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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망상 장애의 위험

by 원일


성공한 영화 감독인 토비(아담 드라이버)는 영화 촬영을 위하여 과거 자신이 대학교 시절 첫 번째 영화를 촬영했던 마을 근처에 오게 된다. 낭만적인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잠시 방문한 그 마을은 토비의 마지막 기억만큼 낭만적인 곳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났고 사방엔 쓰레기가 널려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당시 돈키호테 역을 맡았던 늙은 구두 수선공(조나단 프라이스)이 여전히 역할에 몰입되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돈키호테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마을의 질서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1605년 작품이다. 자신이 기사라고 믿는 이 괴팍한 노인의 이야기가 4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주는 사실 중 하나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우리 주변엔 늘 망상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망상에 빠진 사람과 대화를 해 본 사람이라면 이들과의 대화가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뇌질환의 일종인 망상 장애, 혹은 편집증 환자들은 오로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자명한 사실이라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실로부터 망상을 보호해주는 심리적인 장벽은 매우 견고하여 훈련된 전문 상담사들만이 오랜 상담을 통해 뚫고 나갈 수 있다. 일반인들이라면 이들과 대화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감정을 소비해야만 한다.


나를 돈키호테라고 믿지 않는 너는 악마가 분명하다. 내 칼을 받아라.


망상 장애자와 장시간에 걸쳐 정신적으로 탈진할 때까지 논쟁을 벌인 후 깨달을 사실은 이들이 결코 설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망상 장애자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 그들의 망상에 대한 믿음은 종교만큼이나 맹목적이다. 오로지 망상을 유지하기 위해 원하는 증거에 집착하고 자신들의 믿음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증거는 애써 무시하거나 아니면 조작되었다고 단정한다. 가장 힘든 것은 이들과 대화할수록 에너지를 빼앗긴다는 것이다. 망상 장애자들은 당신이 당황하고 분노할수록 힘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과의 대화는 고문과도 같다.


망상에 빠진 자와의 대화는 불가능하다.


망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망상이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망상 속에서의 만들어 낸 자신의 모습이 현실의 자신보다 우월하기에 망상에서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영화 속 <돈키호테> 역을 맡은 배우는 현실의 구두 수선공이었다. 그러나 그는 스크린 속에서는 용감하고 매력적인 돈키호테였다. 모든 여성들이 자신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고 믿는다.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구두 수선공은 역할에 대한 몰입을 유지했고 시간은 10년이 훨씬 넘었다.



우리는 종종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독서를 하고 등산을 하고 영화를 봐야 한다. 때로는 현실보다 더 나은 나의 모습에 대한 망상도 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실에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망상이 너무 달콤하여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장애가 되어 버린다. 현실을 내버려둘수록 수습해야 할 현실 세계의 어려움은 점점 더 커지고, 더 깊은 망상으로 도망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망상 장애라는 정신질환이 인류에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현실이 두려워 망상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망상에서 빠져 나온다. 그리고 망상에 빠져 지내는 자기자신을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었는지 깨닫고는 수치심을 느낀다. 결국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을 뿐이다. 마을을 방문했던 젊은 청년이 세계적인 영화 감독이 되는 시간 동안 그가 현실에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의 자신보다 더 나은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을 ‘꿈’이라 부른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발전할 확률이 높다. ‘꿈’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해주고 제한된 에너지를 어디에 우선 사용해야 알려준다. 그러나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면서 그 꿈에 안주한다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장애가 될 것이다. ‘꿈’을 통해 방향이 정해졌다면 꿈을 이루기 위해 행동하자. 꿈에 안주하는 자, 현실에서 불행해 질 것이다. 이것이 400년전 소설 원작의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가 21세기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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