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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Nov 20. 2023

02. 천재작가의 초고 작성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

“천재작가는 신에게 검은 머리를 팔고 영감을 샀다.”

원고지 한 장에 검은 머리 열 개.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신의 은총으로 원고지 800페이지 분량의 영감과 함께 흰머리 8,000개를 얻었다. 첫 문장을 쓰고 출판계약서에 이름을 남기기까지, 11개월간 족히 8년은 더 늙은 듯하다. 동안(童顔)을 포기하니 책 한 권이 생긴다. 기혼자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계약이다.

예비작가가 단행본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완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마흔한 살에 새롭게 아랍어나 라틴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원고지를 기준으로 최소 600페이지는 넘겨야 투고할 가치가 생긴다. 한글이나 워드를 사용하여 작성 시 80~100매는 되어야 한다. 글자 크기를 크게 해서 페이지 수를 늘려봐야 소용없다. 11 포인트, 줄간격 160 기준이다. 노안이 왔다는 핑계로 14포인트로 작성하는 꼼수를 부려봐야 소용없다. 한글 속성에서 확인되는 원고지 매수가 중요하다. 분량의 고비를 넘겨야 투고든 뭐든 가능하다.

가만히 누워 작가가 되고 싶은가?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다. 궁금한가? 알려주겠다. 목욕재계하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어라.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해라. 책을 내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거만하게 앉아 싸인을 남기는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하라. 그러다 잠이 들면 어쩌다 우연히 꿈에서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꿈 깨라! 로또를 사야 당첨이 되듯, 원고를 완성하고 투고를 해야 책이 나오고 작가도 된다.




“천 번을 쓰고 지우며 재미있는 문장을 완성하는 천재작가는 이렇게 쓴다.”

우선 생각의 흐름대로 손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켜고, 커피를 마시는 등의 의식은 사치다. 잠을 한두 시간씩 줄이고 틈만 나면 쓴다. 신호 대기 중에도, 엘리베이터에 타서도, 심지어 화장실 안에서도 스마트폰 메모장을 연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이 머리를 떠나기 전에 핵심 문장을 기록으로 남긴다. 목차와 구성은 차후의 일이다. 모든 감각을 글자로 표현하기 위해 힘쓴다. 분량의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는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 에세이 한 권을 채우기 위해 이러한 과정을 40~50번 거친다고 생각해 보자. 너무 행복한가? 축하한다. 그 마음이 원고의 최종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유지된다면 당신은 사이코패스가 확실하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가? 그게 정상이다.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을 최소 10번은 경험해야 진정한 작가가 된다. 각오를 단단히 해라. 당신이 군필 남성이라면 군 입대를 한 번 더 한다고 생각하면 깔끔하다.
 
“좋은 글은 작가의 영혼을 먹고 탄생한다.”

글쓰기는 정답이 없다. 사람마다 각자의 방식이 있다. 타인의 방식을 참고해서 나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특정한 방식을 강요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대개 비슷하다. 본인의 인지도를 높여 수익을 얻는 게 목표다. 고민하지 말고 의식의 흐름대로 분량부터 채워라. 어차피 원고의 마지막에는 퇴고라는 해답지가 있다. 부지런히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퍼즐은 완성된다. 직장인의 점심시간처럼 시간도 빠르게 흐른다. 관절이 쑤시고 흰머리가 늘다 보면 어느덧 원고의 끝도 보인다.

천재작가는 에필로그를 쓰기까지 진통제 수백 알을 삼켰다. 혈관에 바늘을 꽂고 피에 수액을 여러 번 섞었다. 신은 작가에게 영감을 그냥 주지 않기에 후회는 없다. 완벽한 영감은 인간의 괴로움을 먹고 자란다. 당신의 삶이 고통인가? 크게 기뻐하라. 삶에 아픔이 있어야 멋진 글이 나온다.

“피곤한가? 오늘은 일단 쓰고, 퇴고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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