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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타 : 배틀엔젤

배우의 효용

by 원일

1. 사이보그와 안드로이드


사이보그는 과학자가 만든 것이고, 안드로이드는 소설가가 만든 것이다. 우리는 소설가가 만들어 낸 것은 상상이라고 부르고 과학자가 만든 것은 개념이라고 부른다. 이 차이는 크다


사이버네틱 오가니즘(cybernetic organism)의 줄인 말인 사이보그(Cyborg)는 신체의 일부가 기계로 된 생명체를 의미하고, 안드로이드는 인간의 외모와 행동을 모방할 수 있는 기계이다.


다시 말해, 사이보그는 태생은 인간이지만 신체 일부가 기계이고,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태생이 기계이다. 이들 정의에 따르면 로보캅은 사이보그이고 터미네이터는 안드로이드이다. 루크 스카이워커와 퓨리오사는 사이보그이고, 블레이드 러너의 레이첼은 안드로이드이다. (이게 무슨 상관이랴?)



안드로이드는 기계이므로 복구가 가능하다. 자신의 기억만 외부에 있는 저장장치에 보관한되면 신체가 훼손되더라도 몇 번이고 되살아 날 수 있다. 부활이 가능한 안드로이드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지 못한다.



사이보그는 핵심이 망가질 경우 되살아 날 수 없다. 주로 두뇌, 혹은 심장이 핵심이 영화 <알리타 : 배틀 엔젤>에 등장하는 사이보그들은 두뇌부터 심장까지가 연결된 모듈 전체가 핵심이다. 핵심이 망가질 경우엔 죽는다는 설정은 액션에 긴장감을 더해 준다.

바꿔 말하면 머리와 심장을 제외한 다른 부분들은 마음껏 절단해도 된다는 대의명분을 주기도 한다. 팔 다리가 절단되는 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지만 윤리감에는 상처를 받지 않는다. 시각적인 쾌감이 대단하다.



스토리만 따로 놓고 보자면 <알리타 : 배틀엔젤>은 새롭지 않다. 공중에 떠 있는 도시,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로봇(혹은 사이보그), 기억을 잃은 여전사와 같은 설정은 오래 전에 봤던 영화들의 기시감도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뛰어난 완성도가 만들어 낸 시각적인 쾌감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그래픽인지 분간해 내려는 노력은 포기하고 관람해야 한다.

<알리타 : 배틀엔젤>은 이 시대의 관객들이 왜 굳이 극장까지 가서 영화를 봐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의 해답이기도 하다.



2. 컴퓨터 그래픽과 배우의 효용


1995년, <토이 스토리>가 개봉된 이 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되었다. 톰 행크스의 <폴라 익스프레스>나 짐 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롤>에는 두 배우를 꼭 닮은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이들 영화는 여전히 애니메이션이다. 오래된 분류법이고, 관객들은 이 분류법에 저항감이 없다.



반면 <메리 포핀스>,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 <스페이스 잼>과 같은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혼합된 영화는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의 비중이 더 높더라도 이들 영화는 극영화이므로 아카데미상 애니메이션 부문의 후보에도 오를 수 없다. 분류법을 적용하면 <알리타 : 배틀엔젤>은 극영화이다.


<알리타 : 배틀엔젤>에 다수의 스타급 조연들이 출연한다는 사실도 이 영화가 이 극영화라는 믿음을 강화시켜 준다. 아카데미상 수상자인 크리스토퍼 월츠와 제니퍼 코넬리가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하고 <그린북>의 매력적인 피아니스트 마하샬라 알리도 인상적인 악당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들 조연들은 <알리타 : 배틀엔젤>의 홍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관객 입장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사람은 컴퓨터 그래픽인 알리타 뿐이다.



로사 살라자르란 배우가 모션 캡쳐 센서 기술을 이용하여 알리타를 연기했다고하지만 모든 장면을 혼자 연기한 것은 아니다. 알리타를 완성시키기 위해 수많은 스턴맨들과 그래픽 기술자들이 동원되었음이 틀림없다. <폴라 익스프레스>의 주인공을 톰 행크스라고 부를 수 없듯이 <알리타 : 배틀엔젤>의 주인공을 로자 살라자르라고 해서는 안된다. 알리타는 컴퓨터 그래픽이고, 로사 살라자르는 알리타의 1/N만큼 기여했을 뿐이다. 로사 살라사즈 혼자 모든 박수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


<알리타 : 배틀엔젤>에서 로사 살라자르란 배우의 효용은 알리타 대신 현실의 관객들에게 애정을 받기 위해 필요한 ‘스타’이다.


알리타의 연기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휴고와의 키스씬이다. 여지껏 컴퓨터 그래픽 배우들은 실사 배우와 키스를 할 수 없었다. 모션 캡쳐 장비를 착용한채 키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 휴고와 알리타의 키스씬은 만들어 낸 영상이지만 어색하지 않고 남녀 주인공들간 성적인 긴장감까지도 느껴진다. 영화 <스페이스 잼>에서 마이클 조던과 벅스 바니의 장난스러운 키스씬과는 완전히 다르다. 드디어 사람과 컴퓨터 그래픽이 키스를 했다.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토이 스토리>가 등장한 이후 몇몇 예언가들은 영화 배우라는 직업이 사라질리도 모른다는 예측을 했다. 그러나 배우란 직업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속 캐릭터가 현실의 사람이기를 원하는 관객들의 심리 덕택에 스타들은 살아남았고 그들의 출연료는 점점 더 인상되었다.

아직까지도 배우들은 컴퓨터 그래픽을 자신의 경쟁자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컴퓨터 그래픽 주인공들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장난감이 되는 길 뿐이기 때문이다.



러나 영화 제작사들은 컴퓨터 그래픽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영화 제작비의 절반을 스타들의 출연료로 지불해야 하는 헐리웃 영화 제작사 입장에서 스타들을 대체할 수 있는 배우를 발굴하는 일은 중요했다. 알리타는 투자의 결실이기도 하다.


<알리타 : 배틀엔젤>은 현실 세계의 스타 배우들을 조연으로 거느린, 컴퓨터 그래픽이 주인공인 영화이다. 이전에도 컴퓨터 그래픽과 현실의 배우들이 같이 출연하는 영화는 있었지만 <알리타 : 배틀엔젤>만큼 그 거리가 가까웠던 영화는 없었다.


게다가 영화사는 영화 속 캐릭터가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관객들의 욕망까지도 해결해 줬다. 알리타의 대역 배우를 <알리타 : 배틀엔질>의 주인공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로사 살라자르는 엄밀히 말하면 언제든지 다른 배우에 의해 교체될 수 있는 알리타의 대역 중 한 명일 뿐이다.


로사 살라자르는 알리타의 주연이 아니라 대역 중 한 명이다.


이제 헐리웃은 밥도 먹지 않고, 나이도 먹지 않고, 출연료조차 받지 않는 배우를 만들어 냈다. 우리나라의 영화 제작사들도 곧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 이 배우들의 표정 연기는 더 정교해 질 것이고 이들이 할 수 없는 액션이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관객들의 애정도 받을 수 있는 방법까지도 알아 냈다. 직업이 배우인 사람들은 이들을 두려워 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현재 배우이거나 배우 지망생이라면 사이보그 배우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연기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이 그랬듯이 배우라는 직업도 사이보그들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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