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일 May 05. 2019

호텔 뭄바이

분노에 대처하는 법

영화 <호텔 뭄바이>는 인질극 소재의 영화이지만 이 영화에는 1인 구원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들은 영화 속의 테러범들에게 분노하면서 동시에 이들을 구해줄 초인 구원자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 헐리웃 스타 배우인 아미 해머 수많은 인질 중 한 명일 뿐이다.



이 영화의 힘은 실화 소재라는 점에 있다. 타지마할 호텔 테러 사건은 뭄바이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다. 2008년 11월 26일, 테러리스트들이 인도 최고급 호텔인 타지마할 호텔을 점령하고 직원들과 투숙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26/11 사태로 알려져 있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174명의 투숙객과 직원들이 사망했고 300명 이상이 다치게 되었다. 이 사건은 파키스탄 소재의 테러단체인 라쉬카르 에 타이바(Lashkar-e-Taiba)가 자신들을 착취한다고 믿고있는 서구 사회에 대한 분노 때문에 저지른 일이다.   


이유가 불분명한 분노만큼 대처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하건만 이들이 원하던 것은 오직 내가 얼만큼 화가 났는지 보여주는 것 뿐이었다. 인질들의 목숨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무고한 생명은 자꾸 희생되었다.



분노의 속성 중 하나는 참을성이 없다는 것이다. 서구 사회에게 자신들의 부를 빼앗기고 있다고 믿는 극히 일부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힌두교도가 대부분인 인도의 뭄바이에 자신들의 분노를 퍼 부었다.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서 분노의 원인을 타격해야 한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싶다면 아버지의 원수를 처단해야 한다. 아버지 원수의 이웃을 처단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노의 힘은 너무도 막강해서 아버지의 원수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원수를 찾을 때까지 무술을 연마하는 잘생긴 주인공은 영화 속에만 존재할 뿐 우리 몸 안에 자리잡은 분노는 종종 엉뚱한 대상을 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분노를 전가하는 것은 아니다. 주로 안전한 대상에 분노를 전가한다. 아무리 화를 내도 해를 끼치지 않을 것 같은 대상이 분노의 희생양이 된다. 직장 상사들은 부하 직원에게 화를 내고, 아버지들은 자녀들과 배우자에게 화를 낸다. 그 어디에도 화를 낼 수가 없어서 남대문에 화풀이를 했던 노인도 있다.  



영화 속 테러단체들은 서구 사회에 대한 분노를 자신들의 이웃 국가인 인도에 퍼 부었다.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인 힌두교 국가에 테러를 저지르는 것은 현명한 짓이 아니다. (모든 테러는 현명한 짓이 아니다.) 서구 사회에게 부를 빼앗기고 있다고 믿었다면 서구 사회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힌두교 사회에 테러를 저질렀고 그 대가로 자신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 냈다. 그들이 인도에 화를 낸 이유, 미국보다 그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이는 비겁한 짓이다. 결국 희생자들의 대다수는 인도인들 이었다.



혹시 주변에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만일 그 사람이 화니는 대상이 당신이라면 당신이 안전한 사람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화를 내도 저 사람이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안심하고 화를 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저항하라. 같이 화를 내라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당신 편 증거를 확보하라. 요즘엔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다. 가장 좋은 것은 휴대폰 동영상이나 녹음기이다. 그리고 신고하라. 당신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아닌 이상, 어디엔가는 신고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리고 절대로 절대로 다른 이에게 받은 분노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리지 말라. 특히 당신을 가장 믿고 의지하고 사랑해야 하는 가족들에게 화를 낸다면 당신은 똑같이, 아니 더 나쁜 사람이다.



우리는 총을 들고 테러를 저지르던 사람들만큼 전화 뒤에서 이 모든 사건들 조종하던 테러범들에게 분노해야 하건만 우리 눈으로 목격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는 종종 분노심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수 백만년동안 전화라는 기기 없이 진화해야만 했던 인간 감정의 한계이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강변호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