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작가를 아시나요?
구독자분들께 웃음을 드리겠습니다!
2024년 봄, 저의 첫 책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가 세상에 나온 직후 인스타에 멋진 필사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예쁜 원고지 노트에 손 글쓰기로 적힌 문장을 보며 감격에 겨워 눈물이 쏟아지려던 찰나, 불편한 진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글쎄, 글의 목적이 제 책 홍보가 아니었습니다. 이벤트 당첨 후기. 볼펜 리뷰 글이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웃지만 당시에는 많이 울었습니다. (혹시나 사진의 주인께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댓글을 남겨 주세요. 이미지 사용료로 저의 두 번째 책을 선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대신 이번에는 볼펜 말고 책 리뷰 부탁드릴게요^^;)
"좋은 문장과 제로지볼의 콜라보."
여러분, 많이 웃으셨나요? 이게 다가 아닙니다. 본문 마지막에는 더 재미있는 사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즐겁게 읽어 주시길 기대하며, 이야기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지난달, ‘제1회 오묘 북토크’에 초대작가로 선정되었다. '오묘 로스터스'는 인천시 남동구에 위치한 카페 이름이다. 출간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작가님, 11월 중에 시간 한번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책을 두 권이나 낸 프로다. 제안을 수락하기 전,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먼저 건넸다. 주말이고, 거리도 멀다. “페이가 얼마인가요?”라고 문의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수백 배 더 소중한 “서아랑 세 식구 같이 가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주인장은 흔쾌히 “그럼요. 함께 오세요”라고 답을 했고, 나는 후다닥 아내에게 결재를 올렸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지나온 인연은 유독 더 애틋하다. 2년 전,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천재작가’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 ‘천’ 번을 쓰고 지우며 ‘재’미있는 문장을 완성하는 ‘작가’라는 뜻이 담겨있지만, 호불호가 강했다. ‘불호’를 ‘호’로 바꾸기 위해 100일 동안 손가락에 지문이 닳도록 뛰어다니면서 구독자 2천 명을 모았고, 첫 책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가 세상에 나오는 날 본명을 함께 공개했다. 벌써 20개월이 지났다. 고로, 나를 천재작가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귀인이다. 오묘의 주인장도 마찬가지다. 브런치 최초 ‘4초 광고’를 선보이며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할 때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준 그는 내게 귀인이자 은인이다. 말이 나온 김에 귀인의 정체를 4초 광고 후에 공개한다.
“모. 든. 작. 가.”
그의 필명은 ‘모든’이다. 강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필체를 구사하는 언어의 마술사다. 브런치에는 예술가 감성이 묻어나는 글을 쓴다. 이따금 나는 댓글을 캡처하여 ‘집필 폴더’ 란에 보관하는데, 모든 작가만이 유일하게 2칸을 차지하고 있다. 그가 나의 첫 책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를 읽고 남긴 댓글을 지금도 종종 꺼내 읽는다.
귀인이 인천에 카페를 오픈했다. 유퀴즈 스타일의 류퀴즈 형식으로 북토크를 준비하겠다는 그의 제안을 받자마자 유느님을 만나는 심정으로 얼른 일정을 비웠다. 그리고 이번 주 토요일에 그를 만나러 간다. “준비 없이 편하게 오세요”라는 그의 말을 믿고 정말 편하게 갈 계획을 세웠다.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궁금한데,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오묘의 커피는 그가 남긴 댓글만큼이나 강렬히 내 기억에 저장될 거라 믿는다. 저장 중인 2번째 댓글은 광교도서관 북토크 후기에 남겨진 글이다. 한 글자씩 읽다 보면 마시기도 전부터 커피를 음미하게 된다.
그가 브런치에 올린 북토크 모집 안내를 보니 댓글이 0개다. '어라?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하단에 인스타를 참고하라고 적혀있다. 남다른 필력을 소유한 모든 작가는 엄청난 인플루언서였던 게 분명하다. 귀가와 동시에 아내의 도움을 받아 피드를 확인했다(나는 스마트폰에 인스타가 없다). 모집 안내 글을 보니 선착순 20명이다. 스케일을 보니, 예상대로 팔로워 수가 엄청난 거 같다. ‘만석이 되어 카페 밖까지 줄이 이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기대감을 품고 아내에게 팔로워 수를 물어보니 허망한 답이 돌아온다. 놀라지 마시라. 오묘 로스터스의 인스타 팔로워는 무려 60명이다. 60만 명이 아니고, 6만 명도 아니고, 심지어 600명도 아닌, 정확히 60명이다. 전체 팔로워의 1/3이 참석해야 그날 정원이 찰 거 같다. 이대로면 2명도 힘들 거 같다. 결국 나는 편하게 가지 못하고 직접 참석자를 모집하는 선택을 한다. 개업 선물(?)로 카페 홍보도 남길 겸 하여 주인장을 대신하여 손님이 손님을 초빙하는 글을 남긴다.
※ 제1회 오묘 북토크
- 저자: 류귀복
- 일시: 11월 29일(토), 저녁 6시
- 모집 인원: 20명
- 참가비 1만 원(커피 제공)
- 신청 방법: 매장 전화(0507-1412-7155) or 인스타그램(오묘 로스터스)
참가비는 대관료와 음료값, 그리고 나의 고액 강의료(우리 가족 음료값)가 포함된 듯하다. 물론 류서아도 1인 1 음료를 담당한다. 혹시나 근처에 사시는 분들 또는 마침 주말에 인천 나들이를 계획하셨던 분들 중 몇 분이라도 오실 수 있다면 참 좋을 듯하여 유혹하는 사진을 남긴다.
제1회 오묘 북토크가 마지막이 되지 않고, 오묘 로스터스가 브런치 작가 북토크 서부 지점으로 자리 잡길 기대하며, 약속한 재미인 나의 흑역사를 공개한다.
작년 2월, 지성사에서 받은 첫 책 표지 시안이다. 내가 웃는 모습이 너무 좋다며 출판사 대표님과 편집 주간님이 강력히 표지로 주장했다. 다행히(?) 아내의 결사반대로 현 디자인으로 변경되어 책이 출간되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있다. 나는 잘 웃지 않는데 사진 속 나는 왜 환하게 웃고 있었을까? 바로 사진에 함께한 주인공들 때문이다.
옆에 아내가 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이쯤 되면, "서아는 어디에 있나요?"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예상한다. 예리한 접근이다. 이 날은 류서아가 우리 부부에게 처음 찾아온 날이다. 소중한 생명이 엄마 뱃속에 빼꼼 등장한 날 우연히 사진을 찍었다. 그렇다. 이 사진은 우리 세 식구의 첫 가족사진이다. 서아는 엄마 뱃속에 있다.
# 모든 작가 브런치
이번 주말, 작가가 좋아서 책을 사는 심정으로, 나는 바리스타가 좋아서 커피를 마시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