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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Feb 24. 2019

크리드 2

그리고 시리즈는 계속된다...관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주인공이 바뀌지 않은 채 40년 넘도록 시리즈가 계속되는 영화는 <록키>가 유일하다. <미션 임파서블>은 이제 고작(?) 20년 넘었을 뿐이고, <007>은 주인공이 벌써 여섯 번째 교체되었다. 1976년부터 시작된 록키 시리즈는 <크리드>란 제목의 스핀오프를 포함하여 총 8편이 제작되었고 실베스터 스탤론이란 배우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시리즈의 주인공이 마이클 B. 조던으로 교체되고, 영화의 제목도 <록키>가 아닌 <크리드>가 되었지만 영화 속 록키 발보아의 존재감은 여전히 크다. <록키>는 이 시리즈의 시작과 끝이며 <록키>의 서사 없이는 <크리드>가 존재할 수 없다. 

최근 개봉한 <크리드 2>에서 사용한 록키의 서사는 1985년작이었던 <록키 4>이다.

<록키 4> (1985)


<록키 4>가 개봉했었던 1985년, 중국은 가난한 제 3세계였고 베를린 장벽과 소련 연방은 견고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 미국이 불참하자 미국의 우방들도 올림픽에 참석하지 못했고, 1984년 LA 올림픽 때는 반대로 소련과 그 우방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개발 경쟁을 했고, 끝을 알 수 없는 냉전의 긴장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었다. 아프칸을 침략한 소련에 람보를 파병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농담이 아니라 진담처럼 들리던 시절이었다. 

 <록키 4>는 바로 그 시절을 상징하는 영화다. 미국 챔피언 록키와 소련 도전자 드라고의 대결은 미국과 소련의 대결에 대한 은유가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의 대결 그 자체였다. 이런 시대 정신에 힘입은 <록키 4>는 모든 미국인들이 대동단결하여 관람해야만 했던 영화였고 아직까지도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영화들 중 가장 많은 돈을 번 영화이기도 하다. 



우습게도 미국의 우방국인 우리 나라에서는 <록키 4>가 재 때 개봉되지 못했다. 소문인즉 영화에 등장하는 소련 국기와 소련 국가 때문이었다고 한다. (확인은 할 수 없다.)  2년 후에 소련 국기가 나오던 장면이 삭제되어서야 개봉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소문은 사실인 것으로 추정한다. 


이 장면 때문에 <록키 4>는 우리나라에 재 때 개봉하지 못했다.


<록키 4>에서 러시아 선수를 연기한 돌프 룬드그렌은 액션 스타가 되었다. 1990년대 까지도 이 배우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들은 매우 인기가 좋았다. 그 중 <다크 엔젤>, <유니버설 솔저>, <사일런트 트리거>와 같은 영화들은 간혹 다시 봐도 재밌는 영화들이다. 돌프 룬드그렌은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3대 근육남이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배우이다.


드라고 부인역의 브리짓 닐슨

<록키 4>를 통해 스타가 된 배우가 한명 더 있다. 영화 속에서는 돌프 룬드그렌보다 주목을 받은 배우, 브리짓 닐슨이란 덴마크 모델 출신의 여배우이다. 그녀는 드라고의 부인역으로 출연하였는데 드라고의 부인은 영화의 서사만 놓고 볼 때 전혀 중요하지도 않거니와 심지어 필요없는 캐릭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리짓 닐슨은 록키의 부인이었던 에이드리언(탈리아 샤이어)보다 더 많은 장면에서 눈에 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록키 4>는 브리짓 닐슨의 화보집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록키4>에서 브리짓 닐슨이 에이드리언보다 더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당시 그녀가 실베스터 스탤론의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록키 4>의 감독이기도 했던 실베스터 스탤론은 브리짓 닐슨을 캐스팅하여 영화의 많은 분량을 제공해 준다. <록키4>는 영화 감독이 자신의 연인에게 바치는 세레나데인 것이다.



당시 실베스터 스탤론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영화배우였으나 유부남이었고, 브리짓 닐슨은 신인 여배우였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브리짓 닐슨과 결혼하기 위해 조강지처를 버렸고, 이 결혼은 비난받았다.

 

결혼 후 이 둘은 또 한번 영화에 같이 출연한다. 스탤론이 각본을 쓰고, <람보 2>를 연출한 조지 P. 코스마토스가 감독인 <코브라>란 영화였다. 이 영화는 스탤론의 출연작 중 최악의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 코브라 중


모든 사람의 예상대로 이 두사람은 이혼을 하였고, 이혼과 거의 동시에 브리짓 닐슨의 영화 배우 커리어는 종료된다. <베버리 힐스 캅 2>의 팜므파탈 역 이 후 이 여배우가 출연작 중 기억에 남는 영화는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도 잃었다. 그렇게 30년이 지났다. 


브리짓 닐슨의 주연 작품 중 가장 볼만한 <베버리힐스 캅 2>


그런 스탤론의 전 부인인 브리짓 닐슨이 <크리드 2>에 등장했다. 드라고의 전부인 역할로 출연한 것이다. 

<크리드 2>의 서사에서 드라고의 역할은 <록키 4>에서 보다 더 중요하다. 크고 강한 상대이어서가 아니다. 30년 전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은 록키 발보아에 대한 드라고의 복수심은 이 영화를 긴장감 있게 만든다. 게다가 자신을 떠난 전 부인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 드라고의 욕구는 관객들로 하여금 크리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도록 만들기도 한다. <록키 4>에서는 필요없는 캐릭터였던 드라고 부인은 <크리드 2>에선 반드시 필요한 배우였다. 영리한 캐스팅이다.



영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면 이혼한 현실 부부들까지도 캐스팅하는 것이 헐리웃 영화이다. 관객이 보고싶다면 이혼한 부부 한 두 쌍 정도 영화에서 나오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스포일러 주의) 그러나 영화에서 스탤론과 닐슨이 한 화면에 나오는 일은 없다. 사실 이 두 사람이 만난다면 그 상황이 더 이상할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드라고의 부인은 록키와 만날 일은 없는 것이 옳다. 두 사람이 한 화면에 보였던 <록키 4>가 비정상이었다.


<크리드 2>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실제로 영화는 재미있고 박진감 넘친다. 고리타분한 표현이지만 박진감 넘친다는 표현이 <크리드 2>만큼 어울리는 영화도 없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스탤론과 닐슨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위기이다. 실제로 젊은 근육질의 남성들의 등장하는 권투 영화에서 60대 이혼 부부의 과거는 가십일 뿐이다. 스탤론과 닐슨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오랜동안 록키를 동경했던 나 혼자만의 것인지도 모른다.


시대도 많이 달라졌다. 냉전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고, 소련은 붕괴되었다. 러시아는 더 이상 미국의 라이벌이 아니기에 록키와 드라고의 대결은 국가간 대결이 아니라 개인의 대결로 변한다. 

이제 러시아의 복싱 경기장에는 소련의 국가 대신 미국의 힙합이 들린다. 자막이 없었다면 경기가 열리는 곳이 미국인지 러시아인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근육질의 두 남성의 맨주먹 대결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배트맨과 수퍼맨의 대결이 궁금하고 태권V와 마징가의 대결이 궁금하다. 싸움을 붙여 누가 더 센지 알아보고 싶은 것은 남성들의 본능이고, 록키 시리즈는 이 본능에 충실한 영화이다. 누구의 주먹이 더 셀 것인가? 그래서 누가 이길 것인가? 이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사족이다. 국가간의 대결도, 60대 스타 부부의 과거사도 모두 핵심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 이젠 <크리드>가 되어버린 <록키> 시리즈는 가장 원초적이고 말초적인 영화이다. 피가 끓는 느낌이 어떤지 궁금하다면 <크리드 2>를 보라.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근육질의 남성들이 등장하지만 이 영화의 주요 소비자는 남성 관객이다. 이 영화만은 애인과 부인이 아닌 남자들끼리 보는 것이 훨씬 재밌을 것이라 장담한다. 만일 연인과 같이 관람하게 되었다면 폭력배들의 길거리 싸움같은 권투 경기를 보며 당신의 연인은 기겁을 할지도 모르니 주의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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