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을 마주하는 자세
<쿠르스크>는 잠수함 영화이지만 액션 영화는 아니다. 어뢰가 발사되거나 잠수함들의 추격전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크림슨 타이드>나 <헌터킬러>같은 잠수함 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 <쿠르스크>는 실망스러울 것이다. 이 영화는 침몰한 잠수함의 생존자들이 살아남기 위한 사투의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호는 훈련 도중 내부 폭발이 발생하고 118명의 승무원들 중 23명이 배 후미에서 살아남는다. 그들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잠수함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영화는 생존자들의 긴박한 상황 뿐 아니라 잠수함 밖의 상황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살아남은 승무원들이 구조를 기다리며 사투를 벌이는 동안 잠수함 밖에서는 무능한 리더들 때문에 구조가 지연되고 있다. 선한 마음으로 이들을 돕겠다는 외국의 지원은 정치적인 이유로 거절한다.
인명 구조에 필요한 골든 타임을 놓치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5년 전 세월호가 침몰되는 모습을 TV로 지켜볼 때의 트라우마가 되살아 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을 잘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단점을 유머의 소재로도 만들 수 있다.
사람이 신이 아니기에 잘못을 한다.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실수를 한다. 횟수의 차이가 있을 뿐 똑똑한 사람이라도 잘못을 저지른다. 문제는 자신의 잘못을 마주하는 자세이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잘못을 쉽게 인정하고 잘못을 통해 학습을 하는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특징은 남탓을 먼저 한다는 것이다. 이 잘못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때로는 잘못이 발생하게 된 기나긴 스토리를 만들기도 한다.
사안이 복잡할 경우 원인 제공자를 찾는 일이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잘못들은 원인이 명확하다. 음주 운전 사고가 났다면 술마시고 운전한 사람이 잘못이다. 폭행 사고가 났다면 먼저 때린 사람이 문제이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책임을 찾는 일에 몰두한다.
“그 사람이 너무 이상하게 행동해서 내가 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 책임이다.”
“하필 내가 술취해서 운전하던 날 신호등이 고장났다. 고장난 신호등 책임이다.”
그 어느 누구의 잘못을 찾을 수 없을 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나를 이렇게 만든 이 사회의 잘못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결함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수 없으니 사과하지 못한다. 사과만 했더라도 쉽게 해결될 수도 있었던 일들도 더 크게 만들기도 한다.
<쿠르스크>호는 해상 훈련 도중 침몰하였다. (영화에 의하면) 애초에 그 훈련이라는 것 자체가 전 세계에 러시아 해군의 위엄을 홍보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그러나 부족한 예산으로 인하여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잠수함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러시아의 해군은 자신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 사고를 인정하기 어려워 한다. 한 때 세계 제 1의 군사대국이었으나 지금은 고철과 같은 구조정밖에 없다는 것을 외국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구조 활동보다 더 중요하다. 즉, 선원들의 생사보다 자신의 체면이 더 중요하다.
외국의 지원을 거절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으니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행동이다. <쿠르스크>의 경우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가 자존감이 부족한 것이다.
<쿠르스크>는 실화 소재의 영화이다. 엄밀히 말하면 절반만 실화이다. 잠수함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 덕택에 잠수함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러시아 해군이 자신들의 결함을 인정하고 선원들을 구하는 것이 역부족이란 사실을 빨리 인정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몇몇 나라로부터 잠시 놀림당했을지언정 국가를 위해 충성을 맹세한 군인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족함을 당당하게 인정하는 모습에 칭찬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던 러시아 해군은 군인들의 생명 뿐 아니라 그들 가족들의 신뢰도 잃게 되었다. 끝까지 숨기고 싶던 이 사건은 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에 폭로되었다. 외국의 지원을 거절한 것은 리더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 리더의 수준이 바로 사고 당시 국가의 수준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한 때 세월호 침몰을 막지 못한 책임을 어느 교단의 교주의 잘못으로 돌리려고 하던 리더가 있었음이 문득 생각난다. 그 리더는 사건 발생 5년이나 지났음에도 자신의 잘못을 단 하나도 인정하고 있지 않다. 단점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개선하는 것이라는 누구나 아는 사실을 전달해 드리고 싶다.
2019년 가장 처음 관람한 영화 때문에 예전의 아픈 기억이 생각나는 날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콜린 퍼스가 이 영화의 주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콜린 퍼스는 이 모든 사건을 관망하는 영국군 장교로 등장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잠수함의 생존자와 그 가족들이다. 해군 장교복을 입고 있는 콜린 퍼스 포스트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한 사람들이라면 혹시 한 번 더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