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실망하다...
<말모이>가 심상치 않다. 금주 주말 흥행도 1위였고 관객은 이미 200만명을 넘었다.
개인적으로는 <말모이>의 성공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이유를 이야기 해 보겠다.
내 기준으로 <말모이>는 TV드라마 같은 영화이다. TV드라마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나도 드라마를 보고 몇몇 드라마를 매우 사랑한다. 그러나 내러티브의 전달을 배우들의 대사에 의지하는 TV 드라마와 영화는 달라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극장에서 돈을 주고 관람할 필요가 없다.
TV 드라마를 시청할 때, 시청자들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캐릭터들의 성격과 현재 상황을 이해한다. 누군가가 대사로 "저 사람이 재벌 2세야."라고 말한다면 재벌 2세인 것이다. 돈이 얼마나 많은지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보지 못한 시청자들을 위한 배려이다.) 그냥 외제차 한번만 타 주고, 이사 명패 하나만 책상에 있으면 된다. TV드라마에선 바다 한가운데 컨테이너 유조선 파티 장면같은 것을 만들 필요가 없다.
다음 씬으로 빨리 넘어가기 위해서는 우연에 의존한다. 기가 막힌 우연을 너무 자주 봐서 웬만한 우연은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정도이다. 사건의 전말을 우연히 엿듣게 되거나, 주인공 남녀가 공원에서 데이트 하는 장면을 지나가던 사람이 '우연히' 목격하는 것은 이제 이상하지도 않다.
<말모이>는 그런 TV드라마의 문법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예상을 단 1도 빗나가지 않는 영화였다.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 어떻게 끝날지 예상도 할 수 있다.
주인공 판수(유해진)는 소매치기에 전과가 있지만 “그런 사람 아니다”라는 조갑윤 선생(김홍파) 말 한마디에 조선어학회에 채용된다. 판수가 왜 그런 호의적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설명도 없고, 그냥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전제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설득이 아니라 강요다.
류정환(윤계상)을 제외한 모든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판수에게 호감을 가진다. 조선어학회의 수장이 싫다는 의견을 표현하는데에도 반대하는 부하직원들이 없다. 이 또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닌다. 그것도 부족하여 까막눈 판수를 선생님이라고까지 부르기도 한다. 사기꾼 소매치기인 판수에게 왜 다들 호감을 갖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냥 다들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내 심사는 이미 꼬였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소매치기는 경계하는 것이 상식이 아니던가? 판수에게 호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장치도 없이 그냥 대사를 통해 소매치기 판수는 좋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마치 일일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무직 직원들처럼 일한다. 독립을 위해서는 사무직 직원도 필요하다. 그런데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그 사무실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업무는 사투리를 수집하는 일인데 사투리 수집은 사무실 밖에서 하는 일이다. 그냥 그들이 사전을 만들고 사투리를 수집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 하고 있다는 것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적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사무실에 앉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불필요한 캐릭터들도 많다. 책상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여러명이지만 그냥 다 한 덩어리이다.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어김없이 우연의 여신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한다. 일본인들이 훼손한 사전의 복사본은 미리 만들어져 있었고, 우편물은 창고에 잘 보관되어 있었고, 원고가 든 가방도 우리편이 먼저 찾았다. (이렇게 우연히 쉽게 찾을걸 왜 목숨을 걸지?) 이와 같은 상황에 복선은 전혀 없다. 시나리오가 너무 안이하다. 쪽대본에 시달리는 드라마에선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영화에선 아니다.
영화 <말모이>의 가장 큰 문제는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해서 불행을 당하는 설정이 없다는 것이다.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해서 유일하게 불편한 사람들은 폭력을 당하는 학생들인데, 그들을 대표하는 판수의 아들 덕진은 이 상황에 분노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상황을 학교 밖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관객들도 일본인의 폭력에는 분노하지만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해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모든 배우들이 한국말을 사용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숨어서 하던 일이 발각되고 주인공들은 목숨을 건 도주를 시작한다. 그런데, 사전 편찬 작업은 처음부터 몰래 하던 일이다. 왜 날짜에 맞춰서 끝내야 하는가? 그 날짜가 지나면 또 다시 숨어서 작업하면 되는것 아닌가? 왜 그날따라 목숨을 건 도주를 해야 하는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때는 왜 복사본을 만들어 놓지 않았나?
아이들의 “스미마생” 한 마디에 조선어를 지키겠다고 결심한 류정환 역의 윤계상은 그냥 재벌 2세 나오는 드라마 속의 전형적인 멋진 남자 주인공과 비슷하여 오히려 실망스럽다. 범죄도시에서의 그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윤계상의 낭비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오로지 유해진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하여 멱살을 잡혀 끌려가는 느낌이다.
<말모이>의 흥행을 방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아마 분명이 이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많은 분들이 고생했을 것이고, 우리 관객들을 극장에 불러모을, 내가 보지 못한 그 무엇이 이 영화에 있을 것이다.
다만 나의 시각으로 <말모이>는 영화로서 많이 부족하기에 그냥 몇 자 끄적여보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