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협상

협상에 대한 매우 사적인 리뷰

by 원일

이것은 나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이다.


나는 현빈 주연의 <꾼>이란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다. (제목 탓이었을 것이다.)

2017년 11월의 어느 일요일, 나는 혼자 영화를 보기 위해 충무로역 대한극장을 찾았다. 무슨 영화를 보기 위해 대한극장까지 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는 사실은 대한극장의 방문은 대단히 오랜만이었다는 점, 그리고 내 바로 앞에서 표를 구매하신 생면부지의 어르신이 내게 <꾼>표를 그냥 주셨다는 것이다. 환불을 할 수 없는 표인데 같이 보기로 한 사람이 못 오게 되었다며 그냥 가지라고 주셨다. 그 시간 그 어르신 뒤에 서 있었기 때문에 생긴 행운이었다.


나는 애초에 <꾼>을 볼 생각이 없었으므로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없었고, 공짜로 관람하게 된 영화였기에 돈 아까울 일이 없었고, 달리 할 일도 없었으므로 시간이 아까울 일도 없었다. 이렇게 심리적으로 완벽한 상태에서 관람한 <꾼>은 너무도 재미있는 영화였다. 여지껏 영화 <꾼>에 대해 좋은 평이든 나쁜 평이든 심각하게 비평한 비평가는 아무도 없었고, <꾼>이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영화는 아니라는 견해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꾼>을 관람할 때 느꼈던 쾌감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꾼>이 재미없는 영화라는 견해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아마도 나는 대한민국에서 <꾼>을 가장 재미있게 본 사람일 것이다.


2017103001165_0.jpg


2018년 추석 연휴기간, 나는 가족들과 함께 <명당>과 <안시성>을 관람했기에 <협상>까지 볼 생각은 없었다. 손예진처럼 예쁜 배우가 협상 전문가라는 설정이 싫었고 예고편 속 손예진의 연기가 어색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현빈과 손예진 배우의 팬들이 보는 영화이다...라는 것이 <협상>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었다.


movie_image.jpg


미루고 미뤘던 신카이 마코토전을 관람하기 위해 예술에 전당을 찾았다. 종료일이 내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거금(?) 1만 5천원짜리 전시를 30분만에 관람하고 나니 시간이 어정쩡했는데, 마침 누군가 나에게 롯데시네마의 할인권을 주었다. 마침 예술의 전당에서 버스로 한번에 갈 수 있는 롯데시네마가 두 군데나 있었고, 마침 나는 <명당>과 <안시성>을 관람했기에 시간 맞춰 볼 수 있는 영화는 <협상> 뿐 이었다. 만일 그 시간에 <물괴>를 볼 수 있었다면 난 주저하지 않고 <물괴>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물괴>는 이미 극장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이렇게 여러가지 우연 더택에 <협상>을 관람했고, 기대치가 전혀 없던 상태에서 관람한 <협상>은 놀랍게도 재미있는 영화였다.


나는 손예진의 거친 협상가 연기에 설득되었고, 현빈이 인질극을 벌인 원인에 공감하였다. 해외에서 촬영한 액션 장면들도 매우 근사했고, 헐리웃 영화에서 이미 수십 번 반복된 인질범과 협상가의 대결을 새로운 형식으로 보게 된 것에 만족했다. 연기 잘하는 조연들의 연기와 몇차례 유머도 꽤 성공적이었고, 가장 어린 인질이 노래를 부를 때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어느 모녀는 그 장면을 보고 펑펑 울었다. 정말이다.)


movie_image (1).jpg (너무) 잘생긴 인질범 민태구 (현빈)


무엇보다 <협상>은 발상이 참신하다. 화면을 바라보며 인질범과 협상가가 대결을 벌이고 화면 밖에서는 인질범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 위한 액션이 벌어진다. 관객들은 인질들의 안전을 걱정하면서 동시에 인질범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협상가와 함께 추리해야 한다. 영화가 주는 몰입감이 대단하다.


<협상>이 걸작이 아니란 이유로 비판을 받는다면 부당하다. 왜냐하면 애초에 <협상>은 천만 관객을 동원하겠다거나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겠다는 욕심이 있던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협상>은 그냥 재미있는 줄거리와 약간 특이한 형식과 바라만 봐도 흐뭇한 배우들이 연기하는 오락영화이고, 명절 연휴에 가족들이나 친한 사람들끼리 보기 좋은 영화다. 만일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다면 분명 보석을 발견한 느낌으로 극장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movie_image (5).jpg


<협상>을 관람한 이후 현빈이 출연하는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버렸다. 현빈의 다음 작품도 내 취향일 것이다.


* hago.kr에 최신 글이 업로드 되었습니다. 많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http://hago.kr/journal/view.php?sno=557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안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