43년 묵힌 '화'가 다른 숙주를 찾아 떠날 수 있도록 연필심을 꾹꾹 누르며,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은 곰의 심정으로 정신 수양에 정진할 계획이다.


따끈따끈한 더블:엔 신간


때마침 오늘 나의 기분이 매우 좋다. 긴 장마가 끝나고 2주 만에 산책을 나온 마르티즈만큼이나 행복하다. 자고로 좋은 건 함께 나누는 게 도리다. 눈치가 9단인 독자들은 이쯤에서 의도를 파악했을 거라 예상한다. 맞다. 지금 내게는 같은 책이 2권 있다. 용돈을 아껴서 구입한 책을 필요한 분에게 입양(?) 보내려고 한다. 사람 사는 게 기분이 전부다. 필사로 본인의 마음을 다독이고 싶은 분들은 댓글로 신청해 주길 바란다. 11월 말까지 접수된 인원 중 가족회의를 통해 예선전을 치른 후, 제비 뽑기로 최종 우승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필사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댓글창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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