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때는 늘 그렇지만 재미있다
종이로 만들어진 다이어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더니
맥북 화면 속 텍스트들과 친해져 버렸다
책상 위 늘 있던 볼펜 한 자루조차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
앞으로 영풍문고 갈 일은 없겠구나
음악노트 위에 갈겨쓰던 콩나물 대가리들은 어디 갔나.
죄다 시벨리우스 안으로 숨어버렸구나
나름 멋지다고 생각했던 내 손글씨를 다시 만나려면
기념일마다 여보에게 쓰는 사랑카드
헬스장 회원 등록할 때 쓰는 내 이름 정도겠구나
요즘 시대의 글은 내용이 전부다.
화가 나면 화난 글씨체
사랑하면 사랑스러운 글씨체
이런 것들, 인간적인 것들은
플랫폼의 규격에 맞게 재단되고 가공되어
내용만 딱 남는다.
다이어리 쓰다 열 받아서 귀퉁이에 쾅 찍은 잉크 자국이랑 감정의 회오리들은
도대체가 페이스북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안에서는 표현할 길이 없다.
삐뚤삐뚤한 것보다 반듯반듯한 게 미덕인 시대에서
나만의 삐뚤함을 보여줄라믄
어찌해야 하는가.
하여튼 첫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