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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Jul 30. 2020

로마의 휴일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

1년동안 개봉되는 2,700여 편의 영화 중 성공하는 영화는 일부이고, 그들 중  ‘대박’이 나는 영화는 소수에 불과하다. 대박이 났다고 해서 관객들이 영원히 기억해 주는 것도 아니다. ‘원초적 본능’이란 영화를 극장에서 본 기억이 있는 관객이라면 지금의 20~30대들이 샤론 스톤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소위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영화들은 사람들의 망각을 뚫고 살아남은 영화들이고, ‘로마의 휴일’(1953)은 대표적인 고전 영화 중 하나이다.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이라도 그 제목은 한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몇달 전 CGV에서 열린 오드리 헵번 회고전 덕택에 TV 화면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 ‘로마의 휴일’을 큰 스크린으로 다시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유럽에 위치한 어느 국가의 공주 앤(오드리 헵번)은 유럽 순방 도중 마지막 행선지인 로마에서 숙소를 탈출한다. 탈출의 자유를 누리는 것도 아주 잠시, 탈출 전에 공주에게 처방된 수면제 때문에 공주는 거리에서 잠이 든다.  우연히 잠든 앤 공주를 발견한 미국인 기자 죠(그레고리 펙)는 공주를 자신의 집에서 재운다. 그 다음날, 자신의 집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는 여성이 궁에서 가출한 앤 공주라는 것을 알게 된 죠는 특종을 쓸 욕심에 공주와 반나절 동안의 데이트를 즐긴다. 앤 공주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죠는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고 공주 역시 로마라는 낯선 도시에서 생애 최고의 반나절을 보내는 동안 죠에게 반하게 된다.   


"술을 마실 줄 모르는 사람은 마셔서는 안됩니다." "You know, people who can't handle liquor shouldn't drint it."


‘로마의 휴일’은 기술적인 완성도가 뛰어났던 영화도 아니고, 영화사에 기록될 만큼 기발한 시도를 했던 영화도 아니다. 영화의 개연성도 많이 부족하다. 혹시 시간에 쫓겨서 만든 영화가 아닐까 추측될 정도이다. 영어 사용자인 앤 공주와 죠는 낯선 로마에서 우연히 만나고, 미국인 신문기자에 불과한 죠는 위기의 순간에 액션 스타로 변신하여 공주의 경호원 여러 명을 때려 눕히기도 한다. 사진 기자인 어빙(에디 알버트)이 반나절 동안 어렵게 찍은 공주의 사진을 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직도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휴일’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이유는 재미있는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들 때문이다. 특히 앤 공주 역의 오드리 헵번은 모든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에게 영화 역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여성 캐릭터를 한 명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를 선택할 것이다. 



‘로마의 휴일’이 기획될 무렵 남자 주인공이었던 그레고리 펙은 완성된 스타였고 오드리 헵번은 신인 여배우였다. 공주 역에는 그레고리 펙의 스타성에 어울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거론되었으나 영화사는 무명의 오드리 헵번을 캐스팅하였고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오드리 헵번의 재능을 알아본 그레고리 펙은 무대의 중앙을 오드리에게 양보했고, 영화는 그레고리 펙의 ‘로마의 휴일’이 아닌,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이 되었다.


이 영화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영화 속 앤 공주의 헤어 스타일은 ‘헵번 커트’라는 이름이 붙여져 유행했고, 스페인 광장은 로마 관광객들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곳이 되었다. 영화 개봉 전에는 누구도 - 심지어 로마 시민들 조차도 - 알지 못했던 ‘‘진실의 입’은 아직까지도 로마를 관광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방문해야 관광지가 되어있다.  ‘로마의 휴일’ 이 후 전 세계가 오드리 헵번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로마의 휴일’은 일상을 탈출하여 일탈을 꿈꾸는 성인남녀를 위한 판타지이기도 하다. 누구나 가끔씩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낯선 장소에서 매력적인 이성과의 로맨스를 꿈꾼다. 앤과 죠는 로마라는 낯선 도시에서 만난 이방인들이었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이 즐기는 반나절간의 데이트는 우리 모두의 욕망이기도 하다. 공주의 시선을 따라 로마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덧 보트 위의 댄스 파티장에 도착해있고, 난장판이 된 파티의 어수선함 사이에서 앤과 죠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방이 있는 집에서 사랑하는 죠에게 밥을 차려주고 싶다는 앤의 바램은 한 국가의 공주라는 책임감 앞에서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죠는 몰래 찍은 그녀의 사진을 돌려줌으로써 앤을 사랑했던 자신의 마음이 진심이었음을 알려준다.  


앤과 죠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쉽게도 이 세계적인 성공작은 속편이 없다. 사랑이 시작되자마자 이별한 그들은 세상의 모든 연인들처럼 오랫동안 사랑의 열병에 시달렸을 것이다. 사랑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고... 짝사랑이 이별보다 나은 이유는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들에겐 사진이 남았다. 사진들은 아마도 낯선 나라에서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졌던 뜨거웠던 사랑의 유효기간을 연장시켜 줬을 것이며 그들의 감정을 기억의 망각으로부터 보호했을 것이다.  


오드리 헵번은 그 해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반짝 스타로 끝날 수도 있었던 그녀는 사망하기 전까지도 영화를 찍었던 천상 여배우였고, 한 편으로는 빈민들을 돕는 국제 봉사활동가이기도 하였다. 아직까지도 배우 오드리 헵번의 명언들은 아직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고, 이미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오드리 헵번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공주로 남아있다. 


"As you grow older, you will discover that you have two hands, one for helping yourself, the other for helping others." - 오드리 헵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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